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말이나 손으로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겠습니다."

앤 S. 켈리

과연 내가 지금까지 말이나 손으로 나 자신을 비롯해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답은 "of course, not" 이다. 직장에서든 친구들사이에서는 가족끼리든 난 내가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들은 머리로 걸르지 않고 바로바로 내뱉는 나쁜버릇이 있다. 물론 무의식중에 난 별 뜻없이 한 말이고 남들이 이해해주길 바라지만 그 말에 종종 상처받았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작 내가 그런 버릇을 고치지 못하면서도 남이 나에게 하는 불필요한 말들에 상처를 입고 쌓아두고 있는 내 모습이 마치 이 책의 또다른 주인공 호프의 엄마와 같다.  

 이 책은 15살 중학교2년생인 호프가 엄마가 무심코 내뱉는 일명 '언어학대'에 고통스러워하며 심리적 어려움을 겪지만, 결국 그 모든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마치 일기를 써내려가듯 그려낸 청소년 성장소설이다. 호프의 아빤 아주 어렸을때 집을나가 엄마 혼자서 호프와 오빠를 키웠다. 이런 환경에서 엄마는 호프에게 항상 "멍청이" "찌질이" "바보" "여기서 나가, 당장!!" 이라는둥 상처주는 말들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그런 말들 때문에 호프는 항상 엄마에게 말도 잘 못건네고, 학교가 끝나고 집에갈 시간엔 두통이나 복통이 찾아온다. 그러다 학교에서 야영캠프에 가는 날이 다가오지만, 머리끝까지 화가난 엄마의 허락은 도통 떨어지질 않는다. 엄마의 허락을 받기 위하여 호프는 감동적인 발표로 특별점수까지 받는다. 그래도 엄마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하기까지 이르고 , 도저히 참지 못한 호프는 그동안 가슴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모조리 쏟아낸다. " 나는 착해지려고 노력했어요.내 방에서 살면서 엄마에게 거슬리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엄마 눈을 피해 다니면서 엄마를 화나게 하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나는 무엇을 달라고도 못하고 어디를 가자고도 하지 못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라나봐요. 어쩌면 엄마는 내가 이 집에서 영원히 사라지기를 바랄 거예요. 나는 없어져 버려야 해요." 이 대목을 읽는 순간 통쾌함과 동시에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15살 굉장히 민감한 나이의 호프가 가장 사랑받아야할 엄마에게 이렇게나 많은 상처를 받았다는 것에 소설이지만 너무 화가나고 속이 상했다. 이 말에 호프의 엄마도 깨달았는지 호프의 소원인 야영캠프도 허락해주고 자기 나름대로 좋은부모 되는 법 이라는 수업을 들으며 노력하는 모습으로 끝이 난다.

 책을 읽으면서 맞아 나에게도 저런일이 있었어 라고 공감가는 부분도 많았고, 앞으로 내가 부모가 되어서 이런 실수는 저지르지 말아야겠구나..란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이 청소년 성장소설이지만 청소년보다도 부모들이 읽어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자그마한것에 상처받을거라고 인식하지 못한채 심한 말들을 퍼붓게 된다. 그리고 심한 말이라 자각 하면서도 아이들이 이해해줄거라 믿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부분이 많은것 같다. 외적으로 상처입히고 때리는 것만이 학대가 아니라 내뱉는 말에도 학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부모들이 깨달아야 한다. 처음에 책을 집어 들었을땐 겉표지만 보고 가볍게 읽어도 될만한 책인주 알았는데 내 예상을 보기좋게 뒤집어 놓았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사춘기시기에 있는 청소년들이 얼마나 예민한지 다시한번 돌아보게 되었고 솔직하고 재치 발랄한 열다섯살 호프의 좌충우돌 이야기 속에서 많을것을 깨닫게 해준 뜻깊은 책이었다. 

작년 봄 3월, 친구와 둘이서 무작정 지도하나 들고 태국행에 올랐다. 난 여행은 무조건 깨끗하고 좋은곳으로, 잠은 럭셔리한곳, 음식도 지역에서 가장 맛있는것을 선호하지만 그 여행만큼은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태국을 직접느끼고 오겠다고 오른 여행길이었다. 비록 3박 4일간이었지만 타지에서 입맛에 맛지도 않는 음식이나 게스트하우스의 냄새나는 화장실이 나에겐 생지옥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싼마오는 내가 경험한 3박4일보다 더 생지옥인 현대적인 물건들은 찾아볼 수 조차 없고 , 목욕도 제대로 할 수 없으며 아는사람 한명없는 사하라에서의 생활을 위해 부모님이 주신 모든돈을 몽땅가지고 서사하라로 떠난다.  그런 싼마오도 대단하지만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아프리카 인산광업회사에 취직까지하며 따라나선 남편 호세역시 보통남자는 아닌듯 싶다. 이 책은 늘 일상에서 벗어나 떠돌던 싼마오가 남편 호세와 함께 정착한 서사하라에서의 생활을 담은 아주 경쾌하고 밝은문체의 산문이다.

 책을 읽다보면 싼마오의 자유분방함과 유머러스함. 그리고 미소를 짓게하는 따스함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억지로 꾸며내거나 읽기 어려운 단어를 사용한것도 아니어서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쭉 읽어내려가는데 하루도 안걸렸다. 그만큼 글 자체가 매끄러웠고 문체가 굉장히 밝아서 오랜만에 별 다섯개를 줄 정도로 마음에 쏙 드는 책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사막의 샘' 편이었는데, 공중목욕탕에서 3~4개월에 한번씩 할 수 있는 목욕을 하면서 돌로 몸을 문지르면 땟국이 좔좔흐르고, 그 상태에서 아기가 울면 물도 뿌리지 않고 모유수유를 하는 사하라위 여자들이 묘사될땐 나도모르게 상상을 하면서 내가 그 모유를 먹고있는 마냥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거기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몸 '속'을 목욕하는 장면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것이다. 간단히 말해 해변에서 벌거벗고 누운뒤 호스를 통해 항문으로 창자속에 물을 듬뿍 넣은다음 10번이상에걸쳐 설사를 한다는 그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목에선 정말 말 그대로 기절초풍하는주 알았다. 얼마나 굉장한 정보였으면 난 읽자마자 남자친구에게 전화해서 한숨도 안쉬고 전해줬을 정도니 내 충격은 말할것도 없었다. 그만큼 난 책속에 푹 빠져있었으며 읽는내내 내가 싼마오 바로 옆에서 사막생활을 하고있는듯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책이 너무 인상깊어서 싼마오에 대해 조사를 해봤더니 그토록 엉뚱하면서 자상한 남편 호세는 불의의 사고로 죽고 싼마오는 바로 대만으로 돌아가 문학활동에 전념하다 48세의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걸 알았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직까지 의문으로 남아있다고 하니 알 수가 없지만,  더 많은 작품을 낼 수 있었을 좋은 작가를 잃었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쓰리다. 어린나이에 남편을 잃고 타지에서 부모와 떨어져 외로웠을 그녀가 너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리고 사하라 이후의 카나리아 군도에서의 호세와 싼마이의 생활을 그린 '흐느끼는 낙타' 가 출간예정이라니 간절히 기다려진다. 꼭 읽어봐야지!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 책은 해양표류기 소설 '로빈슨 크루소'이다. 머 그 전에도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읽긴 했었지만, 내가 책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건 아빠가 날 처음으로 서점에 데려가서 사주신 로빈슨 크루소를 읽고 나서부터 였던것 같다. 그때 그 감동을 생각하며 같은 종류의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작가 스티븐 캘러핸은 대서양을 4번이나 횡단한 해양모험가이자 선박 기술자이며 이 책을 쓰기전 1982년도에 두달반 (76일) 동안이나 바다에 표류되어 생사를 넘나들었고, 그때의 일을 상세히 적어 발표한 책이 바로 '표류'이다.

 그는 대서양 횡단 레이스에 참가하여 '솔로호'를 타고 항해를 시작하지만, 몇일 안되서 예기치 못하게 고래와 배가 충돌하여 바다에 표류하게 된다. 솔로호는 가라앉고 조그만 구명선으로 구조될 거라 믿으며 항해를 시작하는데, 목이 말라도 바닷물을 먹으면 몸에 나트륨이 쌓여 수분이 마르기 때문에 태양열 증류기를 사용하여 하루에 물 250그램으로 간간히 버티고 작살로 쥐치복을 내리쳐 잡아먹으며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중간중간엔 식인상어의 위협이 있었고 폭풍이 불며, 작은 구명선을 쪼으는 큰 물고기들 때문에 배가 가라앉기 일보직전까지 간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소금물에 절어 피부가 온통 부스럼투성이에 상처들도 시간이 갈수록 터지고 곪아서 진물까지 나는 대목에서는 내 피부가 문들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눈살까지 찌푸리게 됐다. 이러한 악전고투속에서 저 멀리 육지가 보이는 장면에선 내가 같이 표류하고 있는것처럼 감동이 밀려왔다. 책을 읽는 내내 나도 주인공처럼 같이 힘들어했던 기억이다.  

 책의 말미에서 작가는 이 경험을 통해 통찰력을 키웠고, 다른사람의 약점을 포용하는 법을 깨달았다고 한다. 사람은 인생이라는 항해를 통하여 매일매일을 꿈을꾸고 도전하면서 살아간다. 또한 누구나 인생의 한번쯤은 큰 위기를 겪고, 혹독하게 훈련한다음 성장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위기가 바다에 표류되었던 76일 간이었고 그 경험을 통하여 몇가지 진리를 마음에 새겼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크게 굴곡이 없어 지루한 면도 없지않아 있었지만, 작가의 삶에대한 애착과 악전고투하는 모습은 오래토록 기억에 남을것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삶의 시련, 고독, 좌절을 나 혼자만 겪고 있다고 생각했었던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앞으로도 나에게 닥칠 위험, 고난들이 몇년후엔 약이되고 내자신을 성장시킬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