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cm 예술>(마음산책, 2002년)을 통해 처음 그녀를 알았고, 매력을 느꼈다. 그녀가 결혼한 과정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이야기였다. 솔직하고, 당당하고,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렇기 때문에 그를 예술가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다른 여느 예술가보다도 평범치 않은 인상을 내게 남겼다. 그런 그녀가 얼마 전 별세했다.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10cm 예술>에 담긴 내용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허전함이 가슴 한 구석에서 밀려왔다. 책에서 받은 인상이 강해서였을까? 모처럼 개성 강한 예술가를 알게 되었는데, 더 이상 그녀를 볼 수 없다는 서운함도 밀려왔을 게다. 그래서 그녀의 마지막 유작 <점선뎐>(시작, 2009년)을 펼쳐 들었다.

<점선뎐>은 그녀의 자서전이다. 그동안의 산문집과는 다르게 태어나면서부터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그녀의 표현이 유달리 독특하기 때문일까. 그녀의 일생은 어려서부터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고집이 세고, 톡톡 튀는 성격은 그녀 특유의 기질이었던 듯하다. 그리고 무슨 사건 사고가 그리 많았는지. 김전선이 아니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었겠지. 이전의 책에서 그러한 기질을 조금 느끼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 일 줄은 몰랐다. 대학시절, 남들 수학여행 갈 때 혼자서 그림 그리고 책 본 것은 애교로 봐줄만 하다. 술 취한 네댓 명의 남자들과 대판 싸우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는 하늘이 두 쪽 나도 해결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아들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하다니. 아들더러 결혼식 다 준비하라고 시킨 것까지야 이해한다고 쳐도, 어떻게 혼주를 다른 사람을 앉히나. 자신은 하객석에 앉아서 아들의 결혼식을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마음이란 어떤 마음일까. 그런데 그게 김전선이다. 책을 읽으며 점점 그녀의 마음에 빠져 들어갔다.

그녀는 또한 지독한 그림 벌레였다. 그리고 또 그렸다.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림을 그렸다. 천상 그림을 그릴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다. 덕분에 남편과 아들은 찬밥 신세인 경우가 많았다. -이것 또한 어디까지나 내 표현이지 그들은 서로의 사생활을 지켜주며 행복하게 살아갔다.- 둘이만 여행을 보내놓고 자신은 그림을 그렸다. 아이가 어렸을 때 아이가 그림을 망쳐놓으면 어떡하나 싶어 처음엔 아이가 잠들었을 때만 그림을 그렸다고도 한다. 그리고 그림은 철저히 자신만의 생각과 사고를 담아 표현했다. 홍익대학교 대학원을 다니며 주류에 편승해 쉽게 유명세를 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한 주류의 울타리를 과감히 거부했다. 누라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갔다. 그녀는 대학시절 영화를 찍으러 돌아다닌 괴짜이기도 했다. 그리고 책읽기를 즐겼다. 자유로운 개성이 독서를 통한 사유의 세계와 맞물려 그만의 독특한 세계를 창조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변명은 낭비다. 변명은 내가 나아갈 길이 아니다. 오로지 내 속의 나침반만 바라보면서, 내 감성이 이끄는 대로 그림을 그려나가면 길이 열릴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침묵 속의 몰두, 그것뿐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99쪽)

“사람은 언제나 가슴에 뭔가 껴안고 살아야 해. 그게 진짜 사는 거지. 애정의식이 결핍된 사람은 속물이야. 내가 누워 있어 보니 그 생각이 더 간절해. 나한테 나쁜 일 한 사람도 다 용서할 것 같은 마음이야.” (255쪽)

이제 우리는 그녀를 더 이상 볼 수 없다. 그러나 그녀의 그림은 영원히 우리에게 남을 것이다. <점선뎐>에 담긴 그녀의 작품들은 밝고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긴다. 그림 속에 담긴 자유로운 정신은 이제 그녀의 영혼과 하나가 되어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리란 생각이 든다.

by 꽃다지, 2009년 5월 11일

‘햇볕정책’의 영향으로 한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오던 남북관계가 최근 들어 급격히 경색되고 있다. 정부의 원칙 없고, 대립적인 대북정책 탓이다. 가난과 국제사회의 위협에 곤란해진 북한은 급기야 미사일 발사를 하기에 이르렀고,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심히 우려가 되는 일이다. 200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소식이 발표되었을 때 남한 사회는 전쟁의 우려로 생필품 사재기 열풍이 불기도 했다. 오늘 당장이라도 전쟁이 발발할 수 있는 위험이 항상 존재하기에 남북의 대립과 사회의 커다란 변동은 이렇게 민감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게다가 2000년대 들어 탈북자의 수가 늘어만 가니 어떻게 북한체제를 안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겠는가.

가장 이상적인 통일은 조금씩 서로의 차이를 줄여가며 자연스레 하나가 되는 것이겠지만,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고,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흡수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됐을 경우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로 경제적으로 우세에 있는 남한이 북한을 흡수통일하는 것인데, 남한 사람들이 북한으로 몰려가 부동산 투기를 할 것이라는 이야기들은 단순한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도 쉽게 통일 시나리오를 그리지 못한다. 그런데 작가 이응준이 대담하게 남북통일 이후를 소설로 그려냈다.

<국가의 사생활>(민음사, 2009년)은 남한이 북한을 흡수통일한 것으로 가정하여 남한사회의 모습을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남과 북의 경제력 차이는 통일 이후 쉽게 융화되지 못하고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다. 남한이 북한의 취약한 경제력을 모두 흡수하지 못했고, 합법적인 제도도 마련하지 못했기에 남과 북의 차이는 현실 속에서 차별화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남한이 주도권을 가져갔기 때문에 대부분의 북한 주민은 하위 계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소설 속의 주요인물들은 이북 출신들이 운영하는 조직 폭력단이다. 그들은 통일 후 남한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자들로서 폭력과 살인을 일삼으며 남한 사회의 거대한 물질의 향락과 폭력의 세계에 빠져 있다.

그들이 한 국가의 일원으로서 정당하게 대우받지 못하고 있는 모습은 지금 우리가 외국인노동자나 조선족을 바라보는 시선과도 비슷하다. 아무리 뛰어난 자질과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출신 국가가 어디냐에 따라 1차적인 분류가 끝나 버린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북한 상류 계급층도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타락의 길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들은 차별을 피해 조직 폭력단을 만들어 사업을 벌이고 그들만의 보호막을 만들어왔지만, 그 안에서 저희들끼리의 모략과 음모로 자멸의 길을 걷고 만다. 주인공 리강을 통해 그려지는 통일사회는 그렇게 암울하기만 하다.

소설의 긴장감은 다소 약해보이지만,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반영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물질적인 것만을 추구하고, 경쟁을 강요하며 살아간다면 흡수통일이 아니더라도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이 평등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북한에 대한 지원이 북한에 대한 퍼주기인 양 난리를 치는데 오죽할까. 작가는 통일사회를 어둡게 그려냈지만, 이는 우리에게 분명 반면교사가 되어야 한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분단으로 인해 생겨난 차이를 극복해 나가기 위해 지원과 교류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자연스레 하나되는 진정한 의미의 통일이 되길 바라며 준비해야 할 것이다.

by 꽃다지, 2009년 5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