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은, 아니 읽는 사람이라면 짧은 단문의 글을 쉽사리 읽지 못 해 몇 번, 아니 수십 번을 주저하고 망설인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한숨은 몇번이나 쉬었는 지, 기가 차서 책을 얼마나 자주 덮었는 지. 매 순간순간마다 참을 숭 없는 분노와 슬픔, 비참함으로 가슴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너무 비참해서, 너무 쓸쓸해서, 너무 가슴 아파서!!!
그런데 그러한 말조차 라크슈미 앞에서는 배부르고 호사스런 말인것 같아 한없이 주저하게 된다.
얼마나 아팠니?
얼마나 무서웠니?
얼마나 아마가 보고싶었니?
촉촉한 분홍코 탈리의 눈동자를 기억할 수 있겠니?
매년 12000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네팔 소녀들이 인도 캘거타의 매음굴로 팔려 간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잃는다.
무엇보다 그 아이들을 팔아 넘기는 사람들이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가족이라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입 하나를 덜기 위해 희생하는 수 많은 소녀들은 그 옛날 우리의 모습을 꼭 닮았다.
정신대에 끌려간 소녀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여자와 남자의 성차별 아래 무조건 순종하는 아마는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라크슈미를 지킬 능력이 없다.
우기에 떠내려간 벼들을 보며 울음을 놓고 그럴수록 주린 배를 움켜쥘 뿐이다.
새 옷을 입고 노름을 하고 빈둥거리는 새아버지에게 의붓딸은 그저 돈을 가져다 주는 물건일 뿐이다.
무능한 새아버지의 악랄한 계략으로 사창가로 팔려간 라크슈미에게 미지의 도시는 지옥이다.
혹시 비가 올 지도 몰라하고 기다리던 내일은 간절함 대신 공포다.
이 진창에서 구해 줄 미국인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가졌던 희망은 잔인하다 못해 너무나 완고해서 라크슈미를 죽일 것만 같다. 희망을 품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얼마나 눈물겹도록 고통스러운 것인지....
이곳을 벗어나 나가야 될 바깥 세상 역시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너무 빨리 늙어버린 13살의 소녀가 소리 없는, 눈물 없는 네팔의 건기를 닮은 울음을 운다.
포주 뭄타즈에게 채찍을 맞는다.
꼭 다문 입을 억지로 벌려 라씨를 강제로 먹인다. 몸도 마음도 내마음데로 움직일 수가 없다.
라크슈미가 남자들에 의해 찢어진다. 뼈가 으스러진다. 13살의 소녀가 죽는다. 그리고 사라진다.
10000루피란 돈은 도대체 얼마쯤일까! 얼마나 갚아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도망가던 아니타는 잡혀와 몽둥이로 얻어맞아 얼굴 한쪽이 무너져 내렸다.
병든 아버지를 살리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 더 악착을 떨며 남자를 받았던 모니카는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결국엔 에이즈에 걸려 쫒겨난다.
푸슈파는 피를 토하며 하리슈와 지나를 데리고 길거리로 쫓겨난다.
라크슈미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던 하리슈가 떠나가자 라크슈미는 잠을 이루기가 힘들다.
돈도 받지 않고 차를 주던 소년! 떠나간 샤한나!
라크슈미는 변해간다. 변하지 않고 어떻게 견딜까!
라크슈미는 뭄타즈를 괴물이라고 생각하지만 변해가는 자신이 곧 되물이 되어간다는 걸 눈치챈다.
그렇게 벗어나고 싶던 행복의 집이 이제는 절대로 내 발로는 떠날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희망을 품는 것 만큼 바깥 세상을 상상하는 일은 두렵다. 그 곳으로 나간다는 건 죽는 일만큼 힘들다.
매음굴에서 유린 당하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도움의 손길이 찾아오지만 선뜻 바깥 세상으로 발을 내딛지 못하는 라크슈미의 주저함에 덩달아 가슴이 떨린다.
"내 이름은 라크슈미입니다. 나는 네팔에서 왔습니다. 나는 열네 살입니다."
목이 매여 한참을 꺽꺽거렸다. 이 세 마디를 하기가 그렇게 힘들었구나!
지금 라크슈미는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몬순처럼 많은 눈물을 쏟아 붓고 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4학년인 아이에게 언제쯤 이 책을 보여줘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여성의 성이 왜곡되고 상품화되어 그걸 비정상적으로 즐기는 어른들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하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 지 사뭇 궁금하다.
제발 성은 상품이 아니라는 단순한 진리를 이 뼈저린 눈물 앞에서 깨달을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