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내가 지방에 있는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해야 했기에 아이 둘을 아침부터 돌봤다. 예약된 소아과에도 가야해서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기분 좋게 집을 나섰다. 그런데 약국에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큰 아이가 아빠의 말을 안 듣고 사고를 치고 만 것이다. 보는 눈들이 많아 말로 꾸중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번 더 주의를 줬다. 그런데 이녀석이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것이다. 한참을 실랑이를 벌인 끝에 매를 빌미로 집으로 데려와 야단을 쳤다. 황금 같은 휴일을 시무룩한 표정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될 수 있으면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선에서부터 관계를 풀어가려 하지만 이게 참 쉽지 않다. 오늘도 아이는 한참을 입을 다문 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아직 4살밖에 안 된 녀석이 이러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집으로 돌아와서 내 눈치를 살살 보던 녀석은 시간이 조금 지나자 웃으며 동생과 놀기 시작했다. 그러면 이젠 나도 어쩔 수 없다. 아침부터 아이를 울린 반성과 한 번 더 그러면 혼쭐을 내주리라는 다짐이 교차하지만, 마음은 이내 녹아버린다. 한참을 놀다가 착한 어린이라고 이야기 해주었더니, 더 잘하려고 애쓴다. 동생에게 자동차도 내어주고, 장난감도 함께 가지고 논다. 동생이 자꾸 블록을 망가뜨려 화가 났지만, ‘기분이 많이 상했구나’라고 위로해주자 속상했다고 말하고는 다시 동생과 웃음보를 터뜨린다.

 

아이들을 보면 참 솔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에 꾸밈이 없다. 슬프면 슬픈 대로, 화가 나면 화가 난대로, 기분이 좋으면 기분 좋은 대로 감정을 표현한다. 오히려 어른들이 더 문제인 경우가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앞뒤를 재느라 감정들을 차곡차곡 쌓아둔다.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도 아이들의 감정보다는 자신의 기분에 따라 대처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나도 그 어른들 중 하나이다. 마음의 문을 꼭꼭 닫아놓고 꽁 해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마음은 언제나 네 편이야>(한겨레아이들, 2009년)라는 책을 아이에게 들려주어야겠다고, 감정에 솔직하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사실 어른인 내가 더 봐야할 책이 아닌가 싶다. 아이들이 마음의 문을 닫아걸게 만드는 것도 어른들이 그렇게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 않을까.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마음은 언제나 네(우리) 편’이므로 수많은 감정들에 솔직하고, 마음의 문을 열어 감정을 교류하고, 상처를 치유해 더 성숙해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도록 억압하고 무조건 착한아이로 자라기만을 바라니 말이다. 나 또한 어려서 착한아이 소리를 들으면 우쭐해져 내 감정을 억누른 경우가 많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좋지 않은 영향을 많이 끼쳤다.

 

아이들이 <마음은 언제나 네 편이야>을 읽으면서 자신의 감정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리고 어른들이 읽어보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을 읽고 어린 시절에 풍부했던 감정들을 떠올려 진정으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언인지를 알게 된다면 좋을 것이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마음을 문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어려서부터 마음의 문을 열고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더 좋지 않을까.

 

by 꽃다지, 2009년 6월 28일

모든 것이 멸망해버린 어둠의 세계. ‘변질해 버린’ 세계의 마지막 총잡이가 죽음의 기로에 놓여 있다. “디드, 어, 치크? 덤, 어, 첨?”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괴물이 다가온다. 생긴 것이 꼭 가재 같다. 하지만 가재는 아닌 괴물이다. 놈은 이제 총잡이의 코앞이다. 총잡이는 필사적으로 움직여보지만 역부족이다. 놈이 총잡이를 공격한다. 총잡이는 순식간에 손가락과 발가락의 일부를 잃는다. 총잡이가 가까스로 놈을 물리친다. 간신히 몸을 움직이고는 이내 기절한다.

 

시작부터 긴장감이 넘친다. 마지막 생존자라면 분명 주인공일 텐데, 주인공을 이렇게 죽일 셈인지….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주인공이 처음부터 죽을 수는 없는 법. 대신 주인공은 치명상을 입었다. 앞으로 또 얼마나 험난한 길이 그 앞에 놓여 있을지. 작가는 시작부터 소설의 긴장감을 놓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작가이길래? 바로 타고난 이야기꾼 스티븐 킹이다. “플롯보다는 직관에 많이 의지하며, 소설 창작이란 어떤 이야기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과정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제야 그의 작품을 읽게 되었다.

 

<다크타워 2>(황금가지, 2009년)는 다크타워 시리즈 중 두 번째 이야기다. 총 7부로 구성되어 있는 다크타워 시리즈는 스티븐 킹이 젊은 시절부터 집필하기 시작한 필생의 역작이다. 우여곡절 끝에 2003년에 와서야 완결되었고, 국내에는 이번에 번역되었다. 스티븐 킹은 젊은 시절,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 매료되어 반드시 자신만의 <반지의 제왕>을 집필하겠다는 다짐을 했고, <다크타워>를 완성했다.

 

2부의 제목은 ‘세 개의 문’이다. 최후의 총잡이 ‘롤랜도’가 세 개의 문을 찾아 떠나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암흑의 탑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을 함께 할 동지들을 모으는 과정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반지원정대가 모이는 과정과 유사하다. 그런데 <다크타워>의 긴박함이 반지원정대를 앞선다. 세 개의 문이 열리는 시간도 얼마 주어지지 않았다. 문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다. 시작부터 전투력은 상당히 약해져있다. 마지막 총잡이 롤랜드는 과연 무슨 수로 동지들을 규합할 수 있을까?

 

열쇠는 바로 ‘세 개의 문’에 있다. 이미 멸망해버린 변질된 세계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 무시무시한 가재 괴물만 존재할 뿐. 세 개의 문은 바로 현실세계를 이어주는 통로다. 그 문을 통해 현실세계로 이동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참 독특하다. 문을 통해 바로 세계와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의식과 의식이 만난다. 현실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대상자의 몸 속으로 들어가 교감을 나누는 것이다. 같은 시선, 다른 의식을 가지게 된 대상자들은 혼란을 일으키지만, 롤랜도와의 교감을 통해 결국 현실을 인정하고, 변질된 세계로 들어선다.

 

현실세계와 변질

 

서평(?)을 쓰기 시작한 지 3년 남짓 되었다. 사실 말이 서평이지 엄밀한 의미에서 보자면 감상문에 가까운 글이지만, 책을 읽고 이 정도 기록으로 남기게 된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며 글을 쓴다. 차라리 글로 남길 시간에 글이라도 한 줄 더 읽으면 책 한 권이라도 더 읽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얄팍한 생각도 든다. 그러나 분명 서평쓰기는 의미있는 일이다. 읽은 내용을 정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되새김질의 과정에서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의외의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이러한 내용을 잘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래서 좀더 서평다운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된다. 전문 서평가들의 글을 읽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호모 부커스 이권우의 서평집 <죽도록 책만 읽는>(연암서가, 2009년)도 같은 이유에서 읽게 되었다. 매체에서 종종 접하는 좋은 글들이니 따라 읽으면 좋겠다 싶었다. 이 책에는 그가 쓴 110여 권의 흔적이 담겨 있다. 종류도 다양하다. 문학, 인문, 사회, 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다. 역시 편식하는 법이 없다. 이는 하나의 글만 읽어봐도 바로 느낄 수 있다. 문학에 대한 감상이 인문지식으로부터 비롯될 수도 있는 일이다. 글을 쓰며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다독(多讀)이 큰 몫을 하는 것이겠지만, 고른 안목이 시각의 균형을 잡아준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나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특히 고전과 자연과학 분야에는 쥐약이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내게 부족한 분야의 책들을 많이 메모해 뒀다.

그가 들려주는 책읽기는 꽤나 쉽게 읽힌다. 옆집 아저씨의 추억담을 듣는 줄 알았더니 책 이야기다. 딴청을 부리는가 싶더니 이내 책 이야기로 슬며시 비집고 들어온다. 그의 글을 읽고 책을 읽게 될 독자들을 염두에 둔 탓이리다. 나야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비평가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문학 비평의 용어들이 쓸데없이 난무해 보는 이를 당혹스럽게 한다. 글이 쉽게 쓰였다고 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조차 슬렁슬렁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책에 대한 단상으로부터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풍성히 들려주고, 본인의 생각 또한 가차없이 드러낸다. 무엇이 좋았는지, 어떠한 점이 아쉬웠는지 솔직담백하게 이야기한다. 죽도록 책만 읽는 사람에게서만 볼 수 있는 모습 아닐까? 바보처럼 읽고, 읽은 대로 솔직하게 써 내려가는 이야기. 그러한 이야기들이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by 꽃다지, 2009년 6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