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먼 자들 사이에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여자.

모두 다 눈이 멀었다면 그 안에 눈 뜬 한 사람은 과연 왕이 될까..

애꾸눈의 세상에서 두눈박이는 오히려 비정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볼 수 있는 한사람은 왕이 아니라 오히려 노예에 가깝다.

먹을 것을 조달하고 쉴 사이 없이 터지는 사건들의 뒷마무리를 해야한다.

세상의 온갖 더러움을 혼자서 감당해야하며

자기의 능력 밖의 일이라고 해도

할 수 밖에 없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운전중 시력을 잃게 된다.

그 흔치 않은 증상은 전염까지 된다.

세상은 순식간에 혼돈으로  빠져들고,

실명한 환자와 보균자들은 정신병원이라는 제한된 공간안에

갇히게 되고, 군인들과 대치하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사람들은 모든 감각이 살아있어도 하나의 감각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상실감에 빠지게 마련이다.

본다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며 의식조차하지 못했을 텐데 말이다.

병원안에 갇히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질 수록 ...

그 안에도 밖과 마찬가지로 권력구조가 생기고 착취하는 사람과

착취 당하는 사람..인간 본성의 추악한 면을 드러내며

이미 갈기갈기 찢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드는 사람들도 나타난다.

 

작가의 말이나 혹은 비평가들이 무엇이라고 판단하는지는 모르지만

눈이 먼다는 것은 단지 앞이 캄캄해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감각의 상실은 이제까지의 내가 아니게 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다른 것들이 나를 나타내주기도 하지만

아마도 날 바라봐주지 않으면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착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저 냄새나 소리만으로는..

알아채기 어려운 일이다.

행동과 몸가짐 그리고 타인을 대하는 태도를 봐야만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불안감..내 옆의 타인이 어떤 존재인지 보고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다른 사람의 시체에도 혹은 불행이나 굶주림에도

무관심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을지...

 

본성이 착하거나 아니면 극악무도한 사람이거나 상관없이

시력을 잃었고,

속죄나 뉘우침없이 그 터널을 빠져 나왔다..

결국 인생은 그런건가...

아직 살아있는 것이 이미 죽은 것이 될 때...

평소엔 무심하다가 문득 호기심이 들면 무섭게 빠져드는 편인 내가.

이번 여름 휴가 때엔 잔인한 소설에 몰입했다.

그 중에서 여기 저기 둘러 보다 고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관 시리즈로 명성이 높다는 이야기에 망설임 없이 고르긴 했는데..

일본 작가 책은 취향이 맞거나 어딘가 불편하거나 둘중 하나인 적이 많았다.

우선 관 시리즈를 순서대로 읽을 것을...하고 후회했다.

이 책만으로도 재미를 느끼려면 느낄 수 있겠지만..

순서대로 읽었다면 더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야밤에 어둠침침한 분위기로 만들어 놓고 읽었더니..

스크림과 쏘우 영화를 동시에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충분히 상상 가능하며 그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다고 할까..

 

밀폐된 공간에서 겪는 극한의 상황은 인간 본성의 가장 추악한 것까지

볼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 여타 공포 영화나 호러 소설에서 보여 준 교훈을

답습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잔인함과 생생함은 어느 것에도 뒤지지 않았다..=..=

 

다만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더욱 생생했으면..

범인이 더 의외의 인물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단서가 너무 많이 흩어져 나오고 쏟아져 나와서...

집중하면 범인을 찾아 낼 수 있었다는 것이 아쉽기는 했다.

 

 

 

피를 팔아 생계를 꾸려간다는 솔깃하고 엽기적인 이야기.

중국의 근현대를 거쳐온 허삼관이라는 사내의 이야기.

겉으로 대충 훑어보기엔 그저 엽기적인 이야기였지만,

읽는 도중에도 시대의 아픔이 녹아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희극의 요소가 더 큰 책이었지만,

진정한 비극을 알아야 웃음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어느 작가의 말오랫만에 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줬다.

허삼관은 태어날 때부터 남편, 아버지로 규정지어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자신을 돌보거나 이기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상황에서도 언제나 아내, 아이들을 먼저 생각한다.

자신의 첫째 아들이 사실 하소용의 아들이란 걸 알았을 때도

일락이를 자신이 책임져야할 대상이라는 전제하에

괴로워했고, 일락이가 간염에 걸려 많은 돈이 필요할 때도

여러 도시에서 연달아 피를 팔아 목숨이 위험해지는 것까지

감수하며 일락이의 건강을 위해 돈은 모았다.

아내의 부정했던 과거가 구설수에 오르고 비판투쟁대회에

나가 죄지은 사람으로 낙인 찍혔을 때에도 아내를 버리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조력자가 되어 준다.

가족을 위해서, 오로지 가족을 위해서 생을 바친 그는...

그의 몸에서 나온 피는...

단순한 빨간색의 액체가 아니라...

가족 그 자체였을 지도 모른다.

소리내어 울지 못한 눈물일 수도,

누구에게 털어놓지 못할 회한일 수도,

어디에도 풀어 놓지 못할 울분일 수도...

하지만 온 가족과 둘러 앉아 돼지간볶음에 황주 한 병으로도

그의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만들수 있다. 그가 웃을 수 있는

것은 그가 진짜 원하는 것은 눈물, 울분, 화가 아니라...

바로 그 풍경...가족이 모두 행복할 수 있는 그 풍경이기

때문일 것이다.

허삼관 안에는 가족이 들어 있어야 진짜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 안에도 아마..

허삼관이 들어있을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서 가장 소중한

무엇인가를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진정한 용기를 지닌

사람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