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화원이었다. 바람처럼 소리없고, 바람처럼 서늘하며, 바람처럼 자신을 보여주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바람을 찾아 떠나는 그길을 차마 나는 나설수 없었다. 그녀는 바람이었고 나는 그녀가 흔들고 간 가지였다. 나는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혼자 흔들리며 몸을 떨었다. 만약 나라는 가지에서 꽃이 핀다면 그것은 그녀가 피운 꽃이고, 열매가 열린다면 그 또한 그녀가 열리게 한것 일 터이다. 한때의 나는 별이였다. 하지만 이제 그빛은 스러지고 뜨거움은 식었다. 빛을 잃고 뜨거움을 상실한 별은 별이 아닐것이다. 별은 빛나기 위해 존재 하니까...... 하지만 그녀는 벼락이었다. 벼락은 사려져도 여전히 벼락이다. 한 순간의 섬광을 뿜어내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지만 그 빛을 본자는 눈이 멀것 같은 강렬함을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학창시절 그림을 마음으로 바라본적도 없이 그림제목과 이름만 외워서 시험을 보았던 기억밖에 없다. 집근처에 간송미술관이 있어서 일년에 한번 일반 관람객을 받는 마지막날 아이랑 같이 찾아간적이  있었다.  줄은 큰길까지 나와있었고 2시간 이상을 줄을 서서 미술관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찾아간 간송미술관은 산속에 있는 미술관 같은 느낌이 드는 손이 닿지않은 매력이 있는 곳이였다. 많은 작품중에 신윤복의 작품 앞에는 유독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도 어려운 곳을 힘들게 뚫고 다가가서 직접본 신윤복의 단오풍정을 보는 순간 헉하는 느낌이 들었다. 교과서속에서 만났던 느낌과는 틀리게 살아숨쉬는 느낌이 전해졌다.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릴수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마저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뜨지 못하고  그림 주위를 계속돌면서 그 그림만을 살펴보는 이유를 알꺼 같았다.

이책이 신윤복의 이야기라는 사실에 읽고 싶었던 책이였다.  단 두 줄의 기록만을 남겼다는 신윤복의 이야기는 작가를 통해 새로 탄생한다. 정조 시대의 궁중화원으로 이였던 김홍도, 속화를 그려 도화서에서 쫓겨났다는 후문만 떠도는 신윤복, 작가또한 천재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의 작품을 직접보고 이런 미스테리를 풀고자 이야기를 써내려갔는지도 모른다.  책에서 만날수 있는 작품들이 너무 좋았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 천재화가 김홍도, 신윤복, 동생을 위해 동생의 죄를 대신 집어 쓰고 단청실로 가 동생을 위해 색을 만드는 형 영복, 신윤복이 마음에 둔 기생 정향, 정향과 윤복을 자기껏으로 두고 싶어했던 신분을 살정도의 최고의 장사꾼 김조년, 이들의 이야기와  정조의 부탁으로 뒤주속에 갇혀 죽은 장헌세자의 어진을 그리다가 살해당한 강수항과 강수항을 살해한 이를 그리다가 살해당한 서징의 십년전 살인사건을 조사하고, 장헌세자의 어진을 찾는  이야기가 서로 얽히고 설키어 이야기는 흥미롭게 전개된다. 

같은 주제로 다른 그림을 그리는 두사람의 대결에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화풍이 전혀다르지만 각기 다른 매력이 있는 두사람의 그림.. 임금이 직접 볼수 없었던 백성들의 모습은 두명의 천재화가의 그림속에서 새롭게 탄생한다.  금기시되는 색을 사용해 여인을 그려 춘화도라는 비판을 받아도 여인만을 그리는 신윤복,  노을빛을 빨아들여 그림이 강렬함을 표현할수 있고 서민의 삶을 그려낸 김홍도,    그들이 진정 사랑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두 주인공의 모습뿐이 아닌 동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영복의 모습과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고 싶어 어진을 그리게 한 정조.  욕심이 과해 화를 불러왔지만 가난을 딛고 악착같이 성공한 김조년의 아픔도 고스란히 전해온다.  정조를 위해 장헌세자의 어진을 여러 초상화에 나누어 그려놓은  강수항과 범인의 얼굴을 숨겨놓은 강수항의 이야기까지 군데 군데 치밀함이 보인다. 김홍도의 씨름에서 구경꾼의 양손이 바뀐 사실도, 미인도의 비밀까지 알지못했던 그림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살인사건이 약간은 흐지부지 하게 해결되는 느낌이 있었지만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