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라 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이번엔 두 권이나 나왔다.

평소에 나오던 출판사와 번역자가 아니라서 정말 아주 잠깐 망설였지만 ...그래도 요즘 읽을 책도 별로 없고, 기다리는 책도 없고 해서 그냥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제목만 봐도..표지 그림만 봐도 야구와 관련된 이야기인게 분명했다. 야구가 추리의 단서가 되지 않을까..야구 선수가 살인을 하는 건가..처형을 당하는 건가...라는 어처구니 없는 상상을 좀 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배경은 1964년. 마운드에 선 '스다 다케시'는 촉망받는 투수 에이스다. 그의 공을 받아낼 수 있는 든든한 배터리 포수 기타오카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 당했다. 특별히 원한을 사지도 않았고,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는 던 학생이었는데도 죽었다. 그가 사랑하던 개도 함께...그의 앨범엔 '마구를 보았다'란 말이 남아 있었지만, 마구의 정체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스다 다케시가 죽는다. 신사에서 그를 죽인 사람은 그의 오른팔을 가져가 버렸다. 죽은 그의 곁엔 '마구'란 글자가 써있다. 대체 누가 그들을 죽였고, 대체 '마구'는 무엇일까...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새 책이다..라고좋아했는데 꽤 오래 전에 출판된 책이었나보다. 이제서 번역본이 나온건가보다. 배경도 60년대고, 어쩐지 요즘에 나온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과는 분위기도 조금 다른 것도 같고.. 보통은 결론이나 범인을 예상하지 않는데 이번엔 어쩐지 예상이 되는 게 예전 작품이라는게 느껴졌다.

하지만 일단 야구가 소재라는게 좋았고,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사람이 전해주는 이야기도 좋았다.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등분해 놓지 않는 것도 그 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 읽고 난 다음 후련해지는 것보다 어쩐지 짠해 지는 것이 남는다. 그 것만큼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구나 싶었다.

 

정교하다고 말하기는 조금 부족하지만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는 건 확실하다. 한번 읽기 시작하니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추리 소설은 그 재미로 읽는다. 지나치게 진지하거나 또 지나치게 가벼우면 질리는데 말이다.

남은 한 편도 얼른 읽어보자..의외의 발견을 할 지도 모르니까.

그를 처음 알았던 건 '개미'라는 책이었다. 당시 그 책이 나왔을 때..반드시 읽어야할 책~!이라는 분위기였기에..

하지만 정말 대단한 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흔한 소재가 아니어서 더욱 신선했고..

뭔가 끊임없이 감탄하게 만들 줄 아는 작가..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신기한 작가였다.

그의 작품을 모두 읽은 것도 아니고..더구나 '신'은 읽다가 포기..정도가 아닌 아예 때려치운 정도였기에..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하나 엄청 망설였다. 하지만 달랑 두 권....읽을 만한 책도 요즘 별로 없고...그런 불순한 의도를 밑바닥에 깔고.

읽기 시작했으나..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엔 그 의도에 굴복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뇌'에 등장했던 기자 뤼크레스와 이지도르 콤비가 또 부활했다. 다혈질에 행동파..그리고 격한 감정 변화를 보여주는 뤼크레스와 언제나 느릿느릿하고, 생각이 깊고 침착한 평화주의자 이지도로..그들이 뇌의 신비를 파헤지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뒤 다시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기대감이 충만했다.

더구나 '웃음'이라니..어떻게 그 소재로 글을 쓸 생각을 했을까..대체 이 사람의 상상력과 호기심은 어디까지일까,..놀랍기만 했다.

프랑스인이 사랑하는 프랑스인..그것도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었던 희극의 대가가 대기실에서 정말로 웃다가 죽었다.

그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뤼크레스는 이지도르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들은 다시 함께 취재를 시작한다.

 

웃음의 기원..저 멀리 신석기 시대 이후.수메르, 이집트, 인더스 문명의 국가..중세의 역사 속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정말로 일어났던 일의 이면에 '유머 기사단'이란 단체가 있었다..라고 하니..정말로 그러지 않았을까..할 정도로 믿음이 갔다.

 

'웃음'의 시간이 어른이 될 수록 짧아진다는 것..웃는 것에 많은 힘이 필요하고..웃음에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

정말..얼굴이 확 펴질만큼..숨이 턱! 막힐만큼..눈물이 날 만큼 웃어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저 두 사람의 추리도 궁금했지만 나의 웃음에 대해서도 꽤나 심각하게 생각했다.

 

웃음의 힘을 믿고..나도 오늘부터 열심히 웃어볼까..웃을 일이 있어서 웃는 게 아니라, 웃다보면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몰라...

이런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말이다. 

크로스 파이어. 모방범. 그리고 낙원.

이 세 작품을 읽으면서 정말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그 길고긴 소설을 쓰면서도 긴장감을 잃지 않고, 읽는 사람의 심장을 오그라들게 만들며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으니까. 더구나 크로스 파이어는 개인적으로 흥미가 끌리는 불을 다루는 초능력자가 등장했기 때문에 더욱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었다.

그 미야베 미유키였기 때문에 별 다른 고민없이 다른 리뷰나 다른 배경을 보지 않고 그저 읽기만 했다.

 

그런데 정말 철지난 이야기였다. 작가가 2001년에 발표한 책이니까 10년의 공백이 있었던 거고..

물론 그 정도의 격차가 나도 명작은 여전히 명작이라는 걸 알지만 소재가 인터넷과 관련이 있었고.

이미 생활 속에 깊숙히 들어온 인터넷 문화가 그 때 당시엔 모두가 즐기는 문화가 아니었다는 것에서부터 이질감이 생겼다. 아직도 인터넷과 관련된 범죄가 많이 일어나고 있고, 인터넷이라는 게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건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그래도 참신함이 떨어진다고 할까..그다지 매력적인 이야기는 아니었다.

 

각각 다른 곳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도코로다 료스케가 죽고, 그 이전엔 이마이 나오코라는 젊은 여성이 죽었다. 별개의 사건이라 여겼는데 그 두 사람 사이에 접점이 발견되고, 분명하진 않지만 용의자도 나타난다. 도코로다는 아내와 딸을 둔 평범한 가장이라 생각되었지만 여자..그것도 젊은 여자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친절한 남자였고, 정말 이상한 것은 인터넷 상에 또다른 가족을 만들었다는 거였다.

어머니, 가즈미, 미노루라는 완벽하고, 화목한 가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죽었다.

 

 

가족이 해체되고, 서로에게 멀어지고, 삭막한 풍경을 다룬 이야기들은 드라마에도 책에도 넘쳐날 정도로 많이 나온다. 아마 추리 소설의 소재로 쓰인 것도 처음이 아니었을 거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특유의 씁쓸함과 허무함..그리고 약간의 동정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범인에게, 피해자에게도 동정심이 일어난다.

 

하지만 난 아주 치밀한 추리와 적당한 긴장감. 반전..등등이 필요하다. 그것이 추리 소설을 읽는 이유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 그런 점을 충족시켜주기엔 부족했다. 아쉬움도 많이 남고..

 

전작들에서 활약한 치카코나 다케가미 형사가 등장했지만 활약도 별로 없고, 매력도 없었다. 굳이 그들을 이 소설의 세계에 등장시킬 필요가 있었나...왜 이들을 다시 불러들였을까.........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이 분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