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2'라는 제목이 달린 이 책은....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무척 고민이 되었다.

언더그라운드가 생각보다 읽기 힘들었었고,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 사건'이라는 것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어봐도..

여러가지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도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책장 속에 고이 넣어두고..그냥 화석처럼 굳어버리게 만들까..하는 생각도 여러번 했다. 하지만 같은 길을 걸을 뻔한 친구에게 읽지 말라고..충고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불량한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다. 순수하게 책내용이 궁금했던 거라면 더 좋았을텐데..

 언더그라운드가 그 당시 피해자들의 경험담을 묶어 놓은 글이라면..이 '약속된 장소에서'는 옴진리교에 몸 담았던..그 때 당시까지도 몸 담고 있던 신자들의 이야기를 묶어 놓은 책이다. 하루키 본인이 인터뷰하면서 느꼈던 인상이라던가 간략한 소개를 넣어주는 것은 언더그라운드와 마찬가지였지만..그 전과 달랐던 것이라면 중간중간 하루키의 의문과 궁금증이 묻어나는 질문들이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하루키의 시각이 들어갔다는 점이 좋긴 했다. 그것은..좋았다.

 또 사린 사건들의 실행범들에 대한 인터뷰였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솔직히 있었다. 그 당시의 심정이라던가..그 사건 실행 후에 달라진 점이라던가 옴진리교가 그들에게 가졌던 의미 등등이 더 궁금하긴 했다. 실행범들은 분명 처벌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지만 그 지경까지 가게 된 경로(?) 비슷한 것들이 훨씬 더 궁금하긴 했다.

왜냐하면..하루키와 인터뷰했던 신자들은 정말 호감이 갈 만큼 바르고 순수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허무맹랑하고 몽상가적인 기질들이 느껴지긴 했지만..옴진리교 신자라는 것(혹은 신자였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의 유형이었다. 옴진리교 전체가 모두 한통속이고 그들 모두를 악마처럼 생각했었는데..그 부분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옴진리교에 귀의했던 동기부터 그 수행의 시간들..모두 말이다. 오히려 구원받지 못한 안타까운 영혼들이라는 생각이 깊이 들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아직도 옴진리교에 몸 담았던 사실을 후회하지 않을까..

한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그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 때 그 사건에 대한 궁금증..그리고 옴진리교에 대한 궁금증..그 어떤것도 풀지 못한 채..처음 그대로...

그리고 이미 머나먼 과거속의 지나간 사건이 되어버린 옴진리교에 대한 이야기가..지금 현재....

 

어떤 매력이 있을까..아마.............큰 의미를 갖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여전히......................하루키의 소설이 읽고 싶어진다..이런 책 말고..

가끔씩 안 하던 짓을 할때가 있다. 마치 뭔가에 홀린 듯..제정신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들을 저지를 때가 있다.

그 미친 짓의 결과가 바로 이 책..'언더그라운드'이다. 최근 작품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고, 심지어 하루키의 이야기를 적어놓은 에세이도 아니다. 평소라면 절대 고르지 않았을 거다. 이 책을 고른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하루키의 글이 읽고 싶었고, 새로 나오는 책도 없고, 그 허전한 마음에 읽고 싶었었나보다. 그런데 그 마음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ㅜㅜ 첫 장을 읽는 순간부터 이건 아닌데....라는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책은 충동적으로 골라 읽어선 안된다는 교훈을 얻게 된 셈이다.

 

 1995년 3월 20일....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월요일의 아침..누군가는 학교에 가고, 누군가는 직장에 가는 길이었던 그 아침의 지하철 안에서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신흥 종교였던 옴진리교의 신자들이 교주 아사하라 쇼코의 지시를 받아 지하철 안에서 사린 가스를 살포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고베 대지진을 겪은지 얼마 되지 않았던 일본인들에게는 커다란 상처와 충격을 남긴 사건이었고, 그 때 당시 한국의 언론에서도 꽤 심각하고 자세하게 다루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했던 그 때엔 이 사건과 종말론이 맞물리면서 정말 지구가 끝나는 것이 아닌가하는 공포를 느끼기도 했었다.

 특별한 원한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종교적 사명이라는 이름하에 누군가의 목숨을 노리는 테러가 실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고, 그런 무차별 테러가 일본을 넘어 우리나라에도 일어나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했었다.

 어찌보면 소설 속의 한 장면 같고, 이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은 아마 거짓이라고 치부해 버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 그 지하철에서 생사의 고비를 넘긴 사람들이 있고,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것이 바로 이 "언더그라운드" 이다.

 옴진리교의 사린가스 사건이라는 말만 들으면 흥미가 팍팍가고 재미있을 듯 보이지만..사실....하루키의 목소리가 들어 있지 않은 하루키의 책은 낯설고 또 낯설어서...피해자들의 목소리만 나열이 되어 있는 이 책이 그 당시 사건을 잊어가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었고, 감동을 줬을지도 모르고, 하루키 자신에게도 의미있는 작업이었겠지만..

17년 정도 지난 이 시점에서...... 현재의 시점에선 그 의미에 집중하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오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루키라는 작가의 글을 좋아하고 읽는 이유는 그의 독특한 정신세계와 상상력이 좋기 때문이다. 누구와도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상상력이 좋다. 그 상상력이 묻어나는 소설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마음에 와닿지 않나보다.........

이 책과 세트로 묶여있던 '약속된 장소에서'라는 책도 아직 남았는데 어쩌면 좋을까.ㅠㅠ

드디어 다 읽었다! 말로 다 하지 못할 성취감이 밀려오는 순간이다.

매번 소설만 읽는다는 건 머리에 좋지 않다..인문 서적도 읽어줘야해..라는 이상한 의무감이 있는 편인데..

인문서적은 재미있기가 어렵고, 딱딱하고, 나의 무지함이 드러나기때문에 적극적으로 피하게 되는..

모순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허영심인지, 아니면 호기심인지 모를 관심으로 인문서적을 집게 되는 순간이 꼭 온다.

애초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오래전이었다. 처음 책을 받아들고 너무나 방대한 분량에 놀라버려서 쉽게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용기를 내서 읽어보니 생각보다 재미있었지만, 문제는 역시 방대한 양이었다. 이것 하나만 집중해서 읽었어야 하는데..

자꾸 더 편하고 더 쉽고 더 재미있는 책에 눈이 돌아가버려서 번번히 마무리 짓지 못하고 어영부영 지금까지 끌고 왔다.

그런데 드디어 다 읽었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어 내지 못한 겁니까?" 뉴기니인인 얄리는 작가에게 이런 질문을 했고, 이 질문은 작가로 하여금 이 책을 쓰게 만들었다고 한다.

인류의 진화가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음은 세계사 시간에 이미 배운 지식이다. 일찍이 사람이 살기 시작했던 땅에서 도구가 만들어지고 다른 지역으로 흩어졌다면, 단순히 시간적으로만 계산한다면 지금 세계 강대국은 거의다 아프리카 대륙에 있어야 말이 된다. 더구나 아프리카는 다양한 기후가 나타나고, 식물도 다양하고, 동물도 다양하다. 많은 인구를 수용할 만한 공간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 대륙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이 모여있는 곳이 되었다. 또, 유럽인들이 정착하고 난 다음 강대국의 길로 간 아메리카 대륙 역시 그곳의 원주민들은 왜 그런 자연의 풍족함을 이용하지 못했던 것일까..

현재의 세계 질서에 익숙해져 버려서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의문들이 이 책을 통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차이의 시작이 엄청난 회오리같은 변혁에 의한 것이 아닌 환경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려주고, 그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겨난 문자, 금속, 기술, 그리고 병원균이라는 작은 조각들이 후에 엄청난 힘의 차이를 가져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세계 권력구조는 결국 어느 곳에서 사람들이 생활을 시작하였는가에 의해 결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에 말이다. 여전히 수렵채집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지적능력이 부족하거나 미개해서가 아니라 그 환경에 가장 최적화된 생활을 하고 있을 뿐인 거다. 문자를 가진 민족들이 더 큰 힘을 가질 기회를 얻을 수도 있지만, 문자가 있다고 해도 그것을 전승할만큼의 인구가 없다면 문자의 영향력도 줄어들 수 있고, 이웃한 민족이 놀랄만큼의 농경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기후가 적합하지 않거나 수렵보다 효율성이 떨어지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또, 어느 누구보다 뛰어난 기술력과 창의성을 보여준 메소포타미아지방의 사람들이나 중국인들이 유럽보다 먼저 세계를 지배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정치의 문제로 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읽어야할 내용이 너무나 많고, 받아들여야 할 정보의 양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건 사실이다. 이 책에 나와있는 내용 중 얼마나 받아들였고, 이해했는지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었다. 주제별로 나열하고 설명해준 다음 마지막 부분에서 정리해 주는 식이었기 때문에 내용이 가물가물해도 그 부분을 읽고 넘어가면 따라가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무엇보다 중간중간 깨알같은(?) 유머도 던져준다. 지루하기만 할 것 같지만 긴장을 풀고 읽어도 괜찮을만큼..문자편에서 한글이 나왔을때 느꼈던 감격과 반가움도 빼놓을 수 없고,,

한동안 인문서적을 멀리해야 할까보다. 휴식기가 필요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