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선을 강조하는 것은 섹시함의 상징이 된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헴라인에 레이스가 달린 미니 드레스에 신은 섬세한 턱 장식을 잡아 만든 오픈 토의 아찔한 높이의 스틸레토가 눈에 들어왔다. 솔(Sole)은 레드로 번쩍였는데, 레드카펫 위에서 레드를 입는 것이 워스트드레서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말하는 몇몇 패션 전문가들의 견해를 짓밟아보자는 의도였을까? 크리스티나는 레드컬러 카펫에서 바로 튀어 나온 게 아닌 모양 좋은 다리를 드러내며 레드컬러 드레스와 블론드 헤어가 아우라를 발산하는 고혹적인 여신처럼 존재했다. 그리고 160센티가 안 되는 작은 키를 여신으로 탈바꿈시켜 준 것은 바로 반짝이는 레드솔이 트레이드마크인 크리스찬 루부탱의 가보시힐(Covered Platform Peep-Toe Pump).

 

미스터 루부탱은 굽이 너무 높지 않냐는 물음에 이렇게 말한다. “L. A. 여자들은 많이 걸을 일이 없기 때문에 높은 굽도 충분해요.” 농담이시겠지. 보통의 L. A. 여자가 아닌 할리우드 셀러브리티들에게 하는 말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들은 레드카펫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루부탱을 즐겨 신는다. 특히 키가 작은 스타일수록 그 빈도수는 더욱 높다.

 

루부탱이 워킹슈즈가 가능한 까닭은 소위 말하는 감춰진 플랫폼 힐이 앞쪽에 대어져 있기 때문에 체감 높이가 안정적이라는 것에 있다. 게다가 심플하지만 화려해서 여러 옷에 매치가 잘 되어 실용적이기도 하다. 모순처럼 느껴지는 말이지만 잘 살펴보면 그 비밀을 알 수 있다. 멀리서도 루부탱 슈즈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바로 홍창, 레드 솔(red sole)이다. 베이지색 밑창의 지루함을 깨고 싶었기 때문에 빨간 밑창을 선택했다고 한 루부탱은 그의 비서가 빨간색 네일 에나멜을 바르고 있는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또한 루부탱은 어퍼레더(upper leather) 역시 반짝이는 페이턴트 소재를 즐겨 사용한다. ‘레드솔이 포인트인 가보시힐의 블랙 페이턴트 소재의 핍토 펌프스’는 셀러브리티들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고, 이를 카피한 제품이 수도 없이 쏟아졌던 스테디셀러로 루부탱의 시그니처이다.

 

이처럼 군더더기 없는 화려함으로 루부탱은 많은 스타군단의 추종을 받고 있다. 시상식이나 행사장을 수놓은 신발들 중에 루부탱이 꽤 많이 발견되고, 미국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의 현재 아내인 멜라니아 트럼프 또한 루부탱의 구두를 즐겨 신지 않던가. 모델 출신 멜라니아 트럼프처럼 큰 키도 즐겨 신지만, 그 누구보다 대표적인 단신의 스타들은 루부탱을 리얼 스트리트에서도 줄기차게 신는다. 157센티미터의 올슨 자매와 니콜 리치는 루부탱 마니아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다. 깡마르고 거식증이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 이 셀러브리티들은 파파라치를 통해 루부탱을 스키니 진에 매치하거나 미니드레스에 매치시키는 모습을 쉽게 보여준다. 쇼핑할 때도, 남자친구와 거닐 때도, 야외에서 브런치를 즐길 때도 심심치 않게 루부탱과 함께한다고나 할까.

 

“왜 높은 굽을 좋아하세요?”라고 물을 때, “당당해지고 자신감이 넘치게 느껴지니까요”라고 대답하는 뒤에는 솔직히 ‘키가 커 보이니까요’의 속내가 들어 있다. 그래서 단신들은 플랫슈즈를 신는 것에 하이힐을 신는 것보다 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레드카펫에서는 키의 장단에 상관없이 무조건 하이힐이다. 미니드레스가 유행하는 것과 비례해서 다리는 길어져야 하니까 더더욱. 즉, 높은 게 좋은 거다. 이것이 바로 단신 셀러브리티들이 온 거리를 다 레드카펫으로 생각하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키의 여부를 떠나 할리우드 셀러브리티와 다른 점이 있다. 서양인들은 두상이 작다. 그래서 작은 키도 훌륭한 균형 잡힌 몸매로 보이나, 동양인은 두상이 크기 때문에 황금비율이 되려면 키가 커야 한다. 미의 기준이 지금은 서양인이 기준이므로 전세계가 턱 깎는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보기 좋은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10센티미터의 굽도 불사하고 신어야 하는 것이다.

 

루부탱의 가격이 거의 100만 원 안팎으로 매겨져 있음을 감안할 때, 할리우드 스타들처럼 재력이 막강하지 않다면야 큰맘 먹지 않으면 불가능한 컬렉션이다. 그러니까 계속 들고 다닐 수 있는 마크 제이콥스의 스탐백과 루부탱의 구두 중 고심해야 하는 현상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 고가의 루부탱을 꼭 손에 넣고 싶어 하는 시기를 책정하고 있다면? 가장 추천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레드카펫을 밟을 때이다. “스타도 아닌데, 언제 레드카펫을 밟나요?”라고 묻는다면, 글쎄 컬러는 화이트지만 버진 로드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예담 [스타일 시크릿] 중에서-

슈즈 시크릿

나를 멋진 곳으로 데려다줘

짧은 치마와 짧은 머리, 활 모양으로 윗입술 선을 살려 칠한 립스틱, 가슴과 엉덩이의 곡선이 사라진 소년처럼 마른 몸의 플래퍼들은, 여성작가 조르주 상드가 19세기에 남성들에게만 허가된 자유를 누리고 싶어 남장을 하고 남성 이름으로 필명을 썼던 것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20세기의 플래퍼들이 드러내놓고 자유로웠다는 점에서는 다르다.

이 매력적인 1920년대 스타일을 정의한 사람은 바로 코코 샤넬이다. 난 샤넬에게서 조르주 상드와 비슷한 면모를 보았다. 일 자체가 자신이었고, 당대를 주름잡던 지식인들과의 교유, 자유연애를 하는 모습은 놀랍도록 닮아 있다. 게다가 그 둘은 모두 프랑스 출신이다.

기존의 여성상을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 둘을 팜므파탈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내게는 페미니스트라는 키워드가 더 적절해 보인다. 물론, 페미니즘을 해석하는 시각은 저마다 다를 테고 부유한 남성들의 정부情婦였던 샤넬이 무슨 페미니스트냐고 꼬집어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단 하나 확실히 반박할 수 있는 것은, 샤넬이 등장한 이후 여성은 코르셋을 벗었고, 바지를 입고, 심지어 브래지어를 차지 않아도 충분히 매력적인 실루엣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즉, 샤넬은 여자의 몸 그 자체를 해방시켰던 것이다.

영국에서는 플래퍼, 프랑스에서는 가르손 룩garconne look이라고도 불리던 1920년대 스타일을 만들어낸 샤넬은 고아원에 맡겨져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낮에는 의상실 견습공으로 밤에는 가수로 활동하면서 코코라는 애칭을 사용했다. 그 후, 영국인 사업가 아서 카펠의 도움을 받아 캉봉거리Rue Cambon에 모자 부티크를 오픈하면서 본격적으로 패션 디자인의 길로 들어선다. 그녀가 기존의 관습에 매이지 않았던 것은 그녀 자체가 모던걸인 플래퍼였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생활하면서 편안하게 느끼며, 더 젊어 보일 수 있는 패션을 만든다.”

샤넬의 혁신적인 발상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여성들이 스포츠를 즐기는 것에 맞추어 스포티한 의상들을 내놓기 시작했으며, 저지jersey(가벼운 메리야스 직물)같이 주로 남성의 속옷용 소재로 쓰이던 것을 일상 의복에 도입했고, 트위드(모직물) 같은 주목받지 못했던 소재들을 세련된 슈트로 탈바꿈시켰다. 또한, 코스튬 쥬얼리costume jewelry의 개념을 탄생시켜 치장 자체를 목적으로 한 모조 보석이 이때 등장한다.

플래퍼 스타일의 특징은 보브 헤어(혹은 더 짧은 쇼트)에 장식적이고 화려한 모자 대신 실용적인 클로슈라는 모자를 쓰고, 가슴을 부각시키기 위해서가 아닌 납작하게 보이기 위해 등장한 브래지어를 착용해 곡선 대신 직선적 실루엣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이런 외양적인 것만이 아니라 여성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니거나 클럽에서 재즈 음악에 맞춰 스윙을 즐기는 등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스윙을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어요It don't mean a thing if it ain't got that swing”라고 노래했을 법한 미국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 부부처럼 재즈를 사랑한 플래퍼들은 찰스턴charleston (미국에서 시작된 사교 재즈 댄스)을 추었는데, 이때 처음으로 여성들의 다리가 공식적으로 드러난다.

아르데코에서 영향을 받은 직선적 실루엣의 허리선이 들어가지 않은 박스 실루엣 형태의 시프트드레스는 단순했지만, 장식적으로는 기교를 많이 부렸다. 그리고 다리에는 블랙이 아닌 베이지색과 흰색의 스타킹을 착용했고, 여기에 다양한 디자인의 펌프스를 신게 된다.

낮에는 스네이크 스킨 소재, 밤에는 더욱 화려한 금색이나 브로케이드brocade(화려한 무늬의 직물), 보석이 달린 버클로 장식된 중간 정도 굵기의 힐인 쿠반 힐cuban heel의 펌프스를 신었으며, 스윙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슈즈로 끈이 달리고 화려하게 장식된 굽 높은 옥스퍼드 슈즈도 사랑받았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튼튼한 기능성 신발보다 신나는 디자인이었고,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절의 활동성이 떨어지며 연약한 여성스러움의 상징인 뒤꿈치가 드러난 뮬보다 훨씬 활기에 넘쳤다.

펌프스는 별도의 끈이나 잠금장치 없이 발등을 드러내는 가장 심플한 디자인이다. 굽 높이에 따라 하이high, 미드mid, 로우low 힐로 나뉘며, 디자인 변화를 거쳐 앞코만 뚫려 발가락이 보이는 오픈 토open-toe 펌프스, 구두 뒤꿈치만 노출시킨 백 오픈back-open 펌프스(슬링백sling-back이라고도 한다)가 있다. 이 밖에도 펌프스의 허리 쪽을 한 군데 터놓은 사이드 오픈side-open 펌프스와 신발의 앞코와 뒤꿈치만 막고 양 옆을 터놓은 세퍼레이트separate 펌프스도 있어,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명문가인 메디치의 캐서린 드 메디치가 프랑스로 시집 갈 때, 결혼식에서 신었다고 알려진 펌프스는 그 오랜 역사만큼 많은 디자인 변화가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펌프스는 가장 편하게 신고 벗을 수 있지만, 결코 가벼운 느낌이 아니라 충분히 격식을 차린 것처럼 보인다. 1920년대의 여성이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급진적이면서도 우아한 모던걸로 장식적이고 현란한 슈즈는 노출된 다리를 돋보이기 위한 필수품이었다.

특히 샤넬 슈즈는 고유명사가 되어 하나의 클래식이 될 정도로 유명한 펌프스가 된다. 앞코가 검정색이고 나머지는 베이지색이거나 화이트 계열인 이 심플한 슈즈는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하는 착시효과를 주는데, 비단 디자인적인 측면을 넘어서 샤넬 슈즈의 별칭은 재즈 슈즈이기도 하다. 흑과 백의 조화가 인상적인 이 단순함은 인종차별적인 코드를 흑과 백의 조합, 즉 즉흥적이어서 자유로운 재즈가 원래 흑인음악과 백인음악을 결합시켜 탄생했다는 배경을 갖고 있는 것처럼 바로 어울림을 상징하는 사회적 코드라는 해석이다.

“패션은 지나도 스타일은 남는다.” 모든 패션 전문가들이 패션의 유동성과 영속성을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예로 샤넬의 말을 인용한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샤넬 스타일이 남아 있는 것은 1980년대 초부터 독일 출신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샤넬 고유 스타일에 현대적 감각을 효과적으로 믹스시키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