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게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내 마음속의 근심마저 떨어져나갈 것 같다. 가슴에 손을 얹고 입을 꾹 다문 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청년은 당장이라도 엉엉 가슴속의 울분을 토해낼 것만 같다. 사진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똑같이 웃고 있는 모습이지만, 미묘한 표정의 차이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사진을 보는 이로 하여금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우리가 하루에도 수십 번 지나치는 표정들이다. 우리의 얼굴이자 우리의 모습이다.

이요셉이란 사진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우리의 평범한 이웃들을,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후미진 곳의 삶과 풍경을 담는 젊은 사진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요셉이 글 쓰고 사진 찍은 <나를 위로하는 사진 이야기>(21세기북스, 2009년). 단지 평범한 이웃들의 일상을 담은 사진 에세이라는 이유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뭉클해진 가슴을 어찌할 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 표정과 그들이 속한 공간의 풍경은 마음을 촉촉이 적시며 내 삶을 돌아보게 했다. 기껏해야 집과 회사를 오가는 여정뿐인 내 삶은 다른 공간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게 사실이다. 물론 그 여정 안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을 터이다. 그러나 나는 보지 못한다.

흔히 사진은 발로 찍는 것이라 한다. 카메라 장비가 빵빵하다고 좋은 사진이 나오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좋은 피사체만 쫓아다니라는 말도 아니다. 많이 움직여야 한다. 다양하게 파인더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결국은 시간이다. 한 컷의 일몰 사진을 찍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이 담기는 줄 아는가. 하루 24시간 중 기껏해야 주어지는 시간은 10여 분. 잠시 구름이라도 끼이면 내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이요셉의 사진을 보며 시간이 느껴졌다. 오랜 시간 정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고, 희망을 기약했을 시간들…. 풍경과 함께, 사람과 함께 한 시간들은 사진 속에 그대로 담겨 마음으로 전해졌다.

남들처럼 명예나 부를 좇지 않고, 카메라 하나 달랑 메고 이동네 저동네 찾아다니며 희망을 찍고 다니는 사진사. 색약이라 색도 잘 구분 못한다면서 “사진 찍는 사람에게 색은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라고 믿는 사람. 사람을 만나는 일이 좋고, 사람과 풍경을 담는 일이 좋다는 그에게 “사람은 그저 사랑해야 할 존재”이다. 그런 그의 사진들이 전하는 감동은 그래서 남다르다. 사랑이 가득 배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옆 사람도 돌아보기 힘든 세상에서 사람과 풍경이 좋다고 하루 종일 거리를 방황하는 그에게 그만한 즐거움이 또 있을까. 그에게서 전해 받은 사랑의 마음 때문에라도 좀더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야겠다.

“누군가는 과거로 돌아가 인생을 다시 살고 싶다지만, 나는 오늘이 가장 기쁘고 감격스럽다. 결코 어제와 오늘을 비교할 수도, 내일이 오늘을 대신할 수도 없다. 나는 최고로 행복한 오늘을 산다. 그저 가끔씩 내 인생의 끝을 궁금해할 뿐.” (64쪽)

by 꽃다지, 2009년 4월 8일

4월 중에 마무리해야 하는 큰 프로젝트가 있어 요즘도 계속 야근 중이다. 한 고비를 넘기고 나면 더 큰 고비가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쯤 마음 편히 쉴 수 있을까. 그리 오래 갈 것 같지는 않기에 다소 마음의 위로를 삼고 있지만, 조금은 쉬엄쉬엄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일을 하다 보면, 특히 마감에 임박한 일을 진행하다 보면 짜증이 나기 일쑤다. 그리고 일이 원활히 진행되지 못한 책임을 종종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기도 한다. 나는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어 바쁜 탓에 일을 매끄럽게 진행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더디면 일을 잘 못한다거나 성격이나 태도 탓이라고 쉽게 몰아버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돌이켜보면 나 또한 태도의 문제로 인해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있고, 다른 사람도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원활하지 못했음을 알게 된다. 왜 이렇게 비슷한 상황을 두고도 다르게 해석하는 것일까?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기 때문일까?

E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인간의 두 얼굴>을 보지 못했었는데, 다행히 책으로 발간되어 읽을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와 같은 제목으로 출간된 <인간의 두 얼굴>(지식채널, 2009년)은 다양한 심리 실험과 실제 사건을 분석함으로써 상황과 인간의 관계를 분석한다. 대표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사례가 바로 ‘대구 지하철 참사’이다. 이 사고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음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의구심으로 남는 한 가지 사실은 지하철에서 화재가 발생한 후 10여 분 정도의 시간 동안 대부분의 승객들이 지하철에서 탈출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관사의 방송만 믿고 기다리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이다. 제작팀은 이에 의문을 품고 몇 가지 실험을 통해 인간이 ‘상황’에 많이 의존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실험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여럿이 함께 있을 경우 자신이 맞더라도 모두가 틀린 답을 내놓으면 그에 쉽게 동조했으나 혼자 있을 경우에는 올바로 답변하고, 돌발상황에 빠르게 대처했다.

이러한 일들을 나도 종종 경험해왔다. 특히나 남들 앞에서는 잘 나서지 못하는 나이기에 내가 맞다고 생각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더 큰 목소리로 주장을 하게 되면 내 생각을 쉽게 접었다. 그리고 내가 먼저 행동으로 옮기기보다는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며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나 또한 상황에 많이 지배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성적인 성격과 맞물려 수동적인 모습을 띠게 되었다. 상황을 지배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을 많이 보인 것이다.

“우리는 상황에 지배당하는 평범한 인간이지만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 역시 우리들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상황에 지배당한다’는 말은 언제든 ‘인간이 상황을 지배한다’로 바뀔 수 있다. 그 일을 해내는 건 다름아닌 우리들이다.” (116쪽)

인간은 이렇게 상황에 지배를 받지만, 다행히 상황을 지배할 수도 있음을 이 책은 결론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뉴스 등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의 영웅담은 주어진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여 상황을 역전시킨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수동적으로 상황에 이끌리기보다는 보다 객관적인 판단으로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나 또한 주변 상황이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기보다는 좀더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by 꽃다지, 2009년 4월 8일

잘 걸리지 않는 감기가 환절기가 끝나갈 무렵에 찾아왔다. 다행히 약한 감기라 몸이 힘들지는 않지만, 코와 목에 자꾸 신경이 쓰인다. 몸에 오한이 찾아오고 열이 나지 않는 한 감기로 인해 병원을 자주 찾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직 나이가 어린 아이들이 감기에 걸렸을 때는 내 몸처럼 생각하고 판단할 수가 없다. 열이 나는 경우가 흔하고, 더 악화될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 아이들이 다니는 소아과에서는 처방전에 항생제를 넣지 않는다는 것이다. 항생제를 처방하지 않고도 쉽게 감기가 낫기에 이 병원에 줄곧 다니고 있다.

어머니가 아파 병원에 계셨을 때 몰랐던 의학상식들을 조금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요즘은 TV방송이나 책에서 종종 유익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기에 예전보다는 질병에 대해 많이 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상식에도 불구하고 막상 몸에 심각한 이상이 생겨 병원에 가게 되면 겁부터 먹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의사가 심각한 어조로 무슨 말이라도 하면 자꾸만 작아져 어린 아이처럼 의사의 말에 고분고분 수긍할 수밖에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 속에서 조금이라도 병을 빨리 치료하려면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들이 지속되는 것일까? 병원에서 제일 답답함을 느끼는 건 도무지 내가 생각하고 판단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의사들은 병에 대해 친절히 설명하고 최선의 방식으로 처방을 내리기보다는 일상적이고 의례적으로 아주 짧은 시간에 병을 진단하고 처방한다. 그래서 나는 병명도 자세히 모른 채 의사의 지시대로 따른다. EBS에서 방송이 된 내용을 다시 풀어 썼다는 <지식채널 건강 01-몸의 이해>는 이러한 진료 방식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우리 몸을 우선하기보다는 자본과 편리에 의해 자행되는 수많은 진료들로 인해 우리 몸이 점점 더 망가져가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놀랄 수밖에 없었던 부분은 현격하게 차이를 보이고 있는 국내외 의료환경이다. 외국의 의사들은 주사나 약을 함부로 처방하지 않았다. 특히 감기의 경우 심하게 열이 나지 않는 한 휴식과 풍부한 영양섭취를 권했다. EBS 제작진이 국내의 감기약 처방전을 들고 외국의 의사에게 보여줬는데 아주 놀랐다고 한다. 또한 항생제의 남용은 두 번 이야기할 필요도 없는 과잉처방이었다. 흔한 감기에도 항생제를 처방해주는 의사가 많았다. 감기는 바이러스 감염증인 반면 항생제는 세균 감염을 치료하는 약이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항생제를 사용할 경우 체내에 내성균이 만들어져 어떠한 항생제로도 제거되지 않는 새로운 세균이 출현할 수 있다고 한다.

<지식채널 건강 01-몸의 이해>를 읽으며 가장 좋았던 점은 ‘우리 몸’을 ‘자연’으로 인식하고 있는 태도였다. 어디가 아프면 무엇이 좋고, 무엇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백과사전보다도 더 자세히 풀어놓은 책들이 참 많다. 그러한 책들이라도 유용하게 읽고 활용하면 건강에 많은 보탬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 몸을 자연으로 인식하고 있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책은 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 몸이 스스로 기능하고 치유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할 것을 역설한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아주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이 바로 그 질긴 생명력이 아니던가. 다만 인간을 나약하게 만드는 첨단 물질문명과 산업화의 결과로 나타난 환경오염이 우리의 몸을 약화시킬 뿐이다.

우리 몸에는 ‘기(氣)’라는 것이 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지만, 우리 몸의 건강과 상당한 연관이 있다. 기(氣)가 약하면 몸이 아프고, 여러 가지 질병이 걸릴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일은 바로 이 기(氣)를 적절히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을 이해하고 환경을 개선하고 건강한 생활습관을 길러야 한다. 술과 담배와 야근, 운동부족으로 기(氣)가 한창 약해질 대로 약해진 나로서는 아주 힘겨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개선해 나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이 책 읽으며 계속 뜨끔한 마음이 떠나질 않아 많이 괴로웠다.

by 꽃다지, 2009년 4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