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신선한 작품들이었다. 일본스러우면서도 기괴한 느낌을 풍기는 작품들이었다. 보면서 떠오른 작가와 작품이 있다. 우타노 쇼고의 ‘해피엔드에 안녕을’과 애드거 앨런 포,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였다. 일상적이면서도 익숙한 사물, 배경에서 시작해 기묘한 결말로 치닫는 점에서 비슷한 작품들만 보아 놓은 ‘해피엔드에 안녕을’과 애드거 앨런 포의 단편들이 떠올랐다. 몇 쪽만 보다 자려던 게 멈추지 못하고 한 단편을 다 읽게 되고 이런 일이 많았다. 그리고 성적인 묘사가 상당히 많다. 기껏 몇 십 쪽짜리 단편에서 그 장면만 대여섯 번 나온다니 놀랍다. 그런 면에서 하루키와 류가 떠올랐다. 절제되면서도 묘사가 잘 된 문장을 통해 수많은 퇴고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프리즘’이다. 고도로 압축된 설정 안에서(작은 회사, 몇 명의 인물들)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잘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히토미는 도마의 손을 잡고 왔던 길을 잰걸음으로 되돌아갔다. 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한 뒷골목을 두 블록 정도 지났더니 호텔이 즐비한 거리에 습한 조명이 꽃피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밀물처럼 호텔 문을 통과해서 룸으로 들어갔다. 히토미는 자신을 덮치려는 도마의 몸을 침대에 눕히고 그를 살짝 입에 머금었다. 그리고 히토미의 살결을 마구 찾아 헤매는 도마의 손을 시트에 누르고, 도마의 허리가 튀어 오르며 연달아 두 번의 절정에 이를 때까지 혀를 움직였다. 천장을 향해 누워 있는 도마가 울 것 같은 소리를 지른다. 오열과 비슷한 젊은 신음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묘사는 상당히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만 저 장면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저런 장면을 싫어라하는 것도 아니고 선호하는 것도 아니지만 섹스에 대한 집착이 일본 작가들에게 무슨 의미로 작용하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 하나의 거대한 조류인지, 한계인지...

이 책은 “2007년에 출간된 『서애 류성룡 위대한 만남』의 개정․증보판이다.” “『서애 류성룡 위대한 만남』은 한문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류성룡 상소문 549개를 1차 자료로 해서 써진 것이다. … 이것을 좀 다듬고 제목과 구성을 새롭게 편집하여 한글 위주로 다시 출간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자는 제의에 공감하여 원래의 책은 전문연구자들을 위해 그대로 두고, 이 책은 개정판으로 출간하게”된 것이다. 이 책의 현재 제목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는 이순신이 한산대첩을 거두자 류성룡이 무릎을 치며 선조에게 올린 상소문의 한 구절이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도 얼마든지 우크라이나 혹은 세르비아처럼 될 수 있는 나라였다. 이웃의 중국은 너무 크고 일본은 너무 강했다. 중국이나 일본은 ‘가치국가’가 아닌 ‘패권국가’로서 최근까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의 지향을 외면한 나라들이었다. 근래에 와서 미국의 힘으로 가치국가로 개조되었던 일본에 다시 군국주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으며 중국은 여전히 가치국가를 외면하고 있다.” “‘징비’하지 않은 자에게 역사는 자비롭지 않았다. … 국민은 자신을 바치는 리더에 감동하는 법이다. 그런 리더가 이끄는 나라는 강해지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 강해지지 않으면 통일된 미래도 우리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 시대가 다시 류성룡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한반도의 분할은 언제부터 시도되었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그 분할획책을 누가 어떻게 막았는가’이다. 앞의 것은 한반도 분할의 원류를 캐는 것이고, 뒤의 것은 그 분할획책을 최후까지 막아낸 인물의 능력과 리더십을 오늘날 본보기로 삼기 위함이다.” “이 글은 전체적으로는 임진왜란사인 동시에, 하나하나의 장은 있는 힘을 다해 전쟁을 치르고 분할획책을 저지하는 류성룡이란 인물의 리더십에 대한 연구다.” 다들 율곡의 십만양병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직 율곡 사후 수십 년 뒤 그의 제자가 쓴 비문에만 있는 허구”이며, 오히려 율곡은 “군사 수를 줄이라”고 권했다. 류성룡과 이순신은 우리나라를 수호한 영웅이라 할 수 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류성룡이 이순신은 육군이 아닌 수군 장수로 발탁한 것이다. 7단계나 뛰어넘어 발탁한 것이다. 오직 육군으로만 평생 경력을 쌓아온 이순신을 전혀 경험이 없는 수군으로 발탁”한 것이다. “류성룡은 조선조 500년을 대표하고도 남음이 있는 정치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그는 걸출한 정치인은 아니었다. 특출했다. 그는 강직한 정치인도 아니었다. 온유했다. 그 따뜻하고 부드러움으로 그 횡포한 명군 장수들을 꺾었다. 부드러움이 굳은 것을 제압하는 유능제강의 리더였다. 그는 최고의 권좌에 있으면서도 권력을 이념화하지도 가치화하지도 않았다. 대신 실용화했다. 정치 리더로서는 ‘권력 의지’가 아주 약했다. 자꾸 물러나려고만 했다. 그것이 정치 리더로서는 결함이었다.” 이후 본론에서 이 책은 조선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는지, 율곡의 10만 양병론의 실체에 대해서, 시대 배경에 대해 다양한 사료를 들어 설명한다. 그리고 제2부에서 “류성룡의 대설계”가 나온다. 그는 조선군의 총체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정병’을 만들기를 권한다. 이후 3부, 4부에서는 당시 국제 정세와 조선의 정쟁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위에도 언급돼 있듯 이 책은 일단 ‘임진왜란사’다. 정치, 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우리의 뿌리를, 그리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 류성룡이라는 특별한 리더의 삶을 함께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디자인이 굉장히 감각적이다. 어떤 속도감과 긴장감이 느껴지지만 그 안에서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좋은 디자인이다. 10BILLION.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실제로 백억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겠다만 대부분은 평생 꿈도 못 꿔볼 어마어마한 숫자다. 1초에 1씩 센다고 할 때 약 317년이 걸리는 숫자다. 인구 성장 곡선을 살펴보자면 십팔구세기부터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해 2100년에는 약 100억명이 될 것이라 예상된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 너무나도 낙관하는 경향이 있다. 일단 모르고, 다가오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급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얘기하는 100억명. 2100년. 그때 우린 살지 않는다. 어찌 보면 ‘뭘 2100년까지 생각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았을 때 세 세대를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는 시간대다. 이 책은 미래에 대한 저자의 직관과 상상을 토대로 구상됐지만, 그 설명은 지극히 객관적이며 수학적이다. 2장 50억명, 3장 60억명, 4장 70억명(2011년의 어느 날), 5장 80억명(2025년), 6장 90억명(2045년), 7장 100억명이 된다면, 8장 100억명이 되지 않는다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확실히 쉽지 않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과 우리들이 직면할 것으로 예측되는 수많은 복잡한 난관들에 대해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방대한 인문학적․사회학적 지식이 인상적이다. 저자의 시선은 영국이나 유럽에 제한되지 않고,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를 두루 바라보기 때문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또한 주석만 40쪽이 넘는다. 저자의 방대한 지식이 현대의 고전을 만들어냈다.(이 책에 얼마나 많은 노고가 들어갔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미국은 핵무기 시대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국가였다. 중국은 주변의 작은 도시국가들과 함께 과거와는 크게 다른 시대, 다시 말해 전쟁, 질병, 기근, 전염병이 아닌 다른 이유로 인구가 감소하는 시대, 가족계획, 고령, 공유의 시대에 미국의 경제적 우위에 처음으로 도전할 것이다. 삼림 지역이 회복되고 인류가 과거에 정착해 살던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의 인구 비중이 늘어나고, 세상 사람들이 환경 친화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면, 100억 명은 지금 70억 명이 지낼 때보다 더욱 조화롭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세계 인구가 100억 명이 될까?”

“이상적인 세계 인구에 대한 이 시대의 연구는 지금까지 도달한 인구 수준의 주변에서 한계를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정직하게 말하자면, 신뢰 구간이 상당히 넓다. … 모든 연구 결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최선의 추정치는 77억 명이다. 그리고 지금의 기술을 고려할 때 상한과 하한은 각각 980억 명과 6억 5,000만 명이다.”

이 책을 옮긴 안세민 번역가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 ‘자본주의 사용설명서’를 번역한 이력이 있고, 이 책에서도 깔끔한 번역을 선보였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에게만 기회로 다가온다. 이 책을 꼭 읽고 세계의, 한국의, 자신의 미래의 청사진을 꼭 그려보길 바란다.

최재천의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와 토머스 프리드먼의 ‘코드 그린’, ‘세계는 평평하다’, , 피에르 부르디외 등의 ‘세계화 이후의 민주주의’ 스미스의 ‘2050 미래쇼크’를 함께 읽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