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가쿠타 미쓰요'의 <종이달>을 작년에 읽은 적이 있어서 반갑게 <언덕 중간의 집>을 집어 들었지만 내용이 어렵게 느껴졌다.

우리나라에도 국민참여 재판제도를 시행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국민이 배심원이 되어 재판에 참여하게 되는 과정이라는 것 등 얕은 지식인 상태였고, 외국 영화에서 본 적은 있지만 그럼에도 많이 낯설었다.

남편과 어린 딸을 둔 가정주부인 '리사코'는 어느 날 실제 사건의 재판과정에 참여하게 되어 비록 보충 재판원이지만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부담을 갖게 되어 재판 내내 긴장의 연속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리사코'는 8개월 딸아이를 물 받은 욕조에 떨어뜨려 살인죄 혐의로 재판에 선 30대 여성 '미즈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리사코'는 '미즈호'의 개인사, 가족사 등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8일 간의 재판 과정에서 차츰 알게 되면서 마치 '미즈호'가 된 듯이 고통스럽기만 하고, 자신의 남편, 시부모님 그리고 2살 된 딸의 모습에서 '미즈호'의 가족들을 보게 되면서 심리적으로 많이 흔들린다.

내가 '미즈호'라면 하는 가정을 하게 되고, '미즈호'에게 '리사코' 자신을 투영하게 되면서 모든 것들이 당혹스럽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차츰 '미즈호'가 어떤 상황으로까지 몰리게 되었는지 '리사코'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읽는 내내 '미즈호'에 대해 심하게 감정이입을 시키는 '리사코'가 안쓰럽기도 하고, 때로는 위태로워 보여 독자인 나까지 안절부절하게 만들었다.

가끔은 누군가로 인하여 인생이 달라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재판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리사코'는 어떤 삶을 살아갈까?

결국 '리사코'는 '미즈호'에게서 벗어나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과거와 현재는 비록 같았을지도 모르지만, 미래의 '리사코'에게는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알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 깨닫게 만든 사람이 바로 '리사코'에게는 '미즈호'일 수도 있다.

고통스런 8일이었지만, '리사코'에게 있어 새로운 날들을 맞이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었기를 바란다.

사실 나 한 사람조차 챙기는 것도 어려운데, 배우자 및 그의 가족 그리고 아이까지 챙기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각자의 삶을 살다가 어른이 된 두 사람이 새로운 가정을 만들고, 거기에 새로운 가족을 맞는다는 것은 참으로 축복받고 행복한 일이지만 그 과정들에서 늘 웃음만이 넘치지는 않는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았는지 고민도 많이 하고, 서로를 안아줌으로서 더 많이 이해하고 아끼고 보살펴줘야 할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에는 아무도 모른다.

미세한 균열들이 점차 큰 틈을 만들어 낼 줄은, 아니면 모른 척 했을 지도 모른다.

다 괜찮아, 이 시기만 잘 버티면 잘 될 거라는 마음 속 그 다짐도 16살 '리디아'에게는 더 이상 도움이 되지 못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중국계 '제임스 리'는 파란 눈을 가진 백인 여성 '메릴린 워커'를 만나 3명의 아이들을 낳으며 보통의 가정을 이뤘다.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은 50년대를 거쳐 70년대가 배경이기에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 그리고 혼혈가정에 대한 인식 부족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종차별이나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인식은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계속 여전히 존재했고, 그들의 자녀는 더욱 힘든 상황에 빠지게 했다.

 

그렇다고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이 인종차별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지 않으며, 가족 간의 이야기 등 하나만 문제라고 지적할 수 없는 다소 복합적인 형태로 많은 것들이 깔려 있다.

 

자신의 어머니가 원했던 현모양처로서의 삶을 살지 않고 의사의 길을 걷고 싶었던 '메릴린'이 었지만, 결혼으로 인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대부분의 부모처럼 부모가 된 '제임스'와 '메릴린'은 둘째 '리디아'에게 자신들이 이루지 못한 꿈(아빠와 달리 친구도 많고, 엄마와 달리 의사의 길)을 이루어주길 바람으로서 다른 자녀인 '네스'와 '한나'를 슬프게 했다.

 

지나친 관심은 관심을 받는 당사자만 괴로운 것은 아니다.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다 보면 아예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스쳐가는 눈길과 손길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애정결핍으로 이어져 살아가는 자체가 아름다울 수가 없게 된다.

 

부모의 지나친 기대와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점차 모든 것들이 힘겨워지기 시작해지고 괴로운 '리디아'와 여동생인 '리디아'를 사랑하지만 혼자 모든 것을 공부하고 집을 벗어나려는 '네스', 그리고 어린 '한나'는 가족들의 모든 것들을 지켜봄으로서 '리디아'만이 아닌 이 가족의 모든 구성원들의 비극을 이야기 한다.

 

'리디아'는 기대와 관심에 부응하지 못한 자신이 미웠고, 자신을 사랑해주었던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상처가 커서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내 상처가 제일 크고 아프게 느껴짐은 당연하다.

외로웠던 '리디아'는 비록 차가운 호수로 사라져야만 했지만, 남은 가족들에게 '리디아'가 주는 선물은 더 이상 외롭지 않고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다르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한다.

피부색, 남녀, 사랑의 대상 등 나와 다르다고 생각되면 그들을 무시하고 짓밟는 일이 생김으로서 비극이 생겨난다.

 

사람들의 생각들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부디, 나와 상대방이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함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으면 한다.

 

세월이 가면서 어른이 되고, 그러다 보면 나의 몸과 마음을 이루고 있는 세포들이 모두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잠들어 있는 세포들을 조금씩 흔들어 깨워줄 수 있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시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그런지 <다시 사랑이 온다>가 12년만의 작품이라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이정하 시인의 글들은 늘 가까이 있었기에, 많지는 않지만 책장에 꽂힌 그의 시집들을 가끔씩 훑어보는 일이 일상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시 사랑이 온다>는 뜨거운 한 여름, 시원한 카페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잃어버린 또는 지나간 그리고 함께한 사람과 사랑에 대해 감정에 솔직해 질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읽다가 마지막 장에 다다르게 되니 마치 다시 찾은 사랑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런 마음 떨쳐 버리기 위해 여러 번의 다시 읽기가 필요할 것만 같아 바로 또 읽게 된다.

이성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소원해진 가족, 친구와의 사랑을 함께 느낄 수도 있었다.

 

과거의 사랑이 어떻게 내게 남았던 간에 여전히 소중한 기억일 것이다.

그 사랑을 완전히 지울 수도,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도 우리는 안다.

희미해진 과거의 사랑을 빡빡 지우려는 노력보다는 희미해지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그 희미해지는 과정을 어떻게 보내야 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과거의 사랑을 대신할 만한 대체의 것을 찾는 사람, 아니면 그저 묵묵히 잠잠해지기를 원하는 사람 등 사람들마다 여러 가지의 형태로 삶을 살아간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여러 가지로 이야기 할 수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놓친 사랑, 이미 끝난 사랑에 대한 서글픔과 아픔을 느낄 수 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랑이라는 것이 지난 사랑을 대체할 다른 사랑일수도, 아니면 잠시 잊고 있었던 그저 사랑이란 단어에 대한 그리움, 깨달음, 기다림, 과거 밀어 내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옛사랑이 다시 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것을 알기에 미련보다는 희망이란 단어를 떠올리고 싶다.

 

새로운 사랑은 아팠거나, 슬펐던 날들을 상쇄시키는 힘이 되어 줄 것이고, 그 힘으로 우리는 살아갈 것이다.

현재 다시 내게 온 사랑을 위해 살아야 한다.

가족들, 친구들, 지인들에게 줄 수 있는 사랑, 받을 수 있는 사랑은 무한대 일 것이다.

 

더운 날의 시원한 얼음물처럼 온 몸을 깨워 주는 사랑스러운 글들이어서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