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는지 인문서적이면서도 딱딱하지만은 않았던 책 '위대한 패배자'를 읽었다.

같은 작가가 쓴 책이라고는 생각하지도 않고, 반대쪽을 읽어봐도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무작정 사두었지만 좀처럼 손이 가지 않았다. 우선은 분량이 만만하지 않았고, 다른 책들 사이에 끼워두어서 당연히 읽은 책인 줄 알았다.

그러다 읽을 책들이 거의 떨어져 갈 때쯤에서야 눈치를 챘다. 이 어마어마한 분량의 책을 아직 안 읽었구나라는 걸..

 비싼 책이기도 했고(;;;;) 위대한 패배자를 쓴 작가라고도 하고..어차피 읽을 책도 그 때는 없었고 해서 읽기 시작했는데..다른 사람들에게 이 책이 어땠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나에겐 조금 당황스러운 책이었다.

 

 일단 방대한 분량에 천재라 여겨지는 사람들..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우리 기억 속에 있지만 천재라고 불리기엔 조금 모자란 사람들이 나온다. 또 천재가 되기 위한 몇가지 조건들도 나오는데..그 조건들이 모두 들어맞더라도 당대의 사람들, 후대의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천재 혹은 승리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는 ......대강은 이런 내용으로 요약하면 맞으려나..

 그런데 난 이 책의 첫 페이지를 펼 때 이런 내용은 상상하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천재들 중에서 제목 그대로 만들어진 승리자들을 몇몇으로 추려 그들의 이야기를 심층적으로 들려 줄꺼라 상상했다. 그런 책이라면 충분히 페이지의 압박이라도 견딜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전~~~혀 아니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은 천재..혹은 승리자..혹은 권력자들이 어떻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몇몇의 질문들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식으로 글이 전개된다. 나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고, 처음의 기대와 달라서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이 책은 무척이나 산만했다. 산만해서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자꾸만 되짚어봐야만 했다. 분량이 이렇게나 많은데 오히려 정리되어 있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집중할 수 없는 이유가 또 하나...이건 물론 개인적 지식의 양의 문제인데...작가가 언급하고 있는 수많은 위인들(?), 인물들 중엔 무척이나 생소하고, 어렴풋한 정도 밖엔 알 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니 꽤나 많았다. 당연히 알고 있을거라고 판단하고 글을 써나간 작가를 원망하기보다는 그 정도도 모르는 자신을 한탄해야하지만..너무 많은 사람들이 나오다보니 찾아보는 것도 한계가 있고, 시간도 오래걸리고... 결국은 모르는 인물이 나오면 대충 얼버무리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불성실을 저질렀다. 아마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보면서 읽었다면 크리스마스는 되어야 끝났을 거다.

 

아는 것이 많고~~~지식이 많~~~~~~~~고, 특히 독일과 관련된 인물들을 많이 알고 있다면 나 정도의 낭패는 겪지 않을지도..정말 정말 나에겐 너무나 어렵고 힘겨운 책이었다.

몇 몇 위인들의 이야기만 들려주었더라면 나에겐 더 좋았을텐데....

수많은 드라마에서 사랑을 이야기한다. 수많은 노래 속에도 숱한 사랑의 이야기가 있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 속에도 사랑은 있다. 유명하지 않더라도 나이와 경제력에 상관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한다.

지금 사랑하지 않아도 과거에 한 번쯤 사랑해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고, 가슴 아픈 이별을 겪어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활 속에서 너무나 당연한 일처럼 사랑을 하는데 정작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가 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언제 그 사랑이 끝이 났는지..무엇이 사랑을 불러 일으켰고, 무엇이 그 사랑을 차갑게 식게 만들었는지.

하긴 세상의 사람들이 모두 각각인데 그들의 사랑 방식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 사랑의 형태 중 그들이 있다. 준호와 민아. 준호의 후배이자 민아의 친구인 경수의 소개로 만난 두 사람은 좋아하는 음악이 같고, 준호는 민아의 속 깊은 모습에 호감이 갔고, 민아는 준호에게서 풍기던 선량함과 반듯함이 좋았다. 그들에게 모두 지난 사랑이 있었고, 나름의 상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것에 두려움은 없었다. 그들은 정말 보통의 연인이었다. 매일 만나고, 주말은 서로를 위해 항상 시간을 비워 두고, 시간을 두고 친구들에게도 소개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열정은 서서히 사그라들고, 그들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상처받지 않을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어쩌면 자연스럽게 결혼하고, 그대로 동화 속이야기처럼 해피엔딩을 맞이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혹은 완성(?)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다. 준호와 민아는 이별을 선언하지도 않았고,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자신이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버렸다는 죄책감은 가지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랑이 끝났다는 걸 알지만 그걸 내던진 무책임한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그냥 그렇게 되어버렸다.

 

 <달콤한 나의 도시> 꼭 읽어보고 싶었지만 아직 읽지 못했던 책의 작가. 정이현. 그리고 무척이나 좋아하는 작가 알랭 드 보통. 이 두 사람의 공동기획 작품이라니 꼭 읽어보고 싶었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흔하지만 가장 어려운 주제인 '사랑'으로 말이다. 대체 어떤 사랑 이야기를 보여줄까 기대가 많았다. 

그런데 뭔가 평범했다. 어쩐지 김이 샐 만큼 평범했다. 하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또 준호의 이야기, 민아의 이야기 모두가 내 곁의 사람들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사랑이었고, 격정적이고 열정이 흘러 넘치는 사랑은 아니었지만 담담한 그대로, 그와 그녀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그것이 꼭 나쁘지 않다는 걸 알았다.

연인들의 이야기는 읽었고, 이제 알랭 드 보통이 들려주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 보러 갈 차례이다.

평범하면 평범한 대로 특이하면 특이한대로 사랑은 모두 흥미롭다. 특히나 다른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아마 평생을 읽어도 질리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나쓰메 소세키..일본 문학의 거장이라는데 나에겐 조금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의 이름을 들은건..아니다. 알게 된건 아마도 전에 읽었던 '신의 카르테'에서 쿠리하라 이치토 선생이 항상 끼고 살던 책..쿠리하라가 그토록 사랑해마지 않던 작가의 이름이 아마도 나쓰세 소세키 였을 것이다. 이 작가의 무엇이 쿠리하라 선생을 사로잡았을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무척이나 생소한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대표작 중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들어 본 적이 있는 거였다. 고작 들어본 정도이고, 아직 읽어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또한 그의 활동연대가 엄청 나게 오래전..거의 100년 전이라는 것에 깜짝 놀랐다. 말 그대로 고전이었다. 고전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썬 시작부터 난항에 봉착한 것이다. 그가 활동했던 시기가 일제 강점기라는 사실에 거부감이 들기도 했고.

 그러나 막상 읽기 시작하니 읽기전의 걱정은 생각도 나지 않을만큼 유쾌한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말 그대로 도련님으로 태어나 막무가내 응석받이로 자랐고, 부모님에게마저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놀부의 심술과 다를 바가 없었다. 고집도 세고, 작은 실수를 덮으려고 남의 집 우물을 막아버리고 하나 뿐인 형하고는 사사건건 부딪힌다. 그런 그에게 햇살과도 같은 존재가 바로 집안일을 돌봐주는 기요였다. 기요만이 도련님의 편이 되어 주었다. 부모님이 두 분 모두 돌아가시고, 형과도 떨어져 혼자 지내게 되었고, 우연한 기회에 시골 한 학교의 수학 선생님이 된다. 도쿄를 떠나 본 적도 없고, 기요와도 떨어져 지내야 했지만.. 잠깐동안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시코쿠로 용감히 뛰어든다. 그 곳에서 막무가내 도련님은 세상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아니 그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어쩐지 불합리해 보였다. 학생들은 신입 교사를 놀리기에 바빴고, 동료 교사들도 이상했다. 교감인 빨간셔츠. 그에게 달라붙어 아첨하기에 바빴던 알랑쇠..수학 주임인 거센 바람..미술 담당인 끝물 호박. 교장 너구리..

도련님이 그들을 만난 첫번째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 빨간 셔츠와 알랑쇠의 말만 듣고 거센바람과 싸웠다가 오해였다는 걸 알고 화해한다. 또한 끝물 호박이 억울하게 전근을 가게 되자 거센 바람과 함께 그의 복수를 다짐한다.

 도련님은 말 그대로 도련님다웠다. 온통 불만 투성이었고, 무엇 하나 타협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불의와도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 결국 올바른 사람을 찾아냈고, 그와 친구도 되기도 했다.

 그가 부딪힌 세상은 녹록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도쿄에서 기다리는 기요도 있고..나약하기만 한 도련님은 절대 아니었다.

그는 분명 그 이후에도 때로는 냉정하게 때로는 정의롭게  올바른 길로 갔을 것이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쿠리하라 선생이 좋아했던 나쓰메 소세키의 매력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말로 번역이 되면서 그 맛을 잃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점을 찾아내지 못해 참으로 아쉽지만 그냥 그대로도 꽤나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100년이 지났어도 유쾌한 것은 여전히 유쾌한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