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집이라면 보통 잠시 머물다가 가는 곳이 아닐까..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잠시 머물기 위한 피난처 같은 곳이 아닐까..그 곳의 사람들은 보통 표면적인 관계만을 맺거나 아니면 누가 어떻게 사는지도 모른채 그야말로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것이 보통 아닐까 싶다. 그래서 하숙집을 떠나거나 머물 땐 어떤 기대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하숙집은 뭔가 다르다. 할머니 한 분과 싱글 여성 세 명이 오붓하게 사는 곳이다. 그런데 할머니가 애인의 간병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면서 새로운 관리인이 온다. 험상궂은 외모에 유모차에 개를 태우고 다니는 할아버지. 보기에도 위화감이 드는 할아버지가 여자들만의 공간에 온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한 지붕 아래에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법. 그들은 좌충우돌 여러가지 사건을 겪는다.

 사법 고시를 준비하는 료코,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 데코, 그리고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실직자가 된 슈코.. 그리고 완고한 관리인 니시오 도모미. 이 네 사람이 바로 다마요 하숙집의 구성원들이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있을까..이 사람들도 각자의 사정과 사연을 갖고 살고 있다. 그건 너무나 일상적이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그리고 자신에겐 너무나 큰일이어서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삼키게 되는 일.. 하지만 깐깐한 니시오 할아버지는 하숙생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일에 자신의 일처럼 나선다. 그리고 그들의 보이지 않는 벽들은 서서히 허물어진다.

 

 요즘처럼 타인의 삶에 무관심한 이 시대에 참 있을 수 없을만큼 따뜻해 보이는 공간이었다. 머리 복잡한 나도 이 곳에 간다면 좀 편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의 관계란 이상해서 한 편에서 포기하지 않으면 조금씩 진전되고 나아지나 보다. 고집스럽게 숨기는 일들은 사실 누구에게든 털어놓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소란스러운 하숙집이 무척 부러웠다. 나도 그 공간에 함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마구 샘솟았다. 그래서 그녀들이 조금더 행복해지길 바랬다. 조금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길 바랬다. 그녀들은 조금씩 강해지고 노력하고 더 나은 미래를 꿈꿀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다.

 

 나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조금 노력해 볼까...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어 볼까...내 삶을 좀더 진지하게 바라봐야겠다...

소소한 일상과 평범한 사람들이 아주 큰 기적을 만들 수 있어보이는데 나 역시 작지만 의미있는 기적을 만들어볼까..

생각해 봤다.

 

어제와 다름 없는 오늘..대형마트에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의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몰려 들었다. 장을 보기도 하고,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 가족들이 흩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상의 소란스러움도 잠시 마트의 내부는 소란함과 혼돈, 불안

으로 가득찼다.에스컬레이터로 사람들이 몰리고, 계단으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비규환 속에서 노인과 어린이들이 속수무책으로 희생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겪었던 공포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수많은 괴담만이 떠돌게 되었다.

 그 사건 이후에 사건의 목격자와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인터뷰..그것이 이 책의 전부다.

예전에 대화가 하나도 없이 써진 책도 읽었는데 그것도 읽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대화로만 가득차 있는 이야기도 쉽지 않다는 걸 알았다. 대화만 있으면 인물들의 행동이나 눈빛이나 주변의 상황이 묘사되지 않아서 실체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 더구나 미스테리인데..중간 정도를 읽어도 뚜렷하게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물론 그렇다고 재미가 없는 건 아니다. 대체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마무리가 될지 읽으면 읽을수록 궁금해졌다.

 공포는 먼 곳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적인 것에서 오는 공포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공포영화의 장소가 학교가 많이 나오고 병원이 많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핸드폰과 관련된 공포영화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일주일에 여러번 출입하는 대형마트가 공포의 장소가 된다면 어떨까..그 곳에서 죽음의 문턱까지 가봤다면 그 공포는 어떨까..상상할 수도 없겠지..

 그 실체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면...원인조차 알 수 없다면...미워해야하고 증오해야 할 대상이 없다면 그 마음을 어떻게 어느 곳에다 풀어야 할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는 요즘....어쩐지 소설 속의 이야기가 현실처럼 느껴졌다. 더욱더욱 현실같아서 감정이입이 되어버렸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그렇게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어쩐지 재미보다는 심각한 현실인식을 얻게 된 듯한 느낌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평범하지 않다.

할아버지를 위해 인생을 결정하고 스스로의 진로를 찾아가는 열 다섯 살 소녀가 있다. 정말 사랑하는 할아버지이고, 둘이 함께 있을 땐 행복하지만 엄마와 함께 있을 때 할아버지는 조금 이상해 진다. 그래서 소녀는 엄마는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집에서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그 할아버지와 함께 살기 위해서 학교에서 금지하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옷을 만들고, 바느질을 한다. 중3이면 아직 어린데..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소녀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렇게 세상과 마주할 용기가 소녀에겐 있다.

 또 한 남자는 즉흥적인 기분으로 가출한 남자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에 가출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가출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여러 여자의 집을 전전하며 어디 한 곳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제대로 된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집에 왔다. 첫사랑의 그녀와 그녀의 딸을 만나면서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다. 늦지도 않았고, 빠르지도 않았던 그 시점에서...

 또 한 여인은 병약한 동생을 돌보는 쉰 살의 여인이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회사원이지만 회사의 구조 조정으로 그만두게 되었고, 동생은 몸이 약해서 평생 단 한 번도 직업을 가져 본 적이 없다. 앞으로의 일도 걱정이지만 그녀에게 마음을 두고 있던 한 남자의 고백에 마음 설레기도 한다. 혼자 있게 될 동생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그의 고백은 그녀를 설레게 했다.

 

이들이 과연 평범한 사람들일까?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이 정말 사랑일까..이들을 평범하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나는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일까.. 누군가에게나 평범하지않은 사건은 존재한다고 하지만 난 그런 사건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이들이 하는 사랑은 축복받거나 이해받지 못할 것들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인생을 빛나게 해 줄 것임에는 틀림없을지도..

그 사랑이 아프게 할 지도..

그럼에도 그들은 그 길을 걸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하는 방법은 나에겐 너무나 버겁다..

그리고 할 용기도 없다. 소설 속의 이야기라서 정말 다행이다.

 

소설속의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지길 마음 속으로부터 빌었다. 행복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