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문학이나 괴테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치고 ‘전영애’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다. 불문학의 김화영, 노문학의 박형규, 석영중 같은 인지도를 갖추고 있는 게 전영애 교수다. 언어에 대한 전문성과 문화와 작가에 대한 완벽한 이해, 작가에 버금갈만한 필력이 한데 모여야 완벽에 가까운 번역이 이루어진다. 전영애 교수가 일평생 했던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그녀가 지금까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주기 위해 노력했다면, 이 책에선 처음으로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정리하며, 회고하며 담담히 쓴 책이다. 사적인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라 작가와 커피 한 잔 하며 담소하는 그런 느낌을 주는 책이다.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의 이야기가 일반인이 생각하거나 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교수, 시인, 번역가이기 때문에, 그들만이 알고 겪을 수 있는 일들이 담겨 있기 때문에 읽다보면 문득문득 거리감을 느끼게 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놓지 않고 계속 붙들게 하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마음과 애정 어린 시선이 사랑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으로 고전 완역을 읽었던 것이 데미안이다. 보통 같은 책을 '연달아' 읽진 않는데 이 책만은 세네번 연속으로 봤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정말 쉽게 읽을 수 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예전만한 놀라움을 주지는 않지만 지적 만족감을 주기에는 전혀 부족한 점이 없다. 싱클레어가 겪었던 일들이나 빈번히 인용되는 성경의 경우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면이 있을 수 있으나 싱클레어의 감정과 데미안이라는 불가사의한 인물의 묘사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굉장히 상징적인 서술, 용어들이 쓰였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이게 과연 무슨 의미일지 생각해보고, 융과 엘리아데, 바슐라르의 저작을 참고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성속의 분류에 따라 극명히 대치되는 서술이 많기에 종교학적 프레임을 통해 책을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미 여러 판본이 있는 작품 말고 헤세의 숨겨진, 미번역된 작품들을 펴냈다면 훨씬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도서 가격도 오르는데 선택의 폭이라도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비극을 참담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끔찍함(눈이 파인다든지)이 있다. ‘젊은 베르터의 고뇌’에는 ‘자살’이라는 비교적 덜 끔찍한 요소가 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베르터 효과’마저 낳을 수 있었던 것은 주인공의 ‘자살’보다 ‘자살하게 되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일단 외면적으로는 연애소설이다. 인간의 가장 강력한 감정 중 하나인 사랑을 다루고 있고, 그 사랑 중 가장 충격적인 짝사랑의 실패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을 읽는 것은 인류 문명사에 당당히 이름을 새긴 대문호도 ‘고작’ 사랑 때문에 죽을 만큼 괴로워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는 보통사람(모든 사람)에게 굉장한 위안이다. 작가에 대한 동정과 공감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지만 좀 더 깊이 있는 독서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베르터가 어떤 사람인지, 로테나 알베르트, 주변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독일 낭만주의와 연결 지어 보는 것도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두행숙 씨가 평역한 ‘천재를 꿈꾸며 고뇌하는 젊음에게’를 같이 읽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