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타트를 부르는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어두운 학교에서 발자국 소리가 저벅저벅 들린다.  무시무시한 굉음이 들리고, 친구들의 비명소리가 퍼져나간다. 그 소리는 점점 커지다가 줄어들고 공포는 점점 커진다. 도망칠 수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누가 친구들을 죽이고 있는지, 왜 내가 이런 공포를 겪고 있어야 하는지...누구도 답을 주지 않는다. 점점 공포에 잠식될 뿐이다. 어떻게 해야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학교는 매일매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익숙한 장소. 그 곳에서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따위는 상상도 한 적이 없다. 그저 여름방학중에 축제를 준비하면서 학교에서 하룻밤 지낼 예정이었을 뿐..그런데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잊을 수 없는 밤이 시작된 것이다. 그 일을 벌인 사람이 평소에 믿고 따르던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말할 수 없는 배신감, 공포..그리고 죽음이...

 

 하스미는 자신의 작은 세계를 부수려는자, 위협하는 자를 모두 제거하려 한다. 자신의 애완동물로 만들었던 야스하라도 없애야 하고 그 현장을 목격했던 나가이 아유미도 모두 제거해야할 대상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북적이고, 숙직 선생님까지 있는 학교에서 시체를 처리하는 일이 너무나 어려웠다. 그래서 시체를 시체의 산에 던지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그들을 모두 죽이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하스미는 사이코패스다. 그런데 그렇게 한 마디로 정리하기엔 너무나 소름끼치는 사람이고 잔인하고 무자비하다. 자신을 믿고 있는 학생들의 눈을 보면서 미소를 지으며 생명을 빼앗는 사람을 사이코패스라는 단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어떤 상황이 닥쳐도 자신 밖에 알지 못하고 어떤 일이 벌어져도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이용할 줄 아는 교활한 남자이다.

자신만의 작은 세계가 무너지려 할 때 그의 비상한 머리와 예리한 감각으로 철저하게 은폐하고 그대로 도망칠 수도 있었다. 시체를 숨기기 위해 시체의 산을 만들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하스미는 도망치지 않았다. 학살을 저지르고도 그 상황을 이용하려 한다.

어떻게도 말할 수 없는 잔혹한 사람이다.  이런 자를 사람이라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그에게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시킬 만한 과거가 있지 않을까 했지만 그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에게 있어 사람들이란 길가에 널려있는 돌멩이와 같다. 발에 걸리면 멀리 차버리면 되는 존재.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애완동물과도 같은 존재.

그런데 이런 사람이 소설 속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런 일들이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뒷맛이 씁쓸할 수 밖에 없었다..

온통 피비린내 뿐인 소설 속에서 생생한 현실의 감각을 맛보았다.  

푸른 불꽃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기시 유스케의 소설을 하나쯤은 더 읽어 보고 싶었다.

분량이 너무 많고, 표지도 그냥저냥이라서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오랫만에 모험한다는 생각으로 저질렀다. 그렇게 오래전에 사두고 잊은 듯 쳐박아 두었다가 망설이며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강렬했다. 까마귀 후닌과 무닌..그리고 학생들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하스미 선생님. 그리고 개성넘치는 다른 선생님들과 아주 다양한 성격을 가진 2학년 4반 학생들. 명문학교라 칭해지는 마치다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였다. 이야기 속에서 하스미 선생은 학생들을 열성적으로 지도하고, 문제 상황을 잘 해결하고, 학생들이 마음을 터놓고 상담할 수 있는 믿음직한 선생님이다. 정말 훌륭한 선생님의 표본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스미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남달랐다. 그는 완벽하게 평범하지 않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온통 피로 얼룩진 과거를 가진 끔찍한 사람이었다. 뛰어난 수재로 미국 유학까지 가고, 유명한 금융회사에 취직한 그가 어째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갖게 되었는지 아직 밝혀지진 않았지만 그에게 있어 학교는 그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하나의 세상이었을 것이다. 그가 학생들을 통제하는 방식이나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는 선생님들을 제거하는 방식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집요하고,  잔인하고 치밀했다. 사람들만이 아니라 그의 생활에 방해가 되는 까마귀나 개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겉으로는 완벽하게 사려깊고 다정한 사람이지만 그의 본질은 그렇지않다. 무서운 사람이고, 차가운 사람이다.

 

 하스미가 수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는 몇몇 사람들도 있긴 하다. 다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섬뜩한 기분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깨닫진 못하고 있다. 대체 하스미는 수많은 작은 세계들 중에 왜 하필 학교라는 곳을 택했을까.......

 

 아직까지의 상황만 봐서는 하스미가 극악무도하고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겠지만, 그가 단순한 쾌락 살인자인지 아니면 뭔가 그에게 그런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 과거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들이 있는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냥 사연이 있는 악인이라고 해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의 생각이 너무나 궁금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죽는데도 심지어 자신의 부모님까지 죽여가면서까지 얻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으며, 그래서 그는 평온해졌는지....그것이 궁금하다.

 

 아직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다. 능수능란하게 살인을 해온 하스미 선생의 본모습을 아직은 어리고 순진하기만 한 학생들이 밝혀낼 수 있을까...어떤 결말이 나오더라도 씁쓸한 뒷맛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정말 강렬하면서도 우울하고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는 책이었다.

 

 새러의 인생 2막이 열렸다. 잭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은 사랑을 확인했고, 그가 새러에게 돌아올 수 없었던 이유를 들었다.

그에게 가족이 생겼기 때문이다. 부인과 아들. 하지만 그걸 알고도 새러는 멈출 수가 없었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그렇게 아슬아슬한 그들의 연애가 시작되고, 새러와 그의 오빠 에릭은 사회적으로 성공한다. 유명한 코미디 작가가 된 에릭과 신문에 서평과 사설을 쓰는 새러. 여전히 사이가 좋고, 서로를 의지하는 남매는 성공을 만끽한다.

그런 그들에게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에릭이 대학시절 가입했던 사회주의 단체. 그의 과거가 발목을 잡는다.

어두운 사회 분위기 속에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에 그대로 휘말린 에릭. 동조자와 사회주의 단체에 가입하게 만든 사람들을 밀고하라는 FBI의 말을 듣지 않은 에릭에겐 실업과 파산 그리고 퇴락만이 남았다. 그는 좌절했고, 술에 빠져들고, 건강을 해치게 되었다.

새러는 오빠에게 힘이 되고 싶었지만, 에릭은 결국 죽고 말았다. 오빠를 잃은 상실감이 컸던 새러는 더욱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다. 에릭을 밀고한 사람이 바로 잭이었다. 새러는 그렇게 마음 속 깊이 사랑했던 두 사람을 잃었다.

용서할 수 없었다. 잭을 용서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녀의 인생에서 잭을, 유일한 사랑이었던 그 남자를 떠나보내기로 했다.

그 후로도 계속된 그녀의 인생. 그 인생의 한 자락에서 케이트를 만났다.

 

새러에게 어째서 이렇게 힘든 일들만 생기는 것일까. 그녀의 선택이 나빴던 것일까. 모두 그녀의 잘못된 선택에서 비롯된 일이었을까. 잭을 그냥 하룻밤의 연정으로 끝냈더라면, 다시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를 다시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그를 잃은 상실감에 황급히 결혼을 결정하지 않았더라면..그녀에게 이런 일들이 생기지 않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인생은 숱한 우연과 수많은 혼돈이 얽혀 이루어진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이라는 후회는 이미 일이 시작되고 난 다음에나 들 수 있는 생각이다. 어떤 결정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불행해지기 위해 결정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 결정의 결과가 어떤 식으로 나타날 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새러 역시 행복해지고 싶었고, 행복했고, 그랬기 때문에 상실감이 컸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는 동안 조금씩은 불행하고, 조금씩은 행복하다. 행복하기만 한 인생은 없다. 그렇기에 행복한 순간이 오랫동안 지속되도록 필사의 노력을 하는 지도 모르겠다. 행복해 지기 위해서. 새러의 인생도 그렇게 불행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책 속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비극을 두려워하며 산다. 비극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비극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어디에나 스며들어 있다. 우리는 비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 성벽을 쌓으며 평생을 보낸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비극의 침입을 막아낼 순는 없다. 비극은 뚜렷한 목표도 없고, 우발적이고, 무차별적이다. 비극이 밀어닥치면 사람들은 이유를 찾는다. 왜 자신이 끔찍한 비극을 겪어야만 하는지 따져본다. 비극에 담긴 신의 메시지가 뭔지 궁금해 한다....................

 

................" 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새삼 깨달았어. 삶이란 그 자체가 근본적으로 재앙이라는 사실을...인생이라는 이야기에는 사실 해피엔딩도 비극적인 결말도 없어.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간직한 사연이 있지만 해결을 보지 못하고 그냥 끝나 버리게 돼. 대개는 혼란의 와중에 갑자기 끝나 버리지. 우리의 생이 종착점이 있는 아수라장이라는 사실만 안다면..."

" .........누구에게나 끔찍한 일이 일어나. 삶이란 게 기본적으로 그렇게 정해져 있으니까. 그렇지만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내가 지금 행복해보이니? 나 역시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아. 하지만 특별히 불행하지도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