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책을 꼭 읽고 싶었던 이유는 “호주퀸즐랜드 논픽션상 최종 후보”작이었기 때문이다. 논픽션은 나의 관심 장르 중 하나이다. 그것은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들을 좀 더 리얼하게 접할 수 있어서 흥미롭다. 무엇보다 생각의 깊이를 확장해주는 독서파트로 논픽션만한 장르도 드물 것이다. “모든 문제는 가사노동에서 출발한다”는 애너벨 크랩의 <아내 가뭄>(동양북스, 2016)은 내게 그런 의미로 다가온 작품집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취업 여부에 상관없이) 집안일을 훨씬 많이 한다. 세계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OECD 회원국 전체의 평균을 냈을 때, 남자는 하루 141분 집안일을 하고 여자는 273분을 일한다. 거의 두 배의 시간이다. (해제 10쪽) 이에 옮긴이는 대한민국은 적어도 다섯 배 이상이라는 사실만 언급하고 넘어가겠다는 말을 한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나라의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가사노동에 시달리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책과 관련하여 한국 사회의 상황을 간단히 살펴보자. 일과 가정의 양립? 이미 많은 여성들이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고 있으며, 더 이상 가정을 구성하지도 않는다. 아이를 낳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남성이 가사 노동을 절대로, 죽어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저출산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아니다.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결혼한 여성을 위한 인프라와 사회적 존중 문화가 전무하다.(해제 14쪽) 따라서 남성들의 문화 지체 현상이 지속되는 한, 결혼도 출산도 없다는 것이다. 1인 가구가 40퍼센트가 넘는 시대에 도래했으니 그 심각성에 대해선 별도의 말이 필요 없을 듯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변해야 할 대상은 여성이고 남성이 우리들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 가 종종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즉 누가 무슨 일을 하고 누가 무슨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편견에 가까운 생각들을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은 분노를 쏟아낸 책은 아니다. 더욱 중요한 점은 단지 여성만을 다룬 책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지난 50년 동안 여성이 남성처럼 직장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를 다룬 모든 연구와 주장, 생각에는 뻥 뚫린 커다란 구멍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구멍의 형상을 훑다보면 남성이 나온다고 저자는 말한다. 남성과 여성은 부모가 된다는 것에 다르게 반응할 거라고 가정한다.
냉혹하지만 엄연한 현실은 그러한 가정이 틀리지 않다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정말로 부모가 되었을 때 다르게 반응한다. 남자는 첫아이가 태어나도 자신의 근무 형태를 바꾸지 않는다. 만에 하나 바꾸더라도, 우리가 이미 살펴봤듯이 근무시간을 늘리는 것에 불과하다. 반면 여자는 아이가 생기면 근무 형태를 바꿀 가능성이 훨씬 높다. 어린아이를 둔 일하는 엄마들 중 43퍼센트가 시간제 근무를 하지만, 어린아이들을 둔 일하는 아빠들 중에는 시간제 근무 비율이 겨우 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것만 봐도 여성과 남성의 결혼 후 아이로 인해 겪게 되는 큰 차이점을 알 수가 있다. 아내가 끊임없이 생산적인 일을 하고 바쁘게 움직이며 건강을 유지하는 동안, 아내가 하는 노동의 가치는 오로지 이론에만 머물러 있고 저자는 말한다. 특정한 목적이 있는 경제학자들에게는 논문의 균현을 유지해줄 장치,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칼럼거리, 말수 적은 커플에게는 데이트하는 날 밤 술집에서 나눌 대화 소재에 지나지 않는다.
아내에게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지 언제까지나 논쟁을 벌일 수는 있겠지만, 이러한 여러 모델 중 어느 모델에서든 집에 있는 배우자에게 대가가 지불될 것처럼 굴지는 말자는 것이다. 결국 가장 비싼 땅 혹은 가장 싼 땅에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조금 줄여주는 정도의, 부동산 취득 보드게임에서 쓰는 가짜 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본문 258쪽) 지금까지 남자와 여자가 대략 일반적이라는 방식으로 행동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봤다. 아이가 생기면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기대, 인생과 직업에 초래하는 결과 등 말이다. 아직 고유명사의 지위조차 획득하지 못했을 정도로 여전히 생소한 전 세계적 사태인 디지털 혁명은 아직도 혁명 선배들이 굳혀놓은 패턴 일부를 푸는 중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통신 기수의 발전은 이미 꽤 많은 직업에 놀라운 변화를 일으켰다. 대기업들은 탄력 근무제를 시험 운영하고 있다. 노트북과 스마트폰으로 이제 직장인에게 연락이 불가능한 상황이란 거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빠르게 진화하는 시대의 업무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온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적인 성공률과 직장에 머무르는 시간이 정비례한다는 개념은 아직도 이 세계에서 유효하다고 옮긴이는 말하고 있다. 그러니 여성을 일터로 끌어 들이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남성을 일터 밖으로 끌어내자는 크랩의 이야기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일단 집에 있는 시간부터 늘려야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도 마련도 해야겠지만, 그 제도를 CEO든 탐장이든 여러 조직의 리더가 활용할 줄도 알아야할 것이며, 무엇보다 육아휴직을 신청한 남자 동료에게 남성성을 조롱하는 농담을 던진다든지, 저녁 회식에 참석하는 여자 동료에게 애는 누가 보냐는 질문을 던지는 등의 언행부터 삼가야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