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원하는 기회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거시적인 안목과 시대를 관통하는 직관, 그리고 자제력이다. 저자가 말하는 '전략적인 기다림‘은 “장기적 우위성을 갖춘 지속 가능한 정략이다. 조급함과 행동주의, 산만함과 성급함에 맞서는 자기통제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급하게, 성급하게 행동할수록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저자는 말한다. 조급증은 치명적 리스크를 가져온다고. 디지털 노마드와 교통, 통신의 발달 속에서 변화는 너무나도 당연해보이지만,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유목 노동자는 언론과 기업이 만들어 낸 환각이며 허상이다.” 멈춰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만히 있다 보면 곤경에 처한 현재 상황이 명확히 보이고, 행동하지 않을 때 비로소 행동할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가적 사유가 적용된 듯하다. 올라가기 위해선 내려가야 하고, 이기기 위해선 져야 하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멈춰야 한다. 그러나 실생활과 사회의 변화 압박 속에서 홀로 무변화, 정지를 추구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 같은 기분, 스트레스와 부담이 몸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심신상관반응조차 현대에 새로 생긴 증상이 아니다. 피로와 무기력, 과민반응 증상을 보이면서 유행병처럼 번지는 번아웃 신드롬은 100년 전에도 오늘날처럼 널리 퍼져 있었다. … 결론을 말하면 변화를 위한 변화, 변화의 명령을 비판적으로 대하라! … 과도한 선전을 믿지 말라! 하던 일을 태연하게 계속 하라! 세계가 오랫동안 고대했던 혁신은 어쩌면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분야에서 진행될지도 모른다.” 저자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대중들에게 노출된 유명 정치인에게는 어떤 일이 저절로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는 자유방임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 공직에 있는 동안 형세를 바르게 파악하여 무거운 바위만 몇 개 성공적으로 굴리면, 많은 이득을 얻고 역사책에 이름을 남길 자리도 마련될 것이다.” 어떤 정치인이 떠오르긴 하지만 “그대로 내버려 두는 기술”을 사용하는 것인지, 그저 소극적인 것인지 분간이 쉽진 않다. 첫째는 장기적으로, 둘째는 천천히, 셋째는 책임지는 것이 “그대로 내버려 두는 기술”의 핵심이다. 이 책은 단순히 마땅히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독일의 대표 지성인이라 그런지 경영, 경제학적 마인드 뿐만 아니라 독일의 정치사회에 대한 다양한 사례들이 수록돼 있어 그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좋을 것이다.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시 같은, 잠언 같은 짧고 의미 있는 글들이 저자 특유의 그림과 잘 어우러져 있다. 어른을 위한 동화, 그림책이 바로 이런 책일 것이다. 사람들이 광수생각을 좋아하는 이유는 짧고, 소박하고, 깊기 때문이다. 간단한 그림과 짧지만 깊은 글들이 전해 주는 메시지. ‘시간이 없어’ 책 못 읽는 사람들도 못 읽을 핑계를 댈 수 없는 책이다. ‘세상 사람들은 리미티드 에디션 혹은 한정판 제품에 열광합니다. …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구에 살고 잇는 우리 모두가 한정판이며 리미티드 에디션입니다.’ ‘오늘부터. 기쁠 때는 약속하지 말고, 화날 때는 대답하지 말고, 슬플 때는 결정하지 말라. 이것은 너에게 주는 팁이 아니고 처방전이야.’ 저자의 글은 간단하고 직설적이기 때문에 쉽게 순식간에 읽힌다. 그럼에도 두 번 세 번 다시금 곰곰이 읽고 음미하게 하는 것이 바로 저자 박광수의 매력이다. ‘아들에게 이야기 했다. “아들아, 살면서 완전히 좋거나, 완전히 나쁜 것은 없단다. 하나가 좋으면, 다른 하나는 꼭 나쁜 법이지.” 아들에게 꼭 들려주어야만 했던 삶의 씁씁한 이야기.’ 새옹지마. 굉장히 동양적인 생각이지만 그래서 동양인인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당신과 나는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될지도 몰라요. 바람처럼 그냥 내 곁을 스쳐 지나갈지도 모르죠.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이라는 것은 마법의 단어다. 현실(실제)이 아닌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무한한 두려움을 주기도 하며 무한한 가치를 지닌 듯 보이기도 한다. 이는 마치 수중에 돈이 있을 때는 ‘이 돈으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뭘 할까’하고 행복한 고민을 하지만, 막상 무언가를 위해 돈을 써버리고 나면 극심한 상실감에 빠지는 것과도 같다. 인간은 결코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비합리적이지도 않다. 인간은 결코 가상의 환상 속에 빠져 살지 않지만, 그렇다고 희망이 없으면 결코 살 수 없는 동물이다. 이 책은 인생을, 세상을, 자신을 멀찌감치서 지켜보게 해주는 책이다.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프랑스에는 참 대단한 이야기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고전 작품들은 셀 수 없이 많고, 요즘 작가만 치더라도 베르나르 베르베르, 장 튈레, 가스통 르루, 아멜리 노통브, 기욤 뮈소 등등 책만 썼다 하면 기대되는 작가들이 매우 많습니다. 아마 인문학적 토양이 튼튼하고, 많은 사람들이 책을 즐겨 보고, 작가가 그만큼 대우받을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천둥꽃은 튈레가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작품입니다.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면 음식으로 독살을 36명이나 했다니, 그리고 그렇게 죽일 동안 잡히지도 않았다는 게 미스테리하지만 그 당시에는 법의학이 덜 발달하고, 그 당시 콜레라가 창궐했고, 신비주의가 사람들 생각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어서 가능했다고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아직도 살인 동기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튈레가 주목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추측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보여줄 뿐입니다. 주인공이자 살인마인 아름다운 금발 머리의 그녀의 행동을 독자에게 그저 보여줄 뿐입니다. 우리는 마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볼 때처럼, 주인공의 살인 행위에 무의식적으로 동참하고 쫓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워낙 기묘하고, 묘사가 섬세해 깊이 빠져들어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에 본 '끝까지 간다'라는 영화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주인공의 행동은 전혀 동정받거나, 미화될 수 없는 것이지만 독자들은 주인공의 시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무더운 더위를 날려줄 작품입니다. 영화관 대신 집에서 선풍기 틀고 '천둥꽃' 읽는 것은 어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