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인가요?"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믿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난 NO라고 대답할 것이다.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랑이라 믿을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한순간 사랑에 빠져드는 영화와 책을 보고나면 그런 불꽃같은 사랑을 해보지 못한 내가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주인공 리처드 콜린스는 36살의 성공한 TV작가이지만 젊은나이에 측두엽종양이라는 판정을 받고 시한부인생을 살아간다. 그러한 자신의 처지에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동전을 던져 정한 방향 샌디에이고로 여행을 떠난다. 그후 우연히 머물게 된 델 코로나도 호텔 역사관에서 한 아름다운 여인의 사진을 보게되고 일생 처음으로 강렬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한참 전에 사망한 1890년대의 유명배우이다. 그런 그녀에게 빠져 그녀에 관한 책과 기사를 조사하고 점점 더 빠지게 되어 결국엔 그녀를 만나기 위해 75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1971년에서 75년을 거슬러 1896년으로 간 리처드는 같은 호텔 해변가에서 드디어 그의 사랑 엘리스를 만나게 된다. 마주치는 순간 그녀역시 기다렸다는듯 "당신인가요?" 라고 묻고 그후 그들은 3일간의 짧지만 강렬한 사랑을 나눈다. 영원히 그녀의 곁에 있겠다고 맹세하지만 1971년의 동전때문에 평생을 그녀곁에 머물지 못하고 안타까운 이별을 하게된다.

 소설 처음과 끝에 리처드의 형이 죽은 동생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삽입하여 결국 주인공이 뇌종양에 의한 환상을 겪었다고 암시를 주지만, 동생의 환상을 확인하게 될까봐 유일한 단서인 호텔 방명록을 끝내 확인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가 리처드가 겪은 실제 사랑이야기인지 아니면 악성종양에 따른 환상일 뿐인지는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게끔 만든다. 하지만 난 환상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소설이기때문에 그냥 그런일이 가능할 것이고 주인공이 정말 불꽃같은 사랑을 나누었을 것이라고 믿고싶고 믿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소재가 다소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시간을 소재로 한 영화나 책을 주변에서 많이 찾을수 있다. 하지만 역시 사랑이야기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기엔 충분한것 같다. 책을 덮고나서도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때문에 마음이 아팠고 아쉬웠기때문이다.

나도 지금 사랑을 하고있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가슴아프고 가장 기쁘게 하는것이 '사랑'이 아닐까 싶다. 지금 그사람에게 주인공 엘리스처럼 묻고싶다. " 당신인가요?"

기존에 만들어진 미국영화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내포되어있는 무언의 내용이 한가지씩 꼭 들어있다. 바로 '영웅심리' 가 그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느끼진 않지만 결국엔 역시 미국은 대단하며 세계각국의 우두머리임과 동시에  어떤나라도 대적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많은 영화를 통해서 고취시키고자 하는 이런 미국의 영웅심리는 설사 핵폭탄이 떨어져도 사라지지 않을것이며 지구가 멸망해도 바퀴벌레와 공존할 것이다. 이러한 내 나름대로의 생각으로 미국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통쾌하다고 느끼면서도 끝내는 마음한 쪽 어느 구석에선가 꿈틀대는 미국에 대한 반발심때문에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이 책 잿더미의 유산을 읽으면서 조금이나마 잊고있었던 반감이 다시 솔솔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저자 팀 와이너는 미국 대표저널인 <뉴욕타임스>의 기자이자 비밀 안보에 관한 최고의 저널리스트이며, 1988년 국방부 비자금을 파헤진 기사로 퓰리쳐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이 책을 쓰기위해 10명의 전 CIA국장과 300여명의 요원을 인터뷰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그가 왜 이 책을 썼고 과연 진정으로 남길 메시지가 무엇일까 의심스럽기도 했다. 세계 최고의 정보국이라 믿고있는 CIA의 왜곡된 진실과 부풀려진 비밀공작과 테러의 역사를 이제와서 까발리려는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 도대체 남는게 무얼까? 등등...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수천가지였고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사실 알수없는 물음표들만 머리위에 둥둥 떠다닌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내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영화같은 이야기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일단 CIA는 1947년 창설되었고 조직의 필요성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개입한 첫번째 임무는 한국전쟁이었다. 하지만 시작부터가 실패였다. 제대로된 정보조차 없었으며 악의 축이라고 생각했던 북한에 직접 가본 요원도 없었고 정보력의 확실한 루트조차 없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기본적인 적에대한 정보조차 갖추지 않고 이기려고 했던 막무가내식 CIA를 뭐라고 해석해야할까? 설상가상 한국에서 훈련하고 있던 CIA요원들이 때마침 요트를 타고 파티를 벌이던 이승만 대통령을 죽일뻔한 사실도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었다. 이에 화가난 이승만이 72시간 내로 철수하라고 하는 대망신까지 당한다. 또 백악관의 구미에 당기는 허위보고만 하며 , 국익을 위해서 주제넘게도 브라질, 쿠바등의 다른나라 대통령을 마구잡이로 갈아치우는등 행패를 부렸음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사실을 왜곡하고 은폐하려했다. 그리고 과테말라 사람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려고 일부러 UFO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유포하라는 내용을 보고선 분개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CIA는 자국의 이익과 백악관의 뜻에 거스르지 않기 위하여 입맛에 맞는 일들로 수많은 국가의 정부들을 무너뜨렸다. 각종 거짓말과 허위사실을 보고하고 테러까지 일삼으면서 현대사를 왜곡한 이 모든 행위들이 과연 용서받을수 있는 것들일까? 뿐만 아니라, 부시는 이라크가 생화학 무기를 갖고 있고 제조한다고 말했고 그 전날 테닛CIA국장은 그와 반대되는 보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의 위협이 증가하고 있으며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부시의 손을 들어주었다. 사실상 이라크엔 대량 살상무기는 없었다.

절대 끝까지 읽을수 없을것만 같았던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을 덮고나서 머릿속이 굉장히 복잡했다. 솔직히 간단히 정리가 되질않았다. 하나하나 머릿속에 기억시켜놓고 적어가면서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무엇이라고 정의하기가 참 애매했다. 현재까지 세계 모든사람들이 많은 부분 아니 거의 대부분을 미국에 속고있었다는 생각과 배신감. 그리고 왜곡된 현대사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이 책은 한마디로 CIA의 창설과 실패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처음의 한국전쟁과 이라크전쟁까지 모든것이 실패에서 실패로 끝났다. 9.11이라는 결정적인 대테러 참사이후로 2류조직으로 밀려난 상태지만 이 책에서 보여지는 실패를 발판삼아 다시 제2의 CIA조직이 되살아 날것만 같다. 작가가 원하는게 그것일것이다. 실패를 교훈으로 삼고 단순히 실패로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더 강대하게 만들고자하는 노력. 포부. 이런것들을 미국인들에게 알리려 했던 것은 아닐까? 단순히 재미로만 생각하고 영화에서나 많이 보았던 CIA의 이야기라는 것에 흥미를 갖고 읽으려고 했던 내가 무지했음을 인정한다. 이 책은 그냥 책이 아니다. 세계에 위협을 가하는 의미심장한 물건이다. 이 서평을 쓰고있는 지금도 대체적으로 정리가 안되고 있고 생각이 어지럽다. 말그대로 나에겐 책 제목처럼 잿더미가 될것만 같은 일주일이었다. 현재도 미국이 자국의 이익과 영광을 위하여 어떤 나라를 인질로 삼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그 사실을 많은 나라들이 앍고 있지만 사실상 해결책이 없다는것이 가슴아플 뿐이다. 중간중간 아직도 비밀로 부쳐있는지 생략된 내용이 많았기에 가슴답답한 이 사실들에 더해 더 많은 진실들이 왜곡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언젠가 더 많은 진실들을 알게 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