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고를 때 먼저 신경쓰는 한가지는 표지다. 마르탱 파주의 <여덟 살 때 잠자리>라는 책 역시 책의 표지가 상당히 매력적이였다. 아기자기한 일러스트와 색감. 이런 요소들은 책을 고를 때 독자들에게 상당히 큰 요소로 작용하는 것 같다. <여덟 살 때 잠자리>라는 책은 제목은 나에게 크게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책이라는게 제목을 보고 이 책이 무슨 내용일지 독자들로 하여금 궁금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때로는 숨기면서, 때로는 드러내면서 말이다. 하지만 <여덟 살 때 잠자리>는 너무 추상적인, 흔히 말하는 밑도 끝도 없는 제목중 하나가 아니였나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멋진 표지로 이 책에 큰 매력을 느꼇던 것 같다.

 <여덟 살 때 잠자리>는 블랙 유머를 표방한다. 일본 소설의 블랙유머는 접한 적이 있으나 프랑스 소설가의 블랙유머는 처음이다. 그래서 '?'라는 표시가 머릿속에 번뜩였고, 냉큼 책을 읽기 시작했다. 

 블랙 유머가 뭘까?? 사전의 정의를 빌려보자면 불길하고 우울한 유머라고 한다. 기쁨, 긍정에서 나오는 웃음이 아니라 무언가 불쾌한 감정이 앞서는 웃음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가장 먼저 블랙 유머를 접했던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흑소 소설>이였던 것 같다.(적어도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책에서는) 그래서이번 마르탱 파주의 <여덟 살 때 잠자리>가 블랙 유머를 표방하고 있었기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흑소 소설>과 같은 이야기를 기대 했던 것 같다. 무의식중에 말이다. 하지만 마르탱 파주의 책을 이야기 하기 너무 힘들어져버렸다.

 프랑스 책을 많이 접하지는 않았으나(그나마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들이 대부분이다.) 이번 마르탱 파주의 소설은 문장이 문제였다. 모든 책은 단어와 단어가 합쳐지고, 그래서 문장이 생기고 문장과 문장이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들면서 소설가의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르탱 파주의 <여덟 살 때 잠자리>는 하나하나가 문장이기는 하지만 흐름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문장과 문장은 찰기 없는 쌀알마냥 하나씩 툭툭 떨어지는 느낌이였다. 이게 작가가 의도한 서술방식인지는 모르겠으나 읽으면서 다음 문장과 이어지는 느낌보다는 툭툭 끊어지는 느낌 때문에 책에 몰입되어 읽기가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히가시노 게이고의 <흑소소설>과 비교가 자연스럽게 될 수 밖에 없었다. <흑소 소설>은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흡입력으로 문장으로 나를 빨아들였다. 하지만 마르탱 파주의 <여덟 살 때 잠자리>는 내가 읽어야지, 읽어야지, 읽어야만해 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 만들었다. 마르탱 파주 문체의 문제가 아니라 번역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프랑스 문학의 의 색깔인건가? 마르탱 파주의 책을 처음 읽어봐서 쉽사리 결론을 내릴 수 는 없으나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이 책을 처음 접할 때 크게 두가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1.<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라는 달콤한 속삭임. 혹은 유혹. 초콜렛을 먹기 전에 우리는 먼저 저게 달 것이라는 것을 예측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책을 펼치기 전에 책은 나에게 달콤한 어떤 것을 들려줄 것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독자에게 달콤함만을 선물로 주지 않는다. 씁쓸함을 알아야 달콤함을 알 수 있다는 작가의 깊은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책은 다소 씁쓸한 맛을 독자들에게 강제로(?) 선사한다. 

 

2.<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혹시 이 노래를 들어봤는지는 모르겠지만, 김광석의 주옥같은 명곡으로 잘 알려진 곡이다. (혹시나 아직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한번 들어보는걸 추천한다.) 이 곡의 노랫말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고 있었으나, 이 책을 통해서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류근 시인! 눈에 확 들어온다.

 

이렇게 두가지가 책을 처음 펼치려고 하는 당신에게 강하게 와서 부딪친다. 제목과 작가. 이 두박자가 갖춰졌으니 책을 읽은 준비는 다 된것이다.

 

에세이를 많이 읽어본 적은 없지만, 작가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언제나 에세이에 대해서는 편파적일 정도로(?) 호의적이다. 그래서 처음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을 읽어보았을 때, 다소 더 강한 충격이 왔던 것 같다. 너무 적나라한 시인의 생활들을 읽으며, 시인의 한탄을 들으며 책장을 넘길 때는 다소 당황스럽기 까지 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시인의 고상함은 저 멀리 던져버리고 류근 시인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자조하고, 파괴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글을 우리에게 선물로 준다. 위에서 말했듯이 달콤함과 씁쓸함을 (씁쓸함은 다소 강제적이다) 주는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시인은 씁쓸한 맛을 에세이를 통해서 전하고 있는 동시에 시와 아름다운 표현력으로 우리에게 달콤함을 제대로 맛보게 한다. 그 씁쓸함이 커서일까 시의 아름다움, 표현의 아름다움은 한층 더 달콤하게 느껴진다. 그렇다. 시인의 하루 일상을 옅보면서 우리가 달콤하다 씁쓸하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주제 넘은 일일 수 있으나, 읽는 이의 주관 또한 책을 사서 읽는 독자의 권리이니 감히 이렇게 이야기 할 수 밖에 없겠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부분은 시바와 조낸으로 점철되는 많은 문장들이였다. 이런 비속어가 꼭 들어가야만 했을까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으나, 시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혹은 시인이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이런말이 나온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이 책에서 눈에 띄었던 점은 아름다운 언어의 사용이다. 시바와 조낸이 그냥 그런 흙더미라고 한다면, 정말 류근 시인이 표현한 아름다운 표현들은 한송이 꽃이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정말 진부하지만 말이다.) 어떻게 이렇게 사물을 바라보고, 그려낼 수 있을까? 우리말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인가? 라는 생각이 절도 들게끔 하는 표현들이다. 단적인 예를 몇개 들어보면

 

내가 지난 봄날 꽃이 피어서 울고, 꽃이 져서 울고, 우주의 온갖 물기들을 데려다 우는 바람에 지상에 비가 내리지 않는다. 지상에 남겨진 물기마저 술로 바꿔 마셨으니 강물마저 못 견디고 말라버렸다.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79페이지 중

 

 시인은 우리말을 가지고 예술을 하는 사람들인 만큼 정말 단어 선택 하나하나가 경이롭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몇 부분은 너무 과하게 표현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 같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표현해야할 의무(?)가 있는 시인이 조낸, 시바 같은 단어를 남발하는 모습을 보고 분명 실망했으리라. 하지만 그것도 우리말이다. 어떤 감정을 표현할 때 비속어가 먼저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 그러니 시인의 이 글들에 담겨진 그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 한번 열린 마음으로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주옥같은 시와 아름다운 사진이 함께 어울어진 류근의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우리말의 아름다움. 바로 그것이다.

언제부터 사진 찍는게 좋았을까??

사실 사진 전에 나는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순간을 포착하는 그 능력이 너무 부러워서였다고 기억된다. 그러던 어느날 그림은 도저히 안되겠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고 내가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놓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머릿속으로만 가지고 있는 어떤 이미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너무 어려웠기 ？？문에 무언가 '도구'가 필요했다. 그렇다. 단순히 연결 수단이 필요했던 것이다. 

처음은 이렇게 사진에 대해 단순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필름카메라를 구입하게 되었다. 단순히 셔터만 누르면 될 것 같던 사진은 간단치 않았다. 조리개, 셔터스피트, 감도, 피사계 심도 등등 한순간을 위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워야만 했다. 그냥 보고, 찍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사진이 나에게 큰 반격을 가했다. 

그 때부터 조금씩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 새로운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보는 세상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렌즈를 빌려서 볼 수 있는 세상이 나에게 펼쳐졌다. 다른 각도에서, 다른 색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자 단순하던 것이 복잡하게, 복잡하던 것이 단순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래. 어렵게 말할 것 없이 사진이 재미있어 졌다. 그런데 아무리 찍어도 기존의 시각의 틀을 벗어나는게 너무 어려웠다. '유명한 사진가 들과 내 사진의 차이는 뭘까?'라고 생각해봤다. 처음에는 기계탓을 했다. 그래. 내 사진기는 저들만큼 좋지 않으니까! 라고 생각하다가 많은 사진을 보고 그 생각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노력하지 않았다는 치명적인 오류 말이다. 

 

 사진을 잘 찍는 분께 한번 물어봤다.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냐고. 그러자 대답하셨다. 잘 찍은 사진을 많이 보라고. 그 말을 들은 뒤 유명한 사진가들의 사진들을 찾아봤다. 사진전을 찾아갔다. 그러자 사진의 시각이 조금씩 조금씩 변화했다. 그래. 노력이 정답이다.

 

 이번 조던 매터 사진전도 나에게는 '배운다'라는 마음으로 사진을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에 나온 사진을 보다보니 사진을 즐기며 보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평소 자연스러운 사진, 풍경 사진을 엄청 좋아했던 나였는데, 조던 매터의 약간은 인위적인(?), 연출된 사진을 보면서 이렇게 인물 사진, 연출된 사진도 정말 즐거운 작업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조던 매터 만의 즐거움을 표현한, 그의 메시지를 표현한 사진은 정말 재미있다. 사진이라는게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표현하는건 상당히 쉬워 보이지만서도 막상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런 어려움을 조던 매터는 무용수들을 통해서 조금 더 친절하게, 몸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택한 것 같다. 이렇게 조던 매터의 사진을 보다 보면 저절로 웃음이 지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조던 매터는 긍정적으로, 세상을 웃음기 있게 바라보는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이 프로젝트는 아직도 계속 되고 있다고 하니 더 관심을 가져보아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