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의 그림들을 감상하다가 렘브란트가 카라바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때마침 발간된 마로니에북스의 <카라바조; 빛과 어둠의 대가>(마로니에북스, 2009년). 주저없이 읽기 시작했다. 놀라우리만치 사실적으로 묘사된 그림들, 오묘한 표정의 인물들, 빛과 어둠의 명확한 대비. 이내 그의 작품과 기괴한 인생에 빠져들었다.
명화들을 감상할 기회가 많지 않았기에 유명한 그림들이 있어도 별 흥미를 갖지 못했었다. 그러다 하나둘씩 작품들을 주의깊게 들여다보았고,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아는 만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출발에 불과하지만, 조금씩 눈에 익어가는 그림들과 그 속에 담긴 의미들이 점점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얼마 전 렘브란트의 그림들을 보면서도 그러한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이번에 접하게 된 카라바조는 그림 이상으로 복잡다단한 인생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곳저곳을 떠돌았던 인생행로야 그의 그림들에 오히려 긍정적인 역할을 했기에 특별할 것은 없다. 지금처럼 도판 혹은 인터넷으로 대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없었던 시절이기에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배워야 했으리라. 하지만 ‘폭력적인 성향’은 좀 의외였다. 그에 관한 재판기록이 하나둘도 아니었고, 그는 늘 싸움, 폭행, 치안방해, 상해, 불법 무기소지, 온갖 종류의 불법행위 등에 연루되었다고 한다. 그의 예술적 감수성을 내부에서 충족시키지 못하고 외부로 분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러한 기질에도 불구하고 카라바조는 그의 작품세계를 확실히 구축해갔다. 완벽함보다는 사실성을 추구했다. 이는 주제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 사물의 본질에 이르고자 하는 욕구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얼굴은 가장 잘 생기고, 멋진 꽃미남 꽃미녀가 아니라 당시의 상황에 부합한 표정을 지니고 있다. 도마뱀에 물린 소년은 아픔으로 일그러져 있고,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딧의 얼굴에는 무자비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단호했던 결정이 흔들리는 표정이 역력하다. 이를 지켜보는 노파의 주름진 얼굴 역시 일그러져 있다. 과일바구니의 묘사는 또한 얼마나 사실적인가. 모두 싱싱한 과일들로 가득할 법도 한데, 어딘가 이상하다. 과일 사이로 축 쳐진 잎들이 보인다. 시들어진 잎마저 이렇게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러한 자연주의는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절정에 달한다. 빛이라고 해도 같은 빛이 아니다. 대낮의 환환 빛과 저녁 노을의 빛이 다르고, 실내에서는 창이 어느 방향에 있느냐에 따라 빛의 움직임이 다르다. 카라바조의 그림들에는 이러한 빛의 움직임이 너무도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빛과 어둠의 대가 카라바조. 카라바조는 결국 자신의 폭력적 성향이 원인이 되어 죽음에 이른다. 재판을 피하기 위해 떠났던 피난 생활의 말미에 쓸쓸히 죽어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남긴 그림들은 하나의 전형이 되어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을 통해 카라바조와 그 주변의 인물들에 대해서까지 함께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시대의 흐름과 예술적 경향들, 연관된 화가의 그림들이 백과사전 식으로 수록되어 있어 전체 속에서 카라바조를 조망할 수 있었다.
by 꽃다지, 2009년 4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