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럴 수 있을까?, 만약,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어떻게 될까?’ 책을 읽는 내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생각이다. 이따금 책 속에서 일어난 일들이 마치 현실인 양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다. 디테일한 묘사 덕분이다. 한 문장 한 문장 스릴러소설의 끝을 보는 듯 그 표현이 섬세하고 리얼했다. 그런가 하면 작가는 일차적 세계와 이차적 세계를 자유롭게 누비며 독자를 사건 속으로 끌어들인다. 멀게는 26년 전에서 짧게는 15년 전까지 말이다. 그 설정이 소름 돋게 자연스럽다.
이인희 소설 <시그널 1>(클, 2016)은 ‘김윤정 유괴 사건’, ‘경기남부 연쇄살인사건’, ‘대도 사건’, ‘신다혜 자살사건’ 등 모두 네 편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액션스릴러인 만큼 한 편 한 편의 작품 속에는 당시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던 유사한 사건들이 유기적으로 직조되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결코 쉬운 플롯은 아니다. 따라서 <시그널 1>에 실린 작품들의 소재는 하나같이 ‘공소시효만료’가 되었거나 ‘장기미제사건’으로, 세월에 묻히고 사람들의 기억을 벗어난 오래된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즉 ‘무전기’라는 텍스트를 매개로 ‘현재의 프로파일러 박해영’과 ‘과거의 형사 이재현’이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장기미제사건’의 실마리를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이들의 목적은 ‘진짜 범인’을 밝혀내서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살려내고, 하루아침에 가해자 신세로 전락해 버린 사람들의 누명을 벗겨주고자 하는 데 있다. 네 작품 모두 이런 설정에 따른다. “모두를 비웃듯 윤수아는 천천히 그들을 비켜갔다. 누구도 15년 전 윤정이를 죽인 범인을 눈앞에 두고도 잡을 수 없었다.”(본문 60쪽) ‘김윤정 납치사건’은 ‘공소시효만료’ 때문에 범인을 눈앞에 잡아놓고도 체포는커녕 그대로 보내야한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이처럼 ‘김윤정 납치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세 작품은 ‘진정한 자식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내 자식이 귀하고, 내 가족이 소중하면, 남의 자식도 귀하고, 남의 가족도 소중하다’는 것을 절절히 보여준다.
“아들을 자수시키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이천구는 끝까지 요지부동이었다.” (본문 138쪽) ‘경기남부 연쇄살인사건’에서는 범인 이진형의 아버지 이천구의 삐뚤어진 자식 사랑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또 '대도 사건'과 '신다혜 자살사건'의 진범인 한세규는 사회적으로 능력 있는 아버지를 둔 덕분에 엄청나게 큰 죄를 짓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 이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 그리고 암담한 현실을 여과 없이 쏟아낸다. 반면, “죄를 지었으면 돈이 많건, 빽이 있건, 거기에 맞게 죗값을 받게 해야죠. 그게 우리 경찰이 해야 되는 일이지 않습니까!” (본문 283쪽)라고, 모든 것들의 부당함에 대해서 이재한 형사는 거침없이 내뱉는다.
<시그널 1>은 화제의 드라마를 소설화 한 작품답게 가독성이 참 좋다. 억울하면 억울한 대로, 통쾌하면 통쾌한 대로, 스릴 넘친다. 게다가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빠른 전개는 거대한 파노라마처럼 쉴 새 없이 내 마음을 요동쳤다. 겨울의 한 복판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였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번 펼쳐든 책은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지치지 않고 술술 넘어갔다. 소설이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 것일까? 재미있어도 너무 재미있는 작품이다. <시그널 2>도 서둘러 읽어야겠다.
"그는 천천히 재한에게 총구를 겨누더니 방아쇠를 당겼다.
탕." (본문 2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