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만나기 전 영화를 먼저 봤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이자 배우인 니노미야 카즈나리가 주연한 영화라서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저 봤다. 최근 작품도 아니었고 시작부터 우울해 보이기만 해서 끝까지 볼 수 있을까 염려되기도 했다. 영화 내내 푸른 빛이 감돌았고, 내용도 슬퍼서 어느새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원작을 읽어볼 생각은 하지도 않았었는데 무슨 변덕이었는지 아니면 운명이었는지 그냥 눈에 띄었고 호기심이 일어서 읽게 되었다. 이미 내용도 알고 있으니 아주 큰 감동은 없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예상에서 벗어났다.
구시모리 슈이치는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지내며 그림과 컴퓨터를 좋아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손님이 별로 없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간다. 술집을 하는 친구에게 버번을 사 마시는 것이 슈이치가 한 유일한 일탈. 평범한 슈이치의 일상에 한 남자만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대학에 가고 가족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들, 오빠가 되었을 것이다. 그 남자는 엄마의 재혼 상대이자 이혼한 전 남편소네 다카시다. 슈이치의 엄마와 결혼하고 난 다음 실직자가 되고, 술로 세월을 탕진하다 슈이치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엄마는 슈이치를 보호하기 위해 소네에게서 도망쳤고, 이혼하고 하루카와 함께 단란하게 지냈다. 하지만 소네가 돌아왔고, 가족들에겐 끔찍한 악몽이 시작되었다. 집에서도 그의 발소리에 온 신경을 기울여야 했고,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여동생을 엄마를 이 악마에게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슈이치는 완전한 범죄를 만들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다. 목적을 이루더라도 자신이 잡히면 가족들이 고통을 겪게 될테니 절대 잡히지 않아야 한다. 신중하고 치밀하게 준비한다. 하지만 소네의 죽음은 또 다른 불행을 가져 오게 되었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계획이 조금씩 틀어지면서 슈이치는 시작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슈이치..니노미야가 연기한 슈이치는 예민하고 약간은 신경질적인 면도 있고 괴짜의 인상이 강했다. 차고 속 어항에 들어가 녹음기로 자기 계획을 녹음하는 니노미야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반면 책 속의 슈이치는 예민한 면도 있지만 좀더 착실하고 사교성도 있는 더 평범한 학생처럼 보였다. 그런 일들이 정의를 실현하고 가족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하다니 그런 왜곡된 마음을 품다니 안타까웠다.
그를 집어 삼킨 푸른 불꽃이 대체 무엇이었을까..제대로 시작되지 못한 그의 인생이 안타깝다. 가슴 시리게 아팠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쿵..하고 마음이 내려앉았던 마지막 장면..
책 중에서........
--- 슈이치는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조용한 분노가 차곡차곡 마음에 쌓여간다.그것은 지금까지 자신을 휘감았던 붉은 불꽃과는 다르다. 그의 뇌리에서 빛나는 것은 눈이 시릴 정도로 선명한 푸른 불꽃이었다. 가장 깊은 사색을 나타내는 푸른색. 그러나 그 차가운 빛과 반대로 푸른 불꽃은 붉은 불꽃보다 훨씬 높은 온도로 자신을 불태운다.
---그는 지금에 와서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살인자의 마음을 철저하게 괴롭히는 것은 신에 대한 외경도 또한 양심의 가책도 아니다 더구나 세상에 대한 체면이나 소문 따위는 쓰레기통에나 들어갈 시시껄렁한 일에 불과하다. 그러나 저주의 톱니바퀴처럼 마음을 옭아매는 것은 단지 사실일 뿐이다. 자신과 똑같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 아무리 도망치려고 해도 그 사실에서는 평생 도망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