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논쟁’이란 말을 떠올려 보았다. 논쟁이란 의미를 표현하면서 나는 왜 ‘건전한’이란 수식어를 붙인 거지. 논쟁다운 논쟁을 본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껏 학교에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논쟁을 해본 경험도 거의 없다. 그래서 논쟁다운 논쟁을 설명할 경우에는 굳이 ‘건전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한다. 참 오랜만이다. 물과 기름의 관계처럼 도저히 화합할 수 없어 보이는 이질적인 주제들이 내 사고를 뒤흔들기만 할 줄 알았더니 어느새 새로운 사고의 싹을 틔우고 있었다. 책맛을 제대로 봤다고나 해야 할까. <종교전쟁>(사이언스북스, 2009년)의 이야기이다.

<종교전쟁>을 읽기 전에는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보기 좋게 눌러주길 은근히 기대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같은 무신론자의 입장이 창조론을 좀더 궁지로 몰아갔으면 했다. 전쟁이란 말까지 써가며 종교논의를 펼친다고 생각했기에 과격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가당치도 않은 생각이었다. 세 명의 학자(김윤성, 신재식, 장대익)는 오랜 기간에 걸친 편지교류를 통해 종교와 과학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차분하게 주고받았다. 간단히 의견을 교환한 것이 아니라 한 편의 편지를 쓰기 위해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며 자신의 입장을 명쾌하게 주장했다. 편지글이 지닌 장점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로 정리되며 사고가 한 번 더 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에 대한 문제는 논리적이다가도 쉽게 감정적으로 흐를 수 있는 위험 요소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명의 학자는 수용과 주장의 접점을 잘 찾아 나갔다.

그럼, 세 명의 학자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주장을 통해 책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자. 먼저 신재식 교수는 호남신학대학교 신학과에 재직중인 신학교수이다. 책에서는 기독교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있다. 기독교가 종교계를 대변한다고 할 수 없고, 기독교 내에서도 과학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하기 때문에 그가 종교계를 대표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는 ‘진화론적 창조론자’의 시각에서 종교와 과학을 말한다. 창조론만을 주장하는 이들보다 과학에 대한 시각이 많이 열려 있다.
장대익 교수는 동덕여자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이다. 과학자의 입장에서 진화론을 지지한다. 편지를 교류하는 동안 미국 보스턴에 있는 터프츠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 대니얼 데닛의 연구실에서 공부중이었다. 그는 진화론을 지지하는 대표학자 에드워드 윌슨, 대니얼 데닛, 리처드 도킨슨의 견해를 소개하며 그의 이론을 전개한다. 에드워드 윌슨, 대니얼 데닛을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등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들려주는 생생한 이야기들이 특히나 흥미로웠다.
종교학자인 김윤성 교수는 한신대학교 종교 문화학과 교수이다. 종교와 과학의 중간자적 입장에서 신재식 교수와 장대익 교수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적절히 지적해 주며, 기독교를 제외한 나머지 종교들이 과학을 바라보는 입장을 간략히 소개한다. 종교학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바들이 종교의 근본적인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했다.
나 역시 어려서부터 스무 살 때까지 열심히 성당을 다니다가 이제는 무신론자에 가깝게 되었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도 놓칠 수가 없었다.

편지 교류를 마치고 서로 만나 종교의 미래에 대해 허물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은 기나긴 논쟁을 매듭짓는다. 종교의 미래는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이든, 그렇지 않은 이든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인간의 정신과 관련된 부분이기에 그렇다. 이 책을 읽으며 논쟁을 벌이는 성숙한 자세를 배울 수 있었고, 우리가 이러한 논의를 통해 무엇을 얻어야 할지를 생각해보았다. 결국 인간의 마음, 본성이다. 종교를 위해 인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있기에 종교가 있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을 위한 종교라고 이해했을 때 종교와 과학에 대한 논쟁은 더 자유로울 수 있다. 종교의 존재 이유가 분명해진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 선한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어떠한 신을 믿든, 믿지 않든 그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선한 본성을 위한 믿음이길 바란다.

by 꽃다지, 2009년 7월 3일

 

아이들이 읽는다면 왜 그렇게 힘들게 돌아가야 했는지 의문을 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비게이션이 있으면 찾아갈 수 있지 않나요? 휴대폰으로 구조 요청을 하면 되잖아요. 아님 중국에 도착해서 비행기를 타고 가면 되지. 지당한 의문들이다. 밥을 굶는 사람들을 보고는 ‘왜 굶어요? 밥이 없으면 라면(혹은 햄버거)을 먹으면 되지요.’라고 생각하는 세대니. 그래서 아이들도 고전을 읽어야 한다. 나조차도 생생한 여행기록을 읽고 나서야 당대의 역사, 문화적 상황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샘깊은 오늘고전 시리즈로 발간된 <표해록>(알마, 2009년)은 ‘바다에서 표류한 일에 관한 기록’으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와 더불어 중국 3대 견문록 중 하나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사실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표해록>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다. 국내에 존재하는 여행 견문록으로는 박지원의 <열하일기>,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정도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읽고 나니 이렇게 뛰어난 작품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제목조차 알지 못했다는 게 부끄러웠다.

<표해록>은 조선 성종 때 선비인 최부의 기록이다. 최부는 경차관으로 제주도에 갔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날씨가 안 좋은데도 불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다 바다에서 표류하게 되었다. 그렇게 표류해 흘러들어간 곳이 중국 땅이었는데, 도착하자마자 해적들에게 매를 맞고 가진 것을 다 빼앗긴다. 그쯤해서 살고자 하는 의욕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 이미 선원들은 무리하게 배를 띄운 최부를 원망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최부는 함께 합심하면 살 수 있다고 독려하며 조선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중국 내륙에 들어서도 힘든 상황은 계속됐다. 왜구로 몰려 마을에서 내쫓기고 몰매를 맞고 죽을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최부와 일행은 배고프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예를 지키고 대화를 시도해 난관을 헤쳐 나간다. 차츰 중국의 선비들도 최부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를 도와 조선으로의 무사귀환을 기원한다.

여행의 과정에서 최부는 예의가 있고 기개가 있는 조선 선비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주자의 <가례>를 중국의 지식인들보다도 더 원칙적으로 지켜나가고 있었음을 알려주기도 했다. 게다가 최부는 여행 중 중국의 문화를 지켜보면서 조선에서도 쓸모가 있겠다 싶은 좋은 제도와 문물을 배우려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답답한 마음도 일었다. 예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조선시대 성리학이 가지고 있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었다.

<표해록>을 읽으며 가장 인상이 깊었던 부분은 부모에 대한, 그리고 함께 동행했던 사람들에 대한 최부의 마음이었다. 부모에 대한 예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일행과 끝까지 생사고락을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무사히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일이 잘 안 풀리면 쉽게 포기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쉽게 여기는 시대에 귀감이 될 만한 고전이라 생각한다.

by 꽃다지, 2009년 7월 2일

 

 

책을 읽다가 자꾸 엄마 생각이 났다. 병원에 다니고 요양을 하고, 힘든 치료의 과정들 때문에 아파했던 순간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벌써 2년하고도 반이 지났건만 기억은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제목부터가 마음이 아팠다. <어머니를 돌보며>(부키, 2009년). 사실 저자의 나이가 엄마의 동년배이었기에 더 슬픔이 밀려왔다. 저자는 팔순이 지난 노모를 돌본 것이기에 그래도 나은 경우가 아니었냐는 항변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부모의 죽음에 어떻게 나이를 비교할 수 있으랴. 그것도 한두 해가 아닌 7년을 고생한 저자에게 말이다.

 

<어머니를 돌보며>는 저자가 파킨슨병과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면서 보고 들은 바를 정리한 책이다. 어머니에게 심각한 병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아버지도 온전한 상황은 아니었다. 심장질환으로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저자 또는 녹내장이 찾아와 심각한 위기의 상황을 맞기도 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어머니를 돌보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고 남편과 아이들 곁을 떠나야만 했다. 무엇보다 큰 고통은 정신적인 충격이었으리라. 누구나 성인이 되기까지 부모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정신적인 교감을 나눈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겠지만, 부모의 그러한 영향은 삶의 지탱하는 한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런 정신적 지주가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정신을 놓아버린다면, 그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저자는 마음이 아팠고, 인정할 수 없었지만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솔직하고 인간적인 고민이 그의 글 속에 담겨 있었기에 함께 공감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죽음의 문제. 이에 대한 저자의 성찰 또한 깊이 생각해볼만 하다. 얼마 전 세기의 스타 마이클 잭슨이 돌연 사망했다. 50세의 나이라 한다. 죽음 자체가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그의 죽음에는 석연치 않은 의문들이 따라 다닌다. 과도한 성형과 약물 복용. 어떠한 이유가 있었건 죽음에 이르는 자연스러운 과정들을 거부했기에 그의 생은 더 빨리 끝난 것이 아닐까. 100세까지 자연적인 삶을 살다가 곡기를 끊고 생을 마감한 스콧 니어링의 삶과 죽음이 다시금 떠올랐다. 저자도 아마 비슷한 생각을 했으리란 느낌이 든다. 이 책을 통해 부모님에 대해, 그리고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한 번쯤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사춘기를 지난 여자에게 임신이 정상적인 일이듯, 폐경기를 지난 여자에게는 휘어진 허리와 금 간 엉덩이뼈가 정상이다. 어머니 나잇대에는 생명이 아닌 죽음이 자연의 길이다. 자연은 우리를 없애 버리고자 우리 뼈를 약하게 만든다. 자연은 그렇게 우리의 갈 길을 보여 준다. ‘자연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하고 계속해서 묻다 보면 결국 ‘죽음’이라는 답에 이른다.” (43쪽)

 

by 꽃다지, 2009년 6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