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란 무엇인가

 

“신체의 기능을 완벽하게 익히고 두뇌가 시키는 일을 충실히 한다는 것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독특하면서도 감정적으로 풍부한 창조적 표현을 찾는 과정이 아닐까. 그리고 독특하고 신비스러운 각자에 대한 통제와 함께 우리가 한 개인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21)” 크리에이티브를 발휘하는 것, 디자인을 하는 것은 더 이상 사치가 아니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중요한 시도다. “저자들은 지속적인 전문적 실천을 통해 자신들만의 원칙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와 디자인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정의를 내리려고 하지 않으며 창조적 혁신에 대한 비결을 제공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들은 직접적인 경험을 통한 관찰 내용과 사례들을 제공하며 예술 교육에 대한 많은 의문을 풀어주면서 RISD의 교육에 대한 실질적인 내용과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다.(27)” 창의적인 과정에서 필수적인 것은 자신을 알고 표현을 형상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인문학이다. 문사철 공부가 학생들을 새로운 크리에이티브의 단계로 열어주는 것이다.(최근에 한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도스토예프스키나 체호프와 같은 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이 베스트셀러를 읽는 것보다 뇌의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이 책의 세 가지 주제가 되는 드로잉, 재료, 그리고 비평은 RISD 교육에서 중요한 핵심이며 다양하게 이용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 가지 요소를 설명하는 방법으로 ‘대화’ 형식을 골랐다.(29)” 예술과 자연에 대한 탐구의식과 거기서부터 뻗어나가는 생각의 가지를 키워야 한다. “대부분의 예술작품들은 처음에는 대단한 정보를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무슨 뜻인지 알기 힘든 수수께끼처럼 보이는 정보와 복잡한 실체를 보여준다. 우리가 보는 것으로부터 의미를 이끌어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관찰의 기술을 활용하여 눈으로 보이는 것을 언어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 언어로 묘사하는 일이 바로 아는 것의 시작이다.(161)” 과연 자연을 어떻게 디자인과 연결시킬 수 있을까? “자연은 인간의 역사를 통해 예술에 영감을 줬다. 동굴에 그린 그림이며 구조물, 건물들…… 누구나 언제든지 자연을 아이디어와 혁신의 원천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자연 세계의 모든 측면을 이루고 있는 구성은 법칙과 순서가 있다. … 신화, 문학, 예술 그리고 문화 속에 나타나는 자연에 대한 묘사는 역사를 통해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258-260) 이 책의 장점은 깊은 통찰력과 풍부한 사례이다. 허마노는 맺는 말에서 말한다. ”실제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과 과학자들은 모두 계속해서 기존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새로운 이론과 지식을 만들어내려고 한다.(323)“ 내용이나 깊이에 대해서는 만족스럽지만 상당히 전문성이 있는 내용이라 읽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참고하기 바란다.

좋은 작품에는 여러 가지 특성이 있다. 그것들은 대개 일치하기도 하고 약간씩 다르기도 하다. 그 특성 중 하나가 가치판단을 미루는 것이다. 이 책은 끝없이 가치판단을 보류한다. 작가는 ‘롤리타’를 떠올리게 하는 간단하면서도 쉽지 않은 설정을 했다. (게다가 주인공 마리아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것을 보니 작가가 러시아 문학으로부터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을지 익히 짐작이 가능하다.) 수많은 작가들이 그저 그런 작품을 쓰게 되는 이유는 어설프게 가치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 좋은 작품은 가치판단을 하지 않고 갈등과 심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이 작품이 그러하다. 마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을 새롭게 비틀어 속편을 쓴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어가며 극을 진행시키는 것도 상투적이지만 작품에 잘 어우러져 큰 거부감 없이 읽힌다. 또한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는 여자에 의해 쓰였다는 것이다. 나보코프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여자의 심리가 그려진다. “그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뭔가 말하려고 하지만 결국 입술만 달싹이다 만다. 나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내 머리를 그의 다리 위에 올려놓은 다음 사랑의 말을 속삭인다. 그러자 그의 숨결이 거칠어지더니 나를 끌어올려 무릎 위에 앉히고 내 가슴에 머리를 묻는다. 우리는 오래오래 그렇게 앉아 있는다.(216)” “그 순간 헤너는 나한테 모든 것이다. 엄마이자 아빠, 연인이자 친구이며 적 같기도 하다. 나는 이제 곧 헤너마저 잃어버릴까봐 너무나 두렵다. 어찌나 두려운지 거의 제 정신이 아니다. 헤너가 나를, 나, 오직 나만을 얼마나 원하는지 수백 번도 더 말해줘야 한다. 나는 그걸 당장 느끼고 싶다.(264)” 다만 아쉬운 것은 어조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수많은 비평과 작가 자신의 노력에 의해 개선되리라 믿는다.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

정치철학을 공부하면서 노직을 피해갈 수 없다. 고대 소크라테스부터 시작된 정치철학은 노직과 롤즈의 현대정치철학으로 이어진다. 약 이천 여년 간의 논쟁과 반박의 역사는 정치철학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지만, 현대정치철학의 주요 주제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논하던 ‘가치 있는 삶’과는 거리가 멀다. “오늘날 철학의 주된 관점은 깨끗이 ‘정화’되어 이성적 마음이 단지 이성적 마음에게만 말하는 전통만 남았다.(15)” 고대 정치철학자들은 윤리학과 정치철학을 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직은 중년의 나이에 이 책을 내며 고대 정치철학과의 결합을 시도한다. 노직은 이렇게 말하며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파고든다. “오래전에 철학은 사고의 내용 이상의 것을 약속했다. 소크라테스는 물었다. “아테네 시민이여, 오로지 돈을 벌고 명성과 위신을 높이는 일에 매달리면서 진리와 지혜와 영혼의 향상에는 생각이나 주의를 조금도 기울이지 않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그는 우리의 영혼 상태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의 영혼 상태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17)” 책의 난이도는 결코 쉽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먼저 읽을 필요는 없다. 플라톤의 쉬운(말 그대로 읽기 쉬운-비교적-) 책을 읽는 것이 소크라테스를 이해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플라톤의 문답식 글은 쉽지만 현대에선 쓰이지 않는다. 수준이 ‘낮아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곁가지와 나뭇잎의 잎맥까지 그리는 초사실주의처럼 정밀성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노직의 이 작품은 하나의 완벽한 교향곡과도 같다. 매우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써 정확히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려 했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동시에, 반대로 생각하면 매우 명확하기까지 하다. 여기에 이 책의 매력이 있다.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죽기 전에 반드시 고찰해보아야 할 문제들이다. 이는 매우 중요하지만 현대에서 자본의 그늘에 가려 설 곳을 잃고 있다. 현대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인 철학자이자 사상가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강의를 들을 수 있다. 그것도 커피 네 잔 값도 안 되는 가격에. 쉽사리 읽히는 고전에 지쳤다면 한번쯤 도전해볼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