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충동적으로 아..이건 사야겠다..생각했다.

평소 우리나라 소설을 그다지 읽지 않고, 더구나 수필이나 에세이는 정말 요리조리 피해다니는 편이지만..

어쩐지 한 권쯤은 읽어야하지 않을까하는 무른 생각이 들었다.

새삼 글이 어떻고, 내용이 어떻고 하는 것은 어쩐지 주제넘은 일 같다. 평소에 굉장히 좋아하거나 존경하던 작가였다면..

분명 가슴 깊이 새기며 한 글자 한 글자 정성들여 읽었을 테지만, 그건 아니었으니까.

다만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또 한 분의 작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독자의 한 사람으로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여겨진다.

작가 본인은 나이를 들어도 작품은 나이를 먹지 않기 때문에 박완서님의 연세가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시고, 6.25를 겪으시고, 나와 같은 21세기에 살아계셨다니...잠깐은 믿어지지 않았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전쟁의 아픔을 떨쳐내지 못하시고, 개인적인 어려움까지 겪으시면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내려가셨었다니..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경지가 아닌가..하는..


특히 '내 인생의 밑줄'이라는 글에서 나도 모르게 뜨끔뜨끔해지는 부분이 있었다.

나도 책을 구기거나, 책에 밑줄을 긋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책을 돌려 읽는 편도 아니고, 혼자만 읽고 즐김에도 불구..

절대..절대..밑줄은 긋지 않는다. 그것이 그저 책을 아끼는 방법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작가님처럼 누군가에게 나의 얄팍함이 드러날까봐 두려웠던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깊이 공감이 갔다.

그러면서도 소유욕은 강해서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책에 도장을 심각할 정도로 열심히 찍어대고 있는 모습은..

우습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 책에 밑줄 긋는 일은 말이다. 그런 모습을 허영심 혹은 잘난 척이라고 생각하셨지만..

그 말씀에 깊이 공감했지만..밑줄을 긋지 못하고 여전히 메모하는 내 모습에..정말 어쩔 수 없구나..웃어버렸다.

큰 규모든 작은 규모든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자리는 너무나 어려운 자리다.

권력과 지위는 얻을지 몰라도 막강한 책임과 의무는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얼마나 어려운 자리일까..짐작조차 어려운 그 자리..

하지만 한 번도 공석이었던 적이 없고,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숱한 어려움을 겪는 정치인들을..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농담처럼.. 난 시켜줘도 안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 책은 오로지 미국의 몇몇 대통령들에 대한 이야기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한 일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미국의 대통령의 오판을 알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단순히 미국의 대통령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초기의 대통령들보다 20세기의 미국 대통령들은 더이상 미국만의 대통령이 아닌...세계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마치 세계의 대통령 같은 느낌이 든다. 그들의 판단이 세계 곳곳에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분쟁을 불러일으키키도 하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결정을 내려야할 때 우유부단함으로 위기를 부르기도 하고,

심사숙고해야할 때 쓸데없는 자신감과 무모함으로 불행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실수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당연한 사실. 하지만 그건 대통령이기에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이 실수하지 않도록 해야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는 보좌관들이나 참모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쓸데없는 충성심을 잘못된 곳에서 표출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케네디의 피그만 공습이라던가, 린드 존슨의 통킹만 사건,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등등은..

지나친 정말 일어나지 않았어도 되는 인명학살에 불과하다는 느낌.

자칭 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미국에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기 위해 상대당을 도청했던 닉슨의워터게이트 사건..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을 위태롭게 만드는 사람들이 오히려 똑똑한 사람들이라는 이야기에 아주 깊이 공감했다.


하긴 그동안 우리나라를 이끌었던 지도자들도 얼마나 많은 오판을 해왔는지..

그들이 한 올바르고 정당한 일보다 실수하고 잘못한 일들이 오히려 기억하기 쉽다는 것..

칭찬할 일보다 비난하는 일이 훨씬 수월하다는 것도 약간은 씁쓸한 일인지도...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일도 어렵고, 뽑는 일도 어렵고,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일도 어렵고,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까지 포용하는 일도 어렵고,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질 때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일도 어렵고.

그럼에도 그 길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이해불가...

이 사람의 책은 시작은 어렵지만 매력이 있다. 

내가 이 작가을 접하게 된 계기는 다른 책을 읽다가 그 사람이 너무나도 극착하길래 호기심에서 읽어봤다.

소설이라고 예상하고 읽었는데...심리학 책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을 보고..처음엔 좌절도 많이 했다.

왜 이렇게까지 어려운 글을 쓸까, 이렇게 써 놓고 소설이라고 하는 건 반칙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동안 너무 쉬운책에 길들여져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의 정신 세계를 따라가기엔 내 수준이 너무 낮았는지..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해서 읽어가다보니..그의 독특한 정신세계도, 남녀관계에 대한 고찰도 마음에 들었다.

물론 대부분은 남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바라보는..지극히 남성중심적인 이야기들이 많지만..

여자의 행동과 말에 남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짐작해 볼수 있었다.


'너를 사랑한다는 건'. 이 책은 자신을 떠나가며 한 여자가 던진 말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너를 파악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어."라고 말하며 그여인은 이별을 고한다. 독선적 이기주의자..등등의 이야기까지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한 사람을 위한 전기를 쓰기로 한다.

그 대상은 바로 이사벨...그녀의 어린 시절과 현재의 삶에 대한 고찰을 하기위해 심도 깊은 관찰을 시작한다.

어느 한 사람을 알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사랑한다는 건...대체 뭘까..

그는 이사벨에 대해 그렇게 깊게 연구했음에도..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도..결국..헤어짐의 말을 듣는다.


어찌보면 그는 불가능에 도전한거다. 자신조차도 자신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순간이 많은데..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오만한 일이 아닌가 싶다.

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기 위해.. 사랑을 하기위해서 꼭 많이 알아야만 ..잘 알아야만 하는 건 아닐거다.

모르기때문에 생기는 수많은 시행착오들이 사랑을 지킬 수도 있게, 혹은 떠나가게도 하는 것이리라..


사랑이 시작되는 방법이 모두 제각각인 것처럼 끝나는 방법도 모두 다르다. 

그 사람을 알고 있는가, 모르는 가는 정말 그 수많은 이유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연애지침서도 아니고, 심리학 책은 더더욱 아니기때문에 정답이 나와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답을 내렸다고 해서 그것에 따르기도 어려운 일이고,

하지만 한 여자와 남자의 사랑이 이야기에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다는 건....

알랭 드 보통만이 가능하게 해주지 않을까...

그의 책은 언제나 비슷한 것 같은데...아직까지는 여전히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