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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자와 여자를 갈라놓고 "여자는 이렇다. 남자는 이렇다" 하는 류의 책은 일단 도대체 '왜' 그런 차이가 발생하는지

언급한 후에 따따부따하지 않으면 약간의 거부감을 느낀다.

그렇지만, 대개 심리학 관련 서적은 어렵지 않게, 비전공자가 읽어도 이해하기 쉽도록 쓰여져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심리의 근간이 되는 두뇌 사고의 메카니즘 등을 뇌신경학적 관점에서 어지럽게 설명하는 책 만큼은 아니어도

'뉴런'이나 적어도 뇌라는 단어를 한번쯤은 언급하며 서술해나가는 남녀심리학책을 좋아한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어렵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 나는 어쩌면 터무니 없는 요구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만.

또, 남녀심리학을 다룰려면 진화적으로 접근해야한다고도 생각한다.

동물세계의 암컷 수컷을 보면 이러이러하다, 인간이 진화하면서 동물의 이러이러한 습성이

이러이러한 심리작용으로 발전하여 어쩌구 저쩌구...

이런 식의 지식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어려운 얘기는 전혀 하지 않는다.

남녀 심리의 차이를 밝히는 데 신경과학을 갖고 올 필요는 문화심리학자인 김정운 교수한테는 필요가 없었다.

문화와 심리를 연결하여 생각하면, 구태여 뉴런이라는 어려운 단어 따위 없어도 된다.

그래도 여전히 읽고나서 약간의 아쉬움은 느껴진다.

정말로 남자와 여자는 그렇게 사고방식이 다르단 말인가? 그러면 왜? 생리적, 사회적으로 도대체 왜?

어떤 '계기'가 있어서 이렇게 남녀의 심리 기전에 차이가 생기게 되었는가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이 책에서 구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쉬웠다.

여하튼 "남자는 이렇고 여자는 그렇다라고 유명한 학자 누구누구는 말했다."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책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주가 된다면 책이 자칫 지루해질 것이다.

이 책은 재미있다. 코미디다.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김정운 교수가 말하는 것 처럼 '스토리'가 있는 책이다, 그래서 재미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유용한 심리학적 지식을 충분히, 아낌없이 담아내고 있다.

예를 들면,

「'사후가정사고Counterfactual Thinking'에 관한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의 닐 로즈Neal Roese 교수는

<IF의 심리학>이라는 책에서 이 구 가지 종류의 후회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p. 38)」

라는 구절과 같이, 교육적인 내용을 전부 담고 있다. 교수님이 펼치는 교수님의 일상생활에 대한 진술은

위와 같은 학술적 지식을 쉽게 이해하는 데에 아주 큰 도움을 준다.

게다가 교수님의 진술은 마치 '블랙 코미디' 소설을 읽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거침없이 내뱉는 비판이나 욕설, 또는 은밀한 욕구까지도 읽는 이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교수이기 이전에 중년 남자의 로망스에 솔직하게 살아가는 분인 것 같아 경악(!)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

교수님은 거침없이 한국사회를 비판한다. 도대체 소통이 불가능한 한국 남자들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심리학적으로 파고든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남자들을 이해해달라." 고 외치는 한 편,

어떤 면에 있어서는 남자들에게 변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한국의 먹고 마시고 잊어버리자는 술문화는 비판하면서

무언가에 미친듯이 집착할 정도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즐기는 방향으로 변화를 요구한다.

그래서인가, 페미니스트는 절대 아닌데 어째서인지 고맙게 느껴진다.

아내와의 결혼을 (아주 가끔)후회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내에 대한 소중함을 알고 있는 남편인 교수님의 일화를 통해, 교수님 편에 서고 만다.

근데 궁금하다. 이렇게 "난 잘 하고 있어." 하시는 교수님의 아내분은 정말로 교수님의 자존감만큼

행복해하며 살고 계신지 ㅋㅋ

아무튼 교수님의 이야기를 통해 나도 변한 것이 있다.

중장년, 우리나라 남자, 우리 아빠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설마설마하지만, 아빠도 '로망스'가 있는 남자일지도.

그냥 돈버는 가장으로서가 아니라, 내가 어렸을 때 나한테 그랬던 것 처럼

"엄마보다 더 좋은 아빠" (만큼은 아니어도) 로 다시 아껴(!?)줘야 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성찰-> 큰 수확.

왜냐면, 20넘은 여자한테 서먹서먹한 아버지와의 관계만큼 해결보지않으면 안 될 만큼 안타까운 관계도 없으니까.

사실 먼저 읽었던 '노는 만큼 성공한다'와 겹치는 내용은 많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가

다른 이들의 사례를 소개하며 거의 학술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는 책이라면 이 책에는 교수님의 이야기가 있다.

울지도 웃지도 못할 이야기들이.

이 책을 읽은 뒤 노는만큼성공한다를 읽으면 갑자기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

노는만큼성공한다를 먼저 읽어보고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를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심리, 심리학,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