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희극적인 인물로 기억하고 있는 우디 앨런이 쓴 단편소설을 막상 읽으려고 하니 그가 만든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무렴 어떠랴. 그가 쓴 소설이라도 이렇게 먼저 읽으니 다행이지 아니한가. 최근 출간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웅진지식하우스, 2009년)는 우디 앨런의 단편 18편을 수록하고 있다.

 

그의 단편들은 짧고 명쾌했다. 단편 중에서도 단편이라 할 만하다. 짧은 소설 형식에서부터 일기글, 편지글, 여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그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내용 또한 작정한 듯 이 사회에 대한 풍자와 조롱으로 가득했다. 평소 그의 기질을 토해낸 것일까. 영화들을 보지 못했기에 궁금증이 일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그의 글을 통해서나마 어렴풋이 그만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사회에 대한 조롱과 풍자는 유머러스하게 전개된다. 글이 짧기에 구성 또한 간단하다. 우리는 그 속에서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단면을 적나라하게 엿볼 수 있다. 한 번쯤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사뭇 진지하다. 아이를 일류학교에 보내려고 갖은 애를 쓰는 부모들의 모습(탈락)이나 기도문을 낙찰 사이트에서 판매하고 이를 활용하는 현실(할렐루야, 매진입니다)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이지만, 상류사회의 모순 혹은 그에 편입하려는 자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우스꽝스러운 면모가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다.

 

우디 앨런의 의도였는지 아니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책에는 글의 성격을 부각시킬 수 있는 그림들이 삽지 형태로 첨부되어 있다. 우디 앨런의 얼굴이 갖가지 표정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의 글만큼이나 재미있고 우스꽝스럽다. 그리고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게 우디 앨런의 메시지를 전한다.

 

짧은 시간 우디 앨런의 글 덕분에 유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회 현실에 대한 섬세하고, 예리한 감각은 한 번쯤 생각해볼만한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by 꽃다지, 2009년 6월 9일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맑은 새소리에 잠을 깬다. 이슬을 머금은 풀잎을 헤치며 가볍게 산보를 하고, 텃밭에서 기른 채소로 간단히 아침을 든다. 남편을 새집을 만드는 작업실로 보내고 난 후에는 어제에 이어 수를 놓는다. 나른해지는 오후엔 잠시 낮잠에 들었다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는다. 저녁엔 이웃집 부부를 초대해 저녁식사를 즐기며 웃음꽃을 피운다. 그리고 해가 들어가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잠자리에 든다.

<엄마의 공책>(시골생활, 2009년)을 읽으며 한가로운 하루의 일상이 그려지는 듯 했다. 헬렌 니어링, 스콧 니어링이 이렇게 살았던가. 손수 통나무집을 짓고, 밭을 일구고, 책읽기와 글쓰기를 하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었지. 본래 인간은 이렇게 자연과 더불어 살아왔지만,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자연과 분리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이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느껴보지도 못한 채….

‘아름다운 노년의 일기’라는 표현이 어렵지 않게 떠올랐다.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남편과 함께 봉평 산자락에서 보내는 일상들은 인생의 참 멋을 느끼게 한다. 또한 저자의 글은 아름다운 노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아내로, 며느리로, 딸로, 엄마로 살아온 인생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딸이 손수 그려 넣은 저자의 삶의 모습은 글과 함께 어우러져 한 폭이 풍경이 되었다.

저자가 살아온 인생을 엿보면서, 여러 번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나이는 정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인생의 말년에 봉평 산자락으로 들어간 것도 그렇지만, 인생을 살면서 새로운 것들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고 배우는 모습이 젊은 사람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리라 싶었다. <엄마의 공책> 또한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할지 모른다. 봉평에서 저자가 만들어갈 숱하게 많은 날들이 또다른 엄마의 공책에 빼곡히 즐거움으로 기록되길 바란다.

by 꽃다지, 2009년 6월 7일

 

갑갑한 도심을 떠나고자 하는 욕망은 누구나 한 번쯤 품어봤을 것이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 경쟁을 강요하는 일터, 터무니없이 비싼 부동산 가격…. 도대체 무엇을 위해 출근을 하고 야근을 하고, 젊은 날을 희생하고 있는가. 가끔 일찍 들어오는 날이면 아내와 아이들은 아빠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짧은 인생의 여정에서 그렇게 쌓여가는 하루 하루가 결국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일 텐데…. 그러나 다시 눈을 떠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면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수긍하여 출근을 서두르고, 인생의 쓰라림을 한 잔 술에 달래며 하루를 마감한다. 출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숲에게 길을 묻다>(비아북, 2009년)가 그 단초를 제공한다. 잘 나가던 벤처기업 CEO로 재직하던 저자 김용규는 마흔의 길목에서 도시를 떠나 숲으로 들어갔다. 이 책은 숲에서 살며 몸으로 느낀 숲의 가르침을, 자신의 경험과 접목시켜 기록한 인생경영서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깊은 깨달음 탓인지 저자는 숲의 가르침을 이용해 인생의 철학을 인위적으로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숲에서 배우고 느낀 점들과 깊은 통찰의 경험을 은근하게 들려준다. 그래서 우리는 숲과 자연과 생명이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과 자연의 섭리를 먼저 배울 수 있다. 이태 전에 나무와 관련된 책들을 여러 권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의 느낌과 같았다. 그러한 감상에 젖어 있을 때 우리의 일상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다.

“이제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나’로서 살고자 하는 이라면 ‘나’라는 씨앗 안에 이미 담겨 있는 놀라운 힘을 회복해 나가야 합니다. 본래의 나를 만나야 합니다.” (29쪽)

숲이 가지고 있는 태고의 진리는 여전히 인간으로서는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다. 뛰어넘고자 함이 아니라, 자꾸만 숲을 거스르고 자연을 거스르고 있는 우리의 삶이 안타까워하는 말이다. 우리는 숲과 함께 하기보다는 숲을 인공화시켜 자연마저도 이용하려고 한다. 그럴수록 우리의 파멸만 재촉할 뿐인데도 말이다. 최신 기계가 범람하고, 시스템이 날로 향상된다고 해서 인간의 정신마저 기계처럼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신은 물질에 눌려 자꾸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다. 이것을 빨리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최대한 숲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다.

by 꽃다지, 2009년 5월 31일

** 좋은 글귀

“희망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은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루쉰” (9쪽)

“이제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나’로서 살고자 하는 이라면 ‘나’라는 씨앗 안에 이미 담겨 있는 놀라운 힘을 회복해 나가야 합니다. 본래의 나를 만나야 합니다.” (29쪽)

“길을 잃어 보기 전에는, 다시 말해서 세상을 잃어버리기 전에는 자기 자신을 찾아내지도, 자신이 지금 서 있는 위치와 자신이 맺고 있는 무한한 관계를 깨닫지도 못하는 것이 삶이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29쪽)

“숲은 타자와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숲은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오직 자기 자신과의 경쟁이요, 새로운 영역의 창조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핏빛 대지에서 영혼을 고갈시키며 앞을 다투는 경쟁이 아니라, 나만의 푸른빛이 가득한 공간에 서는 것. 감히 추한 욕망이 넘보지 못할 자기만의 세상을 창조하는 것. 타자를 파괴하여 내 하늘을 여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낡은 나날을 부숴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것이 경쟁의 요체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01쪽)

“지구가 있어 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달이 있어 지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가 있어 서로가 있는 것입니다. 서로의 균형이 깨어지지 않도록 살뜰히 잡아주는 것으로 세상이, 별들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1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