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서점에 가서 새로 나온 책은 뭐가 있는지, 요즘 어떤 책들이 잘 나가는지 살펴봅니다. 온라인에서 책을 검색할 때와는 다르게 서가를 돌아다니면서 재미있어 보이는 제목의 책을 빼서 읽어보고 그러다가 뜻밖의 보물을 찾기도 하네요. 우리나라 작가가 쓴 책도 있지만 해외 작가의 책을 번역한 책도 많은데 어떤 책은 마치 원래 한국어로 쓰인 것처럼 술술 읽혀서 번역가들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끼네요. 번역은 회사에 다니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면서 정년과 상관없이 일할 수 있어 요즘 관심을 갖고 보고 있습니다.

 

번역가를 꿈꾸는 사람들도 많을텐데 번역가는 어떤 방법으로 일을 받아서 하고, 어떻게 시간 계획을 세워 일을 하는 것일까요. '말할 수 없지만 번역하고 있어요' 는 일본어 전문 번역가가 쓴 책인데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특이하게도 '이 책은 내가 번역했다' 라고 말하기 어려운 분야의 책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마치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한 것처럼이요.

 

저자는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어서 독학으로 일본어를 공부해 자격증까지 땄따고 합니다. 해외 인기있는 게임들은 게임 속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해 출시하는데 저자가 좋아했던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들은 유저층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인지 일본어만 우리나라에 출시되지 않았습니다. 옆에 일본어 사전과 교재를 펴놓고 찾아가면서 좋아하는 게임을 했던 저자의 모습이 상상이 됩니다. 이후 TL 과 BL 이라는 장르의 매력에 푹 빠져서 정말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하네요. 이쪽 분야의 책은 읽어보지 않았는데 저자가 스스로를 오타쿠라고 부르면서 좋아하는 것을 보니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덕질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어 실력이 늘게 되었고, 이 일로 먹고 살기 위해 채용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번역 회사에 이력서를 뿌렸네요. 처음에는 거의 회신 자체가 없었는데 어떤 회사가 연락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성인물 번역을 요청합니다. TL 이나 BL 도 19금인 작품들이 많아 오랜기간 단련이 되었기 ？？문인지 무사히 첫 번역을 마칠 수 있었고, 어떻게 하다보니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이제는 7년차 전문 번역가가 되었고 그중에서도 주력은 성인물이 되었습니다. 성에 대한 묘사가 적나라하게 나오는 부분이 많아 부모님께 자랑스럽게 보여드리기 어렵고, 주로 가족이 집에 없는 시간에 몰래 번역을 하지만요.

 

원래 좋아하는 분야라서 일에 잘 적응한 것 같지만 처음에는 거의 최저시급과 다름없이 일을 하면서 힘든 점도 많았고, 어떤 작품은 해도해도 너무할 정도로 수위가 너무 높아 처음 몇 권을 번역하다가 계속하면 정신이 피폐해질 것 같아 출판사에 연락해 이어지는 책은 더이상 번역하지 못한다고 말한 적도 있었네요. 그래도 자신이 번역한 작품의 원작자와 트위터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책 리뷰에 이 번역가의 번역은 믿고 본다는 글이 달린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지금은 산업 분야의 번역도 많이 하고 있지만 '말할 수 없는' 분야의 번역은 마치 고향처럼 느껴져 언제든 번역 의뢰가 들어오면 즐겁게 일하지 않을까요.

 

번역도 상세히 들어가면 다양한 분야가 있고 번역가들도 일하는 스타일이 다른데 저자처럼 음지(?)에서 번역을 하고 있는 번역가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기존에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서평을 썼습니다.

 

 

 

 

에세이, 말할수없지만번역하고있어요

가끔 부모님을 뵈러 갈때마다 깜짝깜짝 놀랍니다. 식사하고 나서 약을 드시는데 이렇게나 약이 많았는지 몰랐네요. 고혈압약, 관절약 등 종류가 다양해서 서로 부작용이 없을까 걱정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병원에 입원하거나 수술하는 대신 간편하게 약을 먹을 수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약을 보면 색깔만 다를뿐 거의 똑같아 보이는데 각각의 약이 몸에 들어가 적재적소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네요. 의학의 발전에 따라 더 효과적이면서 다양한 약이 등장할 것입니다.

 

처음에 약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얼마나 많은 종류의 약이 있을까요. '분자 조각가들' 은 약학을 전공한 교수가 쓴 책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를 이용해서 우리 몸을 치료하는 약과 백신, 그리고 이를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페니실린은 대표적인 항생제로 질병의 원인이 되는 미생물을 죽이는데 효과를 발휘합니다. 탁월한 효과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네요. 그런데 페니실린은 우연한 계기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플레밍은 균을 실험하던 접시를 깜박 잊고 실내에 둔채 자리를 비웠는데 며칠 후 연구실에 돌아왔더니 푸른 곰팡이가 내려앉아 있고 그 자리에는 균들이 죽어서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후 실험을 거듭하면서 페니실린의 효과를 알게 되었고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네요. 만약 이때 플레밍의 실수가 없었다면 페니실린의 발견은 한참 늦어졌을 것입니다. 책에서는 세런디피티의 사례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우연 덕분에 의학이 한단계 발전할 수 있었다니 재미있네요.

 

요즘은 약을 시판하기 전에 몇 차례에 걸쳐 철저하게 임상 시험을 진행합니다. 과거에는 이런 체계가 잡혀있지 않고 약의 부작용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도 없다보니 처음에는 매우 효과적인 약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한 사례도 있습니다. 탈리도마이드는 임산부들의 입덧을 줄이고 안정을 취하도록 하면서 많은 임산부들이 복용하였습니다. 미국에도 시판을 위해 들어왔는데 FDA 에서는 임상 시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승인을 하지 않았네요. 이미 유럽에서 널리 복용되면서 효과가 증명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항의하였는데 FDA 는 규정대로 하였고 결국 탈리도마이드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다른 나라와 달리 미국의 임산부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는데 그만큼 임상 시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네요.

 

최근 몇 년 동안은 코로나19가 우리 삶을 지배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치료법이나 백신이 없어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스스로 조심할 수밖에 없었는데 곧 백신이 나오면서 조금씩 일상이 회복되었습니다. 약이나 백신을 개발하고 임상 시험을 끝내기까지 짧아야 몇 년일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코로나19 백신은 어떻게 이렇게 빨리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요. DNA 뿐만 아니라 RNA 도 생명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밝혀졌으며 에이즈 치료제도 RNA 를 이용해 만들어졌습니다. 코로나19가 빠르게 퍼지자 제약 회사와 연구소들은 바로 RNA 를 이용한 백신 연구를 시작했고 임상 시험과 대량 생산을 같이 준비하였습니다. 미증유의 상황이었던 만큼 임상 시험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생산 시설을 갖추었고 바로 생산을 시작하면서 코로나19 예방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목 그대로 연구원들은 대리석이 아니라 분자를 이용할뿐 에술가들과 다름 없네요.

 

의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존에는 수술을 해야했거나 치료가 불가능했던 병도 이제는 약을 이용해 치료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SF 영화에서처럼 약을 먹으면 어떤 병도 낫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요. 약의 역사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흥미진진하게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서평을 썼습니다.

 

 

 

 

생명과학, 분자조각가들

학교에서 세계사를 배웠지만 수업 대부분은 유럽의 역사였습니다.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천천히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등으로 퍼져나갔고, 북아프리카, 중동, 인도, 중국에서 세계 4대 문명이 탄생하였습니다. 하지만 세계사는 그리스와 로마, 중세, 르네상스, 제국주의, 두 번의 세계대전,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럽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으며 다른 지역의 비중은 매우 낮은 편이네요. 예전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유럽 중심으로 배우다보니 다른 지역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될 수도 있을것 같아요.

 

일반적인 역사 뿐만 아니라 과학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명한 과학자의 이름을 말해보라고 하면 대부분 뉴턴, 아인슈타인을 들텐데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과학자 중에서 떠오르는 이름이 있을까요? '과학의 반쪽사' 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유럽 중심의 역사가 아니라 그외의 지역에서 얼마나 과학이 발전하였고, 또 이러한 과학이 유럽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모든 행성과 별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정밀한 측정 기구가 없었고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철학 사상과도 연결되어 천동설을 주장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설명하기 위해 행성들은 우주에 여러가지 기준점을 두고 복잡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네요. 기독교와도 맞물리면서 천동설을 부정하는 것은 기독교에 대항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할 때까지 천문학의 발전은 정체되어 있었습니다. 반면 이슬람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천문대를 지어 하늘의 변화를 관찰하면서 지구가 돈다고 사고의 전환을 할 수 있었네요. 현대처럼 과학적인 성과를 공유할 수 있었다면 아마 과학은 더 빠르게 발전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과학의 반쪽을 설명하는 책답게 아시아의 과학에 대한 내용도 많이 나와있습니다. 그중에는 일본의 사례가 재미있었는데 일본은 다른 나라와의 교역은 제한하였지만 네덜란드는 예외였습니다. 덕분에 세계 정세를 알 수 있었고 유럽의 최신 학문들도 전파되었네요. 코끼리 등 다양한 동물들을 들여와 전시 및 연구를 하였으며 일본 각지에 있는 식물이나 광물을 조사해 책으로 펴냈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유럽과 미국으로 학생들을 유학보내면서 이들이 돌아와 과학의 발전에 기여하였는데 원자 구조를 발견한 러더퍼드보다 더 이른 시기에 일본의 화학자가 유사한 내용으로 논문을 발표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배경 때문인지 일본은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배출하였네요. 우리나라도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었고 혼천의로 하늘을 관찰하였는데 뛰어난 과학 기술이 체계적으로 이어지면서 발전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유럽인들은 아메리카를 침략해 정복하면서 마야, 잉카, 아즈텍 등 뛰어난 문명들은 순식간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네요. 이후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을 납치하거나 매매해서 아메리카로 데려와 노예로 부리면서 식민지를 만들었습니다. 원주민이나 노예들이 교육을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들에 의해 과학이 발전할 여지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허준이 중국의 의학서적을 참고했으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질과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약초로 우리 실정에 맞게 동의보감을 펴낸 것처럼 그 지역의 사정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아는 것이 당연합니다. 아메리카 원주민 중에서는 유럽에서는 치료하기 어려웠던 병도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식물로 치료하기도 하였으며 나중에는 유럽에서 대학 교수가 된 사람들도 있었다니 놀랍네요.

 

이전까지는 별 의심 없이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시작해서 유럽 사람들이 과학을 발전시켜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중동과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등에서도 얼마나 과학이 발전하였는지 알게 되었네요. 교육 과정에서부터 배우지 않으니 이런 역사적인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모르게 되어 더욱 안타까웠네요. 책은 두꺼운 편이지만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서평을 썼습니다.

 

 

 

 

역사, 과학의반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