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삶이 뒤틀려버린다면 당신은 어떻겠는가.

 

이런 물음을 던지게 만들었던 「나가사키」나에게는 사각사각 밤하늘이 별들로 아름답게 수놓아진 도시로 기억되고 있는 곳이었다. 직접 가본적은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고향이자, 그 세계를 동경해 꼭 한번은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 나가사키. 그래서일까, '나가사키'라는 제목만 가지고서도 충분히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다.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제목만으론 당연히 일본소설이라고 생각했지만, 프랑스 작가가 쓴 작품이라니 뭔가 신선한 느낌. 일본 소설과는 어떤 다른 매력으로 나를 이끌고 갈 것인지, 기대되었다.

 

  원자폭탄의 폐허를 딛고 힘겹게 살아난 잿빛도시, 나가사키.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문구. 제 2차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그 밤하늘이 아름답던 나가사키는 원폭의 피해를 입었다. 이 책의 내용은 그 원폭으로 인해 집주인 몰래 이불 벽장 속에 숨어산 일본 여인의 충격실화. 그리고 2008년 5월 <아사히 신문> 을 비롯해 일본의 여러 신문에 실렸던 사회면 기사를 바탕으로 삼았다고 전하고 있다.

 

  이 충격사건은 나가사키 변두리에 혼자 사는 쉰여섯의 남자가 정상처럼 보이는 집안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는데서 시작된다. 아침에 나갈 때는 15센티미터였던 음료가 8센티미터로 줄어들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가 하나씩 새로 발견되는 증거에 그는 몸서리친다. 범인을 잡기 위해 웹캠을 설치하고 그 범인을 잡았다. 내용은 이렇게나 간단하다. 어떻게 범인이 숨어들었고 그렇게 긴 기간동안 집주인이 모를 정도로 지낼 수 있었는지 또한 기이하지만, 내가 이 책에 주목하는 점은 이런 것이 아니다.

 

  나는 세상을 피해 혼자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저녁, 모든 밤들을 다시 떠올렸다. 유리관 속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은신처며 땅굴이며 아지트라 생각했는데. 당혹함과 더불어 분노가 피어올랐다.(55쪽) 범인이 잡혀가고 나서 그동안의 진상을 형사로 부터 듣고 있다. 그는 혼자였다. 함께 일을 하는 동료가 있었다할지라도 그는 늘 겉으로 맴돌았다. 퇴근 후 동료들이 맥주 몇 잔 정도를 마시러 다닐 때 자신은 혼자 여섯시를 넘기지 않은 시간에 일찍 저녁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어쩌면 그는 오래전부터 혼자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그렇게 혼자의 시간을 편하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 집에 마음을, 애정을 쏟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을 의식할 필요도, 신경을 쓸 필요도 없는 유리관 같다고 생각하던 집이 실제로는 혼자가 아이었던 사실에 그는 멍해져 있다. 은신처며 땅굴이며 아지트였던 곳이 함께 공유하는 공간이었던 것에 대한 당혹감이 그를 분노케 한다.

 

  위기가 사람들을 조금 더 혼자로 만들었다. 대화에 수도 없이 등장하는 '우리'라는 말이 아직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그 '우리'는 죽어가고 있다. 각각의 '나'들은 불 주위로 모여드는게 아니라 동떨어져 서로를 염탐한다. 저마다 이웃보다 잘 헤쳐 나가고 있다고 믿는데, 어쩌면 이 또한 인간의 종말일지도 모른다.(78쪽) 우리는 점점 혼자가 되어가고 있다. 서로 필요한 부분만큼만 공유하고, 그 이상을 내보이지 않는다. 같은 공간을 사용하거나, 함께 일을 하는 정도의 해를 끼치지 않을 만큼의 공유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혹은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딱 그만큼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정도일까. 이 책에서는 '우리'라는 말이 참 낯설다. 각자의 고독을 안고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삶을 사는 그와 그녀의 삶은 공유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고독이라는 이름아래 하나로 묶여 있다.

 

  매일 저녁, 저는 낙관하며 누웠지요. 이건 농담이야. 자고 나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갈 거야. 이렇게 의미를 상실할 수는 없어. 별, 바람, 인간, 이 모든 게.(112쪽) 그녀의 삶도 평화로울 때가 있었다. 그 태풍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원폭이 그녀의 가족들을 앗아갔고, 보금자리까지 빼앗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싶었을 뿐이다. 바로 남자가 혼자 살고 있던 그 집으로. 그녀의 행복한 시간이 고스란히 베어있었던 그 집으로 말이다. 제자리로 돌릴 수 없는 시간이 그녀의 삶을 물고 늘어졌지만 그렇게 옛 추억에 잠겨 그 집에서 살아가고 싶었던 그녀가 안스럽고 안타까웠다.

 

  지진이 몰고 온 피해. 지금 일본은 또 한번 이런 아픔을 겪고 있다. 그래서 그녀가 숨어 살 수 밖에 없었던 그 상황이 더없이 마음이 아프다. 한순간에 자신의 보금자리를, 가족들을 잃고 무엇부터 시작을 할 수가 있을까. 그 마음 속에 분노는 어떻게 삭여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도 살아내고자 하는 마음들이 참 대단하다고 여긴다. 어찌보면 쉽게 놓아버릴 수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견디고 이겨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들의 침착함에 더한 박수를 보낸다.

 

  그는 그녀가 숨어든 그 시간에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빼앗겨버린 느낌때문에 더이상 그 집에서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편지로 그가 그녀를 조금은 더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세상과 조금은 화합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살아줬으면 좋겠다. 힘을 내주었으면 좋겠다. 

 

 

왜 자꾸 어긋나기만 하는지 답답해서 해결책을 찾아보고자 주문을 했다. 남자와 여자. 대체 왜 이리도 다른 것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전혀 다른 대답이 돌아온다. 그 사람과 맞지 않는 건지 아님 남자와 여자가 달라서 그런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 책에도 여러가지 상황이 나온다. 사랑을 시작할 때 부터 헤어지기까지. 나는 여자인지라 여자의 입장에 고개를 무수히 끄덕인다. 책으로 읽을 때에는 남자의 마음, 혹은 심리가 이해가 가다가도 실제 맞딱들이면 이렇게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은건 왜 일까.

  연애를 참 오래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상황은 조금 우습기도 하다. 지금의 나에겐 설렘, 끌림 같은 건 잊혀진지 오래니까. 마음을 졸이는 일도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 결혼한 것은 아니기에 나는 왼쪽으로 그는 오른쪽으로 갈 때가 꽤 있긴 하다. 오래 만나왔으니까 그나마 이해하고 넘어가는 거다. 그런데 이게 과연 사랑일까?

  사랑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해답을 얻고 싶어 집어들었지만 설레임이 있을때나 와닿을 법한 상황들이 즐비한지라 나의 마음에 그렇게 와닿지는 않았다. 나의 마음이 무미건조하니까 다른 사랑도 그냥 시들해져 보이나보다. 익숙해지고, 서로에게 길들여져가면서 자꾸 사랑했던 때를 잊어버리는게 마음이 아프다. 우리도 이 책처럼 절절할때가 있었나 싶고, 애틋했을 때가 언제였던가 싶고.
제일 공감이 갔던 부분은 아무래도 헤어짐 쪽. '권태'라는 말이 요즘은 너무 와닿는다. '사랑'은 지속될 수은 없는 걸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도 사랑인지, 누가 명쾌하게 속시원하게 대답해줬으면 좋겠다. 이런것도 사랑이라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도.

 나에게 다시 설레임이란 의미를 부여해줄 수는 없어도 마음가는대로 해야함을 다시한 번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읽고, 내 마음을 보여주려고 하기보다는 내 마음을 먼저 보여주는 게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데 훨씬 성공적이라는 거.(프롤로그 중) 사랑을 처음 시작할 때는 그랬다. 내가 좋으면 그만이었다. 나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서 그가 아니라고하면 그 때 손을 떼어내면 되는 것이라고. 그 때는 그렇게 간단했던 일이 지금은 잘 되지 않지만. 상대에게 맞춰 하려고 하면 정작 나 자신은 없어지게 되는 것 같다. 감추는 것이 많아진 세상에서 좋아하는 감정까지도 숨겨야한다면 얼마나 슬플까. 마음을 얻기 위해 마음을 보여준다기보다,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상처가 되어 돌아오더라도 나중에 후회는 없기 때문에. 내가 하고 있는 지금의 고민도 사랑이기 때문에 하는거라고 믿고 싶다.

그래서,
그래도,
그러니까 ……
사랑입니다

야구시즌이다. 작년과 올해만큼 야구를 사랑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마 직관승률이 좋아서일거다. 야구를 그냥 띄엄띄엄 좋아했을 때에는 -야구자체를 즐긴다기 보다 응원문화를 좋아한다거나 이기면 그만인- 플레이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관람을 하러 갔을 때 이기느냐 지느냐가 관건이었다. 무조건 타자는 치면 좋은 것이고, 투수는 잘 던지면 되는 것이다. 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야구를 좋아했다. 밖에서까지 계산적인 모습이 싫어 힘껏 소리지르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하나의 방법에 불과했던 야구를 조금씩 깊이 알아가면서, 방망이를 두드리는 것이 다가 아닌 정말 재밌는 스포츠구나, 생각하는 야구가 이만큼 중요하구나 느끼게 되고 무엇보다 선수들 플레이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며 야구라면 사족을 못 쓸 정도로 빠져있다. 그야말로 역전드라마, 야.구. 

  지인의 추천으로 들여다보게된 야구감독. 뛰는 건 선수들이니까 사실 감독이 하는 일은 그닥 많지 않아보이긴 한다. 하지만 요즘 같은 때에는 선수를 좀 더 믿어주지 않고 마음에 안드는 플레이를 한다고 해서 바로 교체하고 어떻게든 매꾸기 식의 야구를 보고 있자니, 울화통이 터진다. 예전같으면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이기면 재미있는 경기이고, 지면 재미없는 경기라고 결론짓던 나였는데. 관심을 갖다보니 야구에 관한 소설도 읽게 되더라. 솔직히 내가 좋아하는 선수는 공격이든 수비든 뭐든 잘했으면 싶다. 왜 충분히 칠 수 있는 타자를 번트를 대게 만드는 것인지, 불만이 참 많았었다. 한점 한점에 목말라 정말 하고 싶은 야구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선수들의 표정이나 플레이를 볼 때마다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해진다. 진짜 그들이 원하는 야구라는게 대체 무엇일까. 선수의 관점이 아닌 감독의 관점으로 보게 된 이 소설,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을 어느정도 해소시켜주기에 충분했다.

"타이틀은 야구 선수의 훈장이라고 하는 걸 잊지 마. 절대로 자기 걸로 하는 거야. 그리고 모두에게 가르쳐줘. 팀플레이를 하면서도 타이틀을 딸 수 있다는 걸." (91쪽) 팀플레이.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선수들과 감독, 코치의 호흡이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그 경기의 내용에는 관심이 없던 나에게 이 책은 굉장한 교훈을 안겨주었다. 무조건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닌,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누구나 다 홈런타자가 되고 싶고 4번타자가 되고 싶다. 그야말로 중심타선. 하지만 연결고리가 없다면 그 중심타선 조차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테이블세터를 굉장히 가볍게 생각했었다. 일단 출루만 해주면 그 역할이 끝나는 약간은 비중이 낮은. 그러나, 팀플레이를 중요시 하는 팀은 테이블세터가 굉장히 바삐 움직인다. 이런 팀일수록 쉽게 흔들리지 않고 강하더라. 투수를 긴장시키는 힘, 집중력을 흐트리는 것이 그들의 몫인데 중심타선으로 연결되면 득점으로 가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도루, 혹은 홈런 등의 타이틀에 눈이 멀어 자신의 타순의 역할을 소화하지 못한다면 경기는 패하는 지름길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팀플레이' 이제서야 그것이 승리의 밑거름임을 나는 안다. 

 갈피를 못 잡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마시오. (248쪽) 팀이 승리하지 못할 수록 압박감은 더욱 심해진다. 자신의 타격감을 찾지 못하고 자신감이 떨어지고, 좋았던 감이나 자세마저 잃어버리게 되면 정말 그때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순간이 된다. 이를 지켜보는 감독도 답답하겠지만, 그 당사자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본인 스스로도 이겨내야겠지만 감독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믿어주는 것이다. 원래의 감을 찾을 때까지. 우리네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정말 이것도 되지 않고 저것도 되지 않는 것 같으면 차라리 복잡하게 생각하지말고 머리를 비우는 것이 차라리 도움이 된다. 그것이 야구에도 적용된다. 왜 잘 되지 않지. 발버둥치지 않고 물흐르듯 내버려두는 것도 필요한 것이다. 선수들이야 이렇게 무기력해질 수 있지만 감독이라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무기력이 선수들에게도 전염되어 아예 갈피를 못잡게 될 수도 있다. 정말 아무나 감독 못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선수들을 향한 굳은 믿음, 승리에 대한 갈망이 선수들보다 더 커 그것을 통틀어 컨트롤 할 수 없다면 좋은 감독이 될 수 없거니와 승리조차도 없을테니까. 지도자라는 위치는 참으로 어렵다. 

 야구는 결코 단순한 공놀이가 아니다. (324쪽) 한없이 연패로 추락하고 있을 때, 어찌되었건 다시 일어서기 위해 함께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면, 왜 야구가 우리 인생과 똑같다고 하는지 알 수 있다. 혼자서 살 수 있는 삶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말이다. 함께 힘을 실어주고, 기합을 넣고 더 잘할 수 있다고 박수쳐주는, 이것이 어찌 배트만 휘두르면 다인 스포츠라고만 할쏘냐. 조금이라도 투수의 구위를 흐뜨러뜨리기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고 무사에도 도루하는, 다음 주자가 마음껏 치고 달릴 수 있게 먼저 그 다음 베이스에 발을 놓아두려고 하는, 함께 생각하는 야구가 마구마구 환호하게 그 자리에 앉아있을 수만 없게 만들어 버린다. 함께 뛰는, 우리네 인생같은 야구. 긴 시간동안 공수교대하며 배트를 휘두르고, 공을 던질 뿐이지만 그 매순간 하나하나가 우리 인생과도 같다. 실수를 할 때도 있고, 운이 따라줄 때도 있고, 호흡이 잘 맞을 때도 맞지 않을 때도 있다. 마냥 좋을 수 만은 없지 않는가. 이렇게 이기고 지고, 수많은 승부를 반복하면서 그 가운데에 함께 맞은 쾌락과 그 열정을 누릴 수 있다면 제대로 인생을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야구라는 스포츠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준 소설. 나를 꼴통이라고 놀리는 야구 모르는 나의 주변인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진짜 야구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보라고, 우리가 사는 인생을 맛볼 수 있을 거라고, 그제서야 내가 왜 야구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지를 알게 될 거니까.

I Love Baseb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