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산 지 2년 정도 되었다. 줄곧 빌라에서 살았고, 주택에서 살았던 햇수는 얼마 되지 않으니 아파트와 비슷한 환경에서 살았다 해도 무리는 아니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줄곧 성냥갑 같은 공간에서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다. 주거공간이 부족한 서울에서 마당이 있는 주택에서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중학교 시절 내내 살았던 주택에서는 마당이 있었기에 살구나무에 열린 살구도 따먹고, 닭을 기르기도 했었다. 내 삶의 공간은 단지 실내에 있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문 밖을 나서면 발붙일 곳조차 없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서면 차들로 빽빽한 주차공간이다. 그리곤 곧바로 차들이 쌩쌩 달리는 차로다.
<아파트에 미치다>(이숲, 2009년)를 읽으며 아파트란 공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평소 아파트를 그리 좋아하지 않기에 가급적이면 아파트에 살지 않으려 하지만, 아파트를 벗어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파트를 벗어난다한들 도심에서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가장 걱정이 되는 일은 아이들이다. 나야 어려서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아보기도 했고 외가에 가면 뛰어놀 곳이 지천으로 있었다지만, 우리 아이들은 감성을 느끼며 자랄 환경이 없다.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은 공부 잘 시키는 학교 주변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아파트밖에는 보이지 않는 도시에 대한 답답함으로 인해 <아파트에 미치다>를 펼쳐들었다. 정말이지 이 도시는 미친 도시다. 도시뿐만 아니라 지방 소도시를 비롯해 농촌까지 온통 아파트 천국이다. 왜 다들 아파트를 선호할까. 저자가 이를 명쾌하게 해소해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내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드러난 현상을 분석하는 데 그쳤다. 이러한 인문학적 고찰만으로도 의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이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러한 고찰을 바탕으로 찾아야 할 대안들이 아닐까.
저자는 아파트의 도입과 한국인들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로 글을 시작한다. 그리곤 한국에서 아파트가 가지고 있는 위상과 그로 인해 생겨난 사회학적 현상들을 분석한다. 아파트가 부의 원천이 되었다거나 상류층의 유입으로 신분 차별을 낳고 있고, 이웃과 단절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비이성적으로 발전해온 아파트의 과잉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내고, 한국적으로 토착화되었으며, 남녀평등의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낳고 있는 긍정적인 현상들에도 주목한다. 아파트가 기형적으로 많은 현실에서 그나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근거들이 과연 얼마만큼의 통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 피상적으로 보이는 일부 현상들-특정 지역, 특정 계층-을 지나치게 전체적인 의미로 확대 해석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 들었다.
저자도 말미에 언급하고 있지만, 아파트의 무분별한 증가가 긍정적인 영향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끼쳤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파트 한국의 미래도 그래서 암울해 보인다. 작금의 현상은 당분간 지속되리라는 전망이다. 저자가 이를 모두 긍정하는 것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저자의 말처럼 한국형 주택이 우리의 주택문제를 해결한 근원적인 대책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다만, 결론의 마지막 부분에서 ‘좌파 포퓰리즘의 득세를 막아 대한민국 체제의 안정적 확대재생산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 비약의 말은 좀 빼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by 꽃다지, 2009년 3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