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간들
예전에 어디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슬픈 로맨스만 있을 뿐이다. 여자가 먼저 떠나거나, 남자가 먼저 떠나거나.” 이 책 또한 비슷한 생각을 지닌 작가에 의해 쓰였다. 저자는 말한다. “삶을 지속한다는 건 끊임없이 낯설어지고, 새로워지고, 고독해지는 일이다. 형제도 자라서 타인이 되고, 타인이 만나서 가족이 되고, 그 가족은 다시 서로를 헤아리지 못하는 타인으로 변해 헤어진다. 만난 사람은 헤어진다. 40년이나 알아온 엄마와 나도 이제 헤어졌다. 이별만이 인생이다.(269)”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의 이야기다.(뫼르소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시작만 비슷하다.) 사람은 죽으면 끝이다. 하지만 남겨진 이들은 끝인가? 자연은 산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으로 자신의 소임을 마치지만 남겨진 가족, 지인들은 타인의 죽음을 마무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장례제도에 관한 이야기는 빠질 수 없을 것이다. 종교마다 얼마나 다르고, 얼마나 겉치레가 있는지에 대해 직접 겪어보지 않은 자는 말하기 쉽지 않다. 죽은 이와 작별을 고하고, 죽은 이를 기리고, 산 사람을 위로해야하는 게 본질인데 형식에만 집착하는 게 현실이다. 죽음은 죽은 사람과 산 사람과의 관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죽음은 산 사람들 간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어떤 사람이 찾아오는가, 얼마나 슬퍼하는가, 산 사람에게 어떻게 대하는 가를 보면 죽은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오직 죽음을 통해서만 껍데기 안에 어떤 인간이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가족이었나 지인이었나 이런 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엄마 영정사진을 만들어온 사람이 장 권사였다. 사흘간 빈소를 떠나지 않고, 절차마다 전부 자기 일처럼 도와줬다. 얼굴도 서먹한 친척들보다 몇 배나 더 가족 같았다.(246)”
그러나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죽음 그 자체라기보다는 죽음과 우리의 평온해 보이는 일상의 관계다. 마침 최근에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봤는데 죽음과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어머니가 죽은지 “이제 100일이 다 되었다. 나는 어느새 갈등으로 짜 맞춰진 평범한 일상의 한가운데 있었다.(281)” 모두 죽는다. 그래서 삶을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죽음의 그날까지도, 어쩌면 죽고 나서도 아버지는 생의 한가운데에 서 있을 것이다. 시작도 끝도 아닌 한중간, 그렇게 닥쳐올 미래의 순간들은 이미 지나버린 과거로만 이루어지게 될 터였다. 아버지의 찰나생은 이제 찰나멸로만 이루어졌다. 찰나생 찰나멸. 그러니 할 수 없나? 고작해야 찰나뿐이니, 힘껏 살아가는 수밖에.(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