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성공적이었던 1차 원정이 끝나고 이젠 그 다음이다.

작가도 말했지만 어째서 인재는 분수처럼 한 시대에 쏟아지는 걸까. 어째서 그 시기가 지나면 인재는 고갈이 되는 걸까..

열악하고 환경도 잘 몰랐던 1차 원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지휘관들 덕분일 것이다.

그 지휘관들이 각 지역을 장악할 수 있었던 건 단순히 군사 수가 많아서가 아닌

그들 각자가 지니고 있었던 리더십 덕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후의 인물들은 그런 지휘능력은 없어 보인다. 반면 이슬람측에선 쿠르드 출신의 걸출한 인재가 등장한다.

그는 비록 훌륭한 가문 태생은 아니었지만, 뛰어난 전술과 처세술, 그리고 지휘능력으로 정점에 이른다.

용맹하기도 하지만 상황 판단도 탁월하고, 잔인한 학살자의 기질만이 아닌 지략가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그런 그를 상대로 싸워야 했던 사람은 바로 어린 나이에 왕좌에 오른 더구나 나병이라는 치명적 약점도 지닌 젊은 왕 보두앵 4세.

어린 나이와 병마와 싸워야 하는 허약한 몸이라는 치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전장에선 선두에 서고, 사람을 부리는 능력도 훌륭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나마 적은 병사로도 살라딘의 군대와 맞서 싸울 수 있었을 것이다.

위험한 장소에서도 선봉에 선 왕의 모습이 군사들에게 얼마나 큰 용기를 주었을지..

 

 하지만 시대는 십자군의 편이 아니었다. 좋은 기세가 무너졌어도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영토의 확장까지는 무리더라도

유지하고 지켜내는 건 가능했을텐데..욕심이 지나쳐 약탈을 자행하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자신들이 세운 명목으로 예루살렘의 해방이 아닌 이슬람의 학살을 자행하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애초엔 종교전쟁이라 부르기도 뭣한 일방적 싸움이었지만, 그 허약한 명분조차 지켜내지 못했다.

그리고 인간들의 이기심에 얼룩져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거나 상황을 파악하는 현명한 눈이 가려지기 시작했다.

대신 이슬람의 편에서는 그 동안의 경험으로 유럽인들과 전쟁하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약점도 보였다.

무작정 달려드는 것이 아닌 약점을 공략하는 법을 배웠던 것이다.

 

 전쟁이란 건 몇몇 사람만으로 승패가 갈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은 숫자로도 많은 적을 물리칠 수 있고,

전면전만이 아닌 게릴라전으로도 전쟁의 운명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패배의 길로 가는 건 많은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는 건 정말 확실하다.

어리석은 몇몇 사람들로 인해 운명의 흐름이 바뀌기도 한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확실히 알게 되었다.

지키려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어리석은 자의 작은 행동이 모든걸 수포로 만들 수 있다는 걸 말이다.

 

이제 3권만이 남았다. 어떤 결말을 맞이할 지는 알고 있지만 그 안에 숨어있는 이야기들을 읽을 마음에 벌써부터 설렌다.

중세 시대의 가장 큰 변혁기를 맞이하게 한 십자군 전쟁.

세계사 시간에 중요한 사건으로 모두들 머리 아프게 암기해 본 적이 있는 사건일 것이다.

마치 조선시대를 임진왜란 전과 후로 나누어 볼 수 있듯이..중세도 십자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세계사 속에서 중세는 나에게 그닥 매력적이지 않는 시대였다.

아주 우울한 영화 그 자체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 시대 사상이 종교였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신앙이 없는 나로써는 종교의 이름아래 모든 사상들이 집약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중세란 시대에 무척 흥미가 일기 시작했다.

무엇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만들었는가..그 속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생활은 어떠했을까..하는..궁금증.

<로마인 이야기>로 익숙한 시오노 나나미 여사가 쓴 <십자군 이야기>는 그렇게 해서 읽게 되었다.

이 전쟁의 본질은 대체 무엇일까..

물론 단편적으로는 알고 있다. 교황권이 황제권을 넘어서고, 셀주크 투르크족이 성지 순례자들을 박해하면서..

비잔틴 제국의 황제가 교황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유럽의 세계는 성지 해방이라는 커다란 목표 아래 한 깃발 아래 뭉쳤다.

이 정도가 십자군 전쟁의 배경에 대해 아는 것 전부이고, 사실 그것이 맞다는 걸 한번도 의심해 본적 없다.

하지만 익히 알고 있었던 카노사의 굴욕의 당사자들..하인리히 황제와 우르바누스 교황.

비록 황제의 무릎을 꿇게 만들었을 지언정 교황에게 강력한 권력이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황제의 권한을 넘어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증거로 택한 것이 전쟁.

그것도 성지 순례자를 구원하고자하는 성스러운 전쟁이었다.

어찌보면 십자군 전쟁을 온전히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다고 생각한 것부터가 오산이었는지도 모른다.

교황도, 황제도, 전쟁에 참여한 기사들과 비잔틴 황제까지도..종교라는 거대한 의미를 부여했지만..

그 속엔 온통 정치 뿐이었다. 그들 머릿속엔 이 전쟁으로 얻을 이익..자신에게 돌아올 이득..온통 그것뿐.

또한 이 십자군을 본 셀주크 투르크 족 또한 처음엔 종교 전쟁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영토를 빼앗기 위한 용병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그들이 내건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 머릿속엔 십자군전쟁=종교전쟁이라는 단편적 생각밖엔 없었던 것이다.

 

 

이제야 겨우 1차 원정이 끝났다. 7차 원정 중 유일한 성공이라 불리는 1차 원정이 끝났을 뿐이다.

앞으로 읽을 책에서는 기나긴 실패담이 연이어 쏟아져 나오지 않을까..

중세 시대의 주류였고, 한 축을 이루었던 기사와 영주, 교황이 이 전쟁으로 인해 기득권을 빼앗기게 되는지도..

미처 알지 못하고, 배우지 못했던 십자군의 이면을 알게 해준 1권을 이젠 덮고..

새로운 십자군을 알기 위해 2권을 펼쳐야 할 때.

모멘트를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거 같은데 더글라스 케네디의 또 다른 책이 나와 버렸다.

그의 이름만 보고도 책을 사게 만든다니..그의 영향력이 커져 버렸다.

 

 해리 릭스..영화를 좋아하고, 언젠가 소설을 쓰겠다는 소박한(?) 꿈을 꾸던 그가 하루 아침에 모든 걸 잃어버렸다.

제자와의 불륜이 학교에 알려지고 언론에 퍼지고 그를 용서하지 못한 아내와의 이혼..

그로 인해 하나 밖에 없는 딸에게조차 외면 당하게 되었다.

그렇게 도망치듯 날아온 파리. 하지만 돈도 없고, 직업도 없는 이방인인 그를 반겨줄리가 없었다.

호텔에 묵는 순간부터 말도 안되는 바가지를 쓰고 더구나 아프기까지 했다.

그런 그를 도와준 터키인 불법체류자 아드낭이 도와 주고 그에게 살 집을 소개해준다.

그렇게 시작된 파리의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집은 좁고, 이웃은 불친절하고, 돈은 점점 줄어든다.

어느날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카밀은 해리에게 의문의 일자리를 제의하고 해리는 받아들인다.

더구나 사교 살롱에서 아름답고 비밀스러운 여인 마지트를 만난다.

외롭고 절망적이던 파리의 생활이 드디어 괜찮아진 거다.

해리가 파리에서 만난 사람들 중 몇몇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만 빼고....

 

더글라스 케네디는 몇권의 책으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나에게 각인된 작가다. 심각하고 심오하게 세계관이라던가..

구성의 짜임새라던가 하는 건 잘 모른다. 다만 그의 글은 재미가 있고, 한 번 잡으면 한 번에 죽~~읽을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책이 나올 때마다 읽고 싶고, 기대감에 들뜨는 지도 모른다.

 

뭐..이 책도 재미있다. 재미있긴 한데..인물들이 조금더 젊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미스테리가 대충 얼버무리면서 끝나는 것이 어쩐지 뒤끝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확실히 해리가 행복해졌다 말하기도 애매하고...뭐랄까..읽어도 읽어도 개운치 않은 느낌이랄까?

날 동굴 속에 집어넣고,,헤매게 만들어 놓더니 결국 꺼내주지도 않고, 출구도 알려주지 않고 그냥 방치해뒀다.

읽는 동안은 정말 즐기며 읽었지만 책을 덮었을 땐 온갖 물음표들이 머릿속에 떠올라 떠나지 않았다..

결국 플러스 마이너스...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