폴 에크먼의 저서를 처음 접했던 것은 ‘거짓말 잡아내기’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그 책을 전자북으로 읽었던 탓에 그림은 하나도 보지 못했지만, 신세계였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수천번씩 보는 사람의 얼굴. 우리는 그 얼굴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마, 눈썹, 코, 눈매, 입, 미간 우리는 이것들에서 어떤 정보를 얻는가? 중요한 것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수식을 넣으면 바로 답이 나오는 컴퓨터처럼- 표정을 읽어낸다는 것이다. 이는 굉장히 놀라운 일이다. 인간이 지을 수 있는 수많은 표정들이 마치 패턴처럼 두뇌에 인식되는 것이다. 필자는 어릴 적 콜드리딩, 범죄심리학 등에 매료되어 있었다. 사람의 표정을 보고 1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사라지는 단서를 가지고 사람의 실제 감정을 파악하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이고 천재적인가.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그러한 영감은 사라진지 오래다. 현재 에크먼의 책은 문화인류학적 통찰력을 살펴볼 수 있는 글이다. 마케팅은 얼굴 표정을 통해 감정을 읽고 그로 인해 생활이 크게 변화하게 될 거란 듯이 되어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그런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지막지한 훈련이 필요하다. 일반인으로선 불가능하다. 이 책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은 표정을 통한 문화해석이다. 원시부족부터 대도시를 살아가는 현대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통용되는 공통의 표정이 있고 미묘하게 다른 의미를 전달하는 표정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책은 클로테르 라파이유의 컬처코드라는 책이다. 이 책은 각각의 문화를 해석할 수 있는 code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간을 해석할 수 있는 code를 우리는 ‘언마스크’에서 읽어낼 수 있다.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 독서를 통해 우리는 삶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한 사람의 깊은 통찰과 성찰이 책으로 쓰이는 것이고 그 글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인생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수많은 표정들, 인류 역사에서 대접받지 못했던 ‘표정학’,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동의보감에 대해 아는 것은 저자뿐이었다. 의학서적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허허동의보감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용 어떤가, 구성 어떤가 잠깐만 훑어보려고 책을 폈다가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고 말았다. 허영만 특유의 흡입력과 뛰어난 가독성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동의보감 자체도 놀라웠던 게 굉장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기, 음양오행에 대한 이야기가 동의보감의 기초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는 사람에 따라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가슴에 와닿았다. 그 외에는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하라는 지극히 실용적인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다. 1권이 아닌 2권이라, 이해가 잘 되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오히려 표지를 안 봤으면 1권인줄 알았을만큼 한 권이 완결성을 가지고 있었다. 1권도 꼭 사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차를 끓이는 법부터 자세교정 체조까지, 에센스만 담긴 말들과 재밌는 그림들로 잘 구성돼있다. 이렇게 노력하는 작가의 작품은 그 작품이 만화일지라도 높은 소장가치를 지니게 마련이다. 훌륭한 책이다. 허영만의 다른 수많은 작품처럼 영상화되기는 힘든 작품이지만 작가의 멈추지 않는 열정과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동의보감을 ‘허허동의보감’으로 펴내는 데, 몇 년 혹은 몇 십년이 걸릴 수 있다고 들었는데 꼭 살아생전 완결편을 보고 싶은 마음이다.

율리 체는 몇 년 전 '형사 실프와 평행우주의 인생들'이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된 작가이다. 그 책을 읽게 된 경로가 특이했다. 물리학 강의를 들으러 갔던 자리에서 강사에게 소개받았던 것이다. 그때 했던 생각은 이 율리 체라는 작가가 일반 작가들과는 다른 작가라는 것이었다. 그 작품하고 이번 '어떤 소송' 두 작품만 읽어봣는데 율리 체의 작품 세계는 '미래'라는 키워드가 관통하고 있는 듯하다. 이번 작품이 또 눈길을 끈 이유는 '토마스 만 상'을 수상했다는 띠지 때문이다. 솔직히 토마스 만 상이 어떤 권위를 가지는 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토마스 만의 이름을 붙여줄 정도면 대단한 상이리라 생각이 되었다. 나도 미래 세계에 대해 많은 고민을 자주 했었다. 나 역시 미래가 민주주의일 것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미래가 전체주의일 거라 생각을 했다. 브레인 인터페이스에 기반한 고도로 발전한 전체주의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 책에 나온 '방법'이라는 체제가 신선했던 것은 '건강'이라는 가치 추구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건강이라는 가치보다 죽음의 극복에 더 큰 비중을 주고 싶지만 율리 체가 작품에 그려낸 것은 건강이었다. 또한 드러나는 것은 매스 미디어의 거대한 힘이었다. 매스 미디어는 갈수록 공급자보단 수용자의 역할이 중요해져가지만 나 역시 율리 체와 같은 의견이었다. 미래에서 매스 미디어, 언론은 지배자의 수족이 될 것이 분명하다. 숨쉴 틈 없이 몰아치는 획기적인 소설이다. 율리 체라는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미래와 현재, 현대에 대한 통찰력이 뛰어난 작가다. 다시 한번 정독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