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을 준다:::우리들의 시간:::박경리

 

내가 시를 읽은게 얼마만이더라... 한번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고등학교 이후에 읽은 시를 떠올려보면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에 나오는 시, 혹은 카페에 앉아서 벽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에 적힌 시 이렇게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문학은 다양한데 그 중 편향되게 접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시를 접하기 어려웠을까? 혹은 시를 접하는걸 어려워 했을까?

 

 시하면 제일 처음 떠오르는 것들은 갈래, 주제, 운율, 시인의 상황, 배경 등이다. 중 고등학교 때 시를 공부하던 습관과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그렇다. 시를 틀에 박힌대로 해석하고, 외우고 하다보니 시가 재미있을 리가 없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시는 어려운 것, 시는 재미없는 것, 시는 암기과목 같은 것, 시는 전문가가 해석하고 나는 그걸 받아들이는 것.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시에 대한 이런 판단은 너무 섣부르다고 할 수밖에 없다. 시는 자신의 상황에 맞게, 내 나름대로 해석하는 것이라는 것만 알게 된다면 너무 재미있고, 매력적인 문학이 된다는 것을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을 통해 알게 되었다.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에서 처음 보는 많은 시들을 접하면서 시에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고, 시를 읽으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고, 시와 철학의 연결고리를 언뜻 찾아볼 수 있었다. 이렇게 시에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시집을 읽고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나의 기념비적인 첫번째 시집이 박경리 시집-우리들의 시간이 되었다.

 

시는 언어를 정제하고 정제해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은 도끼다'에서 말한 것 처럼 한문장 한문장, 혹은 한 단어 한 단어를 느끼고 타야된다. 그리고 나만의 세계로 그 단어를 가져와서 느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내가 제대로 느낀 시 몇편을 한번 적어보겠다.

 

생각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하고

수억 년 쌓인 지층 모양

생각은 쌓이고 쌓여

내 머리통은 터질 것만 같다

생각 사이로

한 마리 나비가 날으고

생각 사이로

사슴 한 마리 지나가고

생각 사이로

겨울 들판 비둘기 한 마리 있고

그래서

내 머리통은 깨지지 않았나 부다

 

생각을 지층으로 표현한 것이 놀랍기만 하다. 그리고 그 생각사이로 나비가 날아가고, 사슴이 지나가고, 비둘기 한마리가 있다고 하는 그 발상에 또 한번 놀란다. 우리의 머리도 이럴까?혹은 아직 이렇게 수억 년 쌓이 지층모양이 되기까지는 멀었나? 이 시를 읽고, 무언가 내 마음에 들어와 울리는 것 같아서 몇번이고 읽어보았다. 또 다른시를 한번 살펴보자,

 

돈암동 거리

자주색 두루마기 펄럭이고

구두 소리 울리던

돈암동 거리엔 바람이 불었다

크다만 플라타너스 잎이

소리 내어 떨어지고 청춘의 쓰라림이 맴을 돌았다

돈암동 바람 불던 거리

 

자주색 두루마기가 지금 우리 세대에는 어울리는 단어는 아니지만 전체적인 느낌이 확 온다. '청춘의 쓰라림'. 누구나 다 가지고 있을 청춘의 쓰라림. 굳이 돈암동 거리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박경리 시인이 말하는 이 이야기를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신촌 거리, 로데오거리, 종로3가. 등등. 우리가 처한 환경을 대입해서 생각해 보면 시가 더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박경리 시인은 '견디기 어려울 때 시는 위안이었다.'고 한다. 

그렇다. 

사랑에 빠질 때 우리는 사랑이 묻어나는 시를 읽으며 격하게 공감하며, 사랑하는 이에게 시를 읽어주고, 편지지에 적어주며, 시집을 사준다. 이별을 하고 나서 우리는 이별의 시를 읽으며 시인의 표현에 공감하고, 정제된 단어가 칼날이 되어 가슴에 꽂혀 울게 되고, 이렇게 읽은 시를 조그만 메모지에 옮겨적어 가슴깊이 간직하고 두고두고 읽어보며 이별의 아픔을 달랜다.

 이렇게 우리 모두에게 견디기 어려울 때 시는 위안이 될 것이다. 처음 접한 시집이 박경리 시집이여서 참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견디기 어려울 때 시는 위안이었다.

 

 

이 말을 가슴깊이 새겨두며 다시 한번 우리들의 시간을 펼쳐들고 시를 찬찬히 읽으며 그 내용을 타보려고 한다.

박경리, 우리들의시간, 시, 돈암동거리, 생각

철학을 논하기 전에 한입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다.

한입. 딱 한입이다. 사실 우리는 한입에 많은 것을 결정한다. 맛있다, 맛없다. 좋다, 싫다. 등. 한입에 무엇인가를 판단한다는 것이 옳고 그르다, 혹은 좋은 방식이다, 별로 좋지 않은 방식이다를 떠나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는 많은 것들을 한입에 결정한다.

자. 이제 

철학.철학은 무엇일까? 시작부터 너무 거대한 질문을 던져버렸다. 하지만 친절하게 많은 철학자들이 이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데 막상 철학에 대한 명확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철학에 대한 철학자들의 정의를 한번 옅보자. 

마이클 샌댈. 철학은 사물들이 존재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고찰 하는 일입니다. 여기에는 사회와 정치, 경제 제도들의 구성 방식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일도 포함됩니다. 철학은 사물들이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늘 암시합니다.

이렇게 철학에 대해 나름의 명확성을 띤 대답을 내린 철학자들도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철학자들도 있다.

애런 리들리. (웃음)

사실 이 대답이 더 철학적인 대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웃음에는 철학이 존재한다고 말이다.

재프 맥마한. 그냥 웃어도 될까요? 철학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군요.

그렇다. 이 질문은 너무나 거대한 질문이다.

가장 와닿았던 철학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재럴드 레빈슨. 이런, 저는 당신이 정말 이렇게 어려운 질문을 던질 줄은 몰랐어요. 철학이 무엇인지에 관한 농담 하나 말씀드릴게요. 데이트 약속이 잡힌 한 청년이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했어요. <아빠, 정말 긴장돼서 그러는데요, 갑자기 말이 막히면 무슨이야기를 해야 될까요?> 아버지는 말합니다. <아들아. 3F가 있단다. 음식Food, 가족Family, 철학Filosophy을 말하는 거지.> 그러자 아들이 말합니다. <알았어요, 꼭 기억할게요.> 그렇게 아들은 데이트를 하러 나갔고, 저녁을 먹은 후 자동차 안에서 데이트를 즐기게 되었죠. 그러다 정적이 찾아왔고, 아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궁리 합니다. 이가 덜덜 떨릴 지경이었습니다. 아하, 아버지의 조언을 떠올려 보자. <그런데 메리야, 아스파라거스 좋아해?> <글쎄, 별로 안 좋아해.> <그럼, 형제가 어떻게 돼?> <형제는 없어> <좋아. 그렇다면 너한태 오빠가 있었다면, 그가 아스파라거스를 좋아했을까?> 이게 철학입니다.

이해 될 듯 말 듯. 혹은 웃음이 나올 듯 말듯 한다.

 너무 커서 한입을 물어보겠다는 것 조차 욕심일 것 같은 철학. 철학을 당당히 한입 주겠다고 우리에게 말하는 책이 바로 <철학한입>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25가지 이야기를 전하려고 한다. 그 25개의 이야기 안에는 철학적인 요소가 당연히 들어가 있다. 상대주의, 우정, 세계 시민주의, 다문화주의, 관용, 무한, 모호성, 비극의 역설, 무신론, 인생의 의미, 악의 문제 등. 

벌써 부터 머리가 아프면 안된다. 더 아파질테니까. 

 하지만 큰 고통 후에 성장한 자신을 본다는 것은 초사이어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철학적 사고에도 적용이 된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다.

르네 데카르트(1596~1650).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tigo Ergo Sum)'라는 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철학자이자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그는 평생의 습관이 '늦잠자기'였다고 한다. 일단 기분좋은 상상을 하나 해보자. 아침에 일어나서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쬐고 있고, 뒹구는 당신. 기분이 좋아지는가? 

'늦잠자다가 맞을 소리하고 있네.'라고 생각한다면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 

 데카르트는 늦잠을 자는게 정말 단순히 늦잠자는 것이 아니였다고 한다. 그는 잠을 자고 일어나서 침대에 누워서 사색하는 시간을 즐겼다고 한다. 즉 늦잠이 단순한 늦잠이 아닌 것이다. 잠을 자고 일어나서, 어떤 한 생각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묻고, 대답하고, 해체하고, 재정리하며, 정의를 내리고... 이런 시간을 그는 즐겼다. 이러한 시간은 그가 현대 철학에 한 획을 긋는 'Cotigo Ergo Sum', 수학과 물리학에 관한 천재적인 발상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얼마나 오랫동안 생각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 몸을 기대고, 혹은 누워서 눈을 감고 한가지 단어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 단어에 대해서 계속 생각을 해보자. 그 단어를 정의하고, 해체하고, 다시 재정리해보자. 

아마 대부분 몇분 후 잠들거나 정말 엉뚱한 생각으로 자신의 사고가 넘어가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렇다. 상대주의, 모호성, 관용, 무한, 악의 문제 등. <철학 한입>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정말 듣기만해도 벌써 졸리거나 답답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려워서 생각할 엄두조차 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책을 하루에 다 읽으라고 하면 그 어떤 천재도 정말 '읽기만 하는' 상태에서 머물 것이다.

 이렇게 머리아픈 주제를 긴 시간을 가지고 하루씩, 일주일씩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해보고, <철학 한입>에서 철학자와 사회자가 하는 이야기를 한번 따라가 보고, 다시 자신만의 생각으로 그것을 해체하고 재정리하고, 또 한번 책을 따라가 보고.... 이렇게 책을 읽어보자. 그러면 <철학 한입>은 우리에게 철학의 묘미를 한입 제대로 보여주는 책이 될 것이다.

 철학. 지금까지 한입도 베어물지 않았다면, 한번 베어물어서 이게 나한태 단맛인지 쓴맛인지 혹은 X맛인지 한번 알아보자.

 철학. 철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이번에 크게 한입 베어물 생각은 하지 말고, 

              조금 더, 찬찬히, 다양하게 한번 살짝 맛만 보자라는 생각으로 한입 베어물어보자.

 철학. 조금은 재미있게, 조금은 그래도 우리가 관심있는 주제를 한번 베어물어보자.

P.S 갑자기 철학이라는 단어의 모양이 어색해졌다. 무슨일이지? 이렇게 쓰는게 맞나 싶을 정도로 철학이라는 단어의 모양새가 어색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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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면 어떤 생각들이 떠오를까?

어둠, 귀신, 고독, 생각, 사색, 철학, 빛, 새벽, 별똥별, 잠, 공부, 나만의 시간 등등.

각자 밤에 대한 느낌은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공통적인 몇개는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둠과 같이 말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밤에서 새벽으로 넘어가 보자.

혹시 해가뜨는 모습을 본적이 있나? 해가 뜨기 직전의 깊은 어둠을 본적이 있나?

아마 다들 있을것이다.

누군가는 새벽이 기다려질 것이고, 누군가는 이 밤의 끝을 잡고 싶지만 

시간을 이길 순 없는 법이므로 아쉬움으로 새벽을 바라볼 수도 있다.

이렇게 밤과 새벽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한 까닭은 마치 한 소설을 이야기하는데 이만한 단어를 찾기 힘들 것 같아서이다. 

'7년의 밤' 제목에서부터 벌써 밤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그것도 7년이라는 기나긴 밤.

 처음에는 정유정이라는 작가도, 7년의 밤이라는 작품도 다 생소하게 다가왔다. 그 생소함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첫번째로 표지 디자인였고, 두번째로 내 귀에 들린 친구의 추천이였다.(하지만 추천만으로 책을 읽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7년의 밤, 너무 읽고 싶은데 학교 도서관에 벌써 누가 다 빌려갔더라." 이 두가지가 7년의 밤에 대한 첫인상이였고, 읽어야겠다는 이유의 전부였다. 그리고 나도 도서관을 가서 도서예약을 하고 기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7년의 밤과 나의 인연은 아직 많은 기다림을 요구했다. 시간이 맞지 않아서 예약한 도서를 놓치기를 두어번. 개강을 하고 난 뒤에야 내 손에는 '7년의 밤'이라는 책이 들어왔고, 드디어 읽을 수 있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빌리자마자 자리에 앉아 읽기 시작한 '7년의 밤'. 7년의 밤은 나에게 정말 까마득한 밤을 선사해주었고, 서늘한 밤을 느끼게 해주었으며, 무거운 밤을 건내주었다.

전직 야구 선수 최현수. 그는 과거의 트라우마에 잡혀 살고 있으며, 스스로 '용팔이'라고 불리는 왼손 마비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 이유로 야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는 세령호로 발령을 받아서 이동하게 된다. 이유는 내 집을 장만하기 위해서. 세령호로 가기 전 미리 한번 사택을 보고 오라는 아내의 '명령'에 그는 차를 타고 이동한다. 하지만 그는 음주를 하게 되고, 음주운전을 한 상태에서 세령호로 가다가 한 여자아이를 치고 만다. 여자아이는 미약하게 남아 살아있었지만, 최현수는 사건을 은폐하고 만다. 그 이후부터 그는 자신이 끔찍히 아끼는 아들 서현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결국 그는 시대의 살인마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지키고자 했더 아들 서현에게 남은 것은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와 7년간의 어둡디 어두운 밤이였다.

 소설은 이러한 큰 줄기를 가지고 최현수의 아들, 살인자의 아들 최서현의 7년의 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7년의 밤. 아마 얼토당토 않은 밤이였으면 대부분의 독자들은 새벽이 기다려지거나,일부러 새벽을 빨리 보기 위해서 잠을 청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유정의 힘은 독자들이 7년의 밤을 꼬박 새게하고, 그 밤을 함께 보내고, 어둠을 느끼고, 어둠을 직시하게 하며, 새벽이 왔을 때 그 어둠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데 있다. 작가는 결코 밤을 가볍게 하지도, 밤을 미화시키지도, 밤을 왜곡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작가가 그린 새벽은 더 아름다울수도, 더 충격적일 수도, 더 기다려질 수도 있다.

 소설의 흡입력은 작가의 노력이자, 작가의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7년의 밤'을 그리기 위해 노력한 작가는 7년동안 책과 함께 밤에 있었을 것 같다. 이 책은 '정유정'의 밤으로의 초대장이자 새벽에 대한 초대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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