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간만에 사랑이야기를 읽었다. 사실 난 소위 연애소설'이라 부르는 것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남녀의 애틋한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에 그저 시큰둥하기 때문이고,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부럽다는 것일꺼다. 하여간 사랑하는 것들은 죄다 쓸어다 어떻게 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노처녀 히스테리 발동중?? ㅋㅋ
우연치 않게 이 소설을 알게 됐고 별느낌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솔직히 <사서함 100호 우편물>이란 제목에서 느껴지는 감흥은 별로 없다.

30대 초반의 라디오 작가 공진솔과 피디 이건 그리고 이건의 친구들인 또다른 커플 김선우와 박애리가 이 소설의 주요 인물이다. 
두번의 시시한 사랑을 경험했던 평범한 공진솔에게 어느날 담당 프로그램의 피디가 바껴 이건이라는 새로운 피디와 일하게된다. 일을 통해 둘 사이가 가까워지고 진솔은 이건피디를 사랑하게 되지만 이건이 좋아하는 사람은 친구의 애인이 되버린 박애리다. 이들의 얼킨 사랑 이야기가 이 작품의 줄거리다. 이렇게 나름 대충대충 줄거리를 써놓고 보니 정말 별것 아닌 식상한 연애소설같이 보인다.

하지만 난 이 책속에 점점 빠져들어 내 자신이 어느덧 공진솔이 되어 있었다. 가슴 아른거리는 문체와 그들을 둘러싼 서울 곳곳의 배경...그들의 대화 그리고 그들의 몸짓, 눈빛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너무 애틋하고 가슴떨리게 다가왔다. 실제로 눈물이 났고 가슴이 멍먹했고 또 마음이 아렸다. 책장을 넘기면서 몇번이나 숨을 멈추고 쉬어야 했는지 모른다.  한페이지 한페이지마다 정말 애틋했다. 책을 비교적 빠르게 읽는 나지만 이 책은 책장 넘기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내가 이렇게 한낯 연애소설에 빠지게 될줄이야... 책장을 다 덮고 난 지금도 가슴이 울렁거리고 극심한 후유증에 젖어 있다. 

나의 이런 감정은 정말 오랫만이다. 책읽으면서 이렇게 울어본적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경제학과를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난 아무 것도 모른다. 아니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주식으로 돈을 번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들은 아주 운이 좋은 것 뿐이야 라고 생각했고, 주식으로 돈을 잃은 사람들을 보면 난 저렇게 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난 조금씩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6개월간 300%, 즉 3배의 돈을 벌었다는 것은 글쎄 뭐랄까. 단지 운이 아닌 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 공부한 만큼 아는 만큼 보이고 벌어들이는 것이 아닐까? 정말 끊임없는 공부가 있어야 노력에 성과가 들어갈 수 있으며,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어제는 증권사에 가서 계좌를 만들었다. 김정환 씨의 글을 보면서 일단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좋은 종목을 찾아서 투자하고 각종 정보 사이트 등에 접속하여 시세를 알아보고. 그 자체가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하나하나 알아갈수록 기쁨이 되는 건 단순히 통장의 액수가 아닌 지적인 만족이 아닐까 싶다. 저자가 추천해 주는 종목을 그대로 사는 건 답습니다. 저자가 주는 정보고 나 스스로 판단하여 어떤 것을 샀을 때, 만약 이익이 크다면 그건 내가 제대로 판단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고, 만약 손해를 보았다면 내 공부가, 내 수련이 부족한 것이겠지?

앞으로 나도 마음이라도 젊은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적어도 한 가지. 단타보다는 장타가 낫다. 이름없이 희생하는 개미가 아닌, 이름은 없어도 조용히 먹이를 쌓아놓을 수 있는 개미가 되고 싶다.

돼지꿈을 꾸는 것 같이 행복해지는 단편집.

우화의 소설을 빌었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행복한 단편집이다. 25편의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어찌나 아름다운지 간만에 따뜻한 기분을 느끼면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여자의 일생을 다룬 소설은 많다. 저 멀리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부터 에쿠니 가오리의 "당신의 주말은 몇개입니까"까지 여자들의 겪는 일상은 남자와의 그것과는 또 다르다. 그리고 나이별로, 세대별로 그녀들이 겪고 생활하게 되는 과정들은 단순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다. 그렇기에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여주인공의 일상을 다룬 영화들이 많은 것이 아닐까?

신경숙 작가나 공지영 작가가 그렇게 극찬한 작가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그녀의 소설을 읽어봤더라면 아마 그 영향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크게 화려하거나 돋보이는 소설은 아닐지 모르지만, 작가로서의 역량이, 글쓴이로서의 감성이 소설 곳곳에 배어나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단편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생각났던 건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과 에쿠니 가오리의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였다. 목로주점에서 느껴졌던, 나와는 시공간이 달랐던 서민들이 생활하는 모습이 마치 나의 이웃처럼 다가왔고, 단편 하나하나가 장편으로 이어진다 하더라도 전혀 부족하지 않을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들처럼,  돼지꿈 역시 각각의 단편들이 장편으로 이어지더라도 부족하지 않을 소재였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여성들에게 바치는 우화라는 타이틀처럼, 오정희의 소설은 한국 소설을 사랑하는 모든 여성들, 그리고 그러한 여성들과 함께 공존하는 남성들이 읽어야 할 책은 아닐까.

이 책을 읽은 오늘, 난 돼지꿈을 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