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 동안은 일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집에도 며칠 못 들어왔다. 일이 적당히 안배가 되어 있다면 밤을 새는 일은 없을 텐데, 일 자체가 원래 그렇다. 일이 없다가도 한순간에 몰려온다. 휴식이 절실하다. 그렇다고 집에서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빠가 퇴근하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들을 외면하고 혼자서 잠만 잘 수도 없다. 나 또한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놀아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가끔은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잠시의 틈도 없이 나의 하루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이 공간들(집&사무실)을 좀 벗어날 순 없을까? 작업실! 그렇다. 며칠 전에 읽은 그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다. 작업실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고양이 빌딩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만의 일과 사색과 독서와 휴식이 가능한 곳, 나만의 작업실이 필요하다.

며칠 전 김갑수 시인의 <지구 위의 작실><푸른숲, 2009년)을 읽었다. 나처럼 삶에 찌든 도시민에게 ‘작업실’이란 공간은 얼마나 멋진 로망인가. 그는 오래 전부터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손수 내린 에스프레소 한 잔과 함께. 일전에 한겨레 강의 사회를 맡은 그의 모습을 보았지만, 그에게서 낭만적인 모습이 그리 깊게 배어 있는 줄은 몰랐다. 그냥 털털한 논객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살펴보니 예사로운 수준이 아니었다. 보통 작업실이라 하면 별도의 사무공간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혼자만의 공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기에 규모가 얼마나 되고 어떻게 꾸며졌는지는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그의 작업실 ‘줄리아홀’은 평범한 작업실이 아니다. 지하에 박혀있지만, 지구를 품고 있다. 무엇으로 지구를 품고 있느냐. 낭만과 지성이다. 감히 낭만과 지성을 품은 작업실이라 평하고 싶다.

낭만의 요소는 그가 흠뻑 빠진 음악에서부터 시작한다. 만약 가을 어느 날 그의 작업실을 방문한다면 입구에서부터 재즈의 선율이 인사를 건넬 것이다. 다음으로 선반에 빼곡히 채워진 음반과 책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사이 그가 직접 볶고 갈아서 만든 원두커피의 향이 혼을 빼앗아 갈 것이다. 음악을 좋아했기에 음반을 사 모았고, 더 높은 수준의 오디오와 스피커를 구비했다. 작업실에 있으면서 차를 마시다보니 원두커피를 즐기게 되었다. 차츰 커피의 맛에 빠져들어 세계 각지의 원두와 머신까지 갖다 놓고 손수 만들어 마시기 시작했다. 지성의 요소는 이렇게 자신만의 세계에서 독서와 사색을 즐기다 보면 자연스레 생겨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모처럼 잊고 있었던 나만의 공간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예전에는 다치바나 다카시 식의 작업실을 주로 상상하곤 했는데, 이젠 줄리아홀을 떠올려야겠다. 나도 저자처럼 잠시 주문을 외워본다. 오블리 비아테(좋은 기억만 남겨두고 나쁜 기억은 사라지게 만드는 주문)! 내게도 작업실을!

by 꽃다지, 2009년 7월 26일

규모가 작은 회사에 다니기에 성과평가가 그리 체계적이지 못함을 느낀다. 특히 장기간에 걸친 평가는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주관적인 판단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어떠한 기준을 두고 평가하고 싶지만, 그것도 그리 녹록치는 않다. 다양한 업무들에 매이다 보면 생각할 겨를조차 없기 때문이다.

군 시절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사단 인사처 행정병으로 근무했기에 1년에 한 번 사단 내 장교들의 인사평정 문서를 작성하곤 했다. 인사평정 기간이 되면 밤이 늦은 시간까지 대기를 해야 했다. 그때 느꼈던 바는 ‘장교들에 대한 인사평정이 그리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군대라는 거대 조직인데 너무 주먹구구식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10년도 더 지난 과거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겠지.

이러한 느낌과 기억들로 인해 <성과 평가란 무엇인가>(빅슨북스, 2009년)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 절실했던 바는 아니지만, 조직에서 나는 어떠한 모습으로 성과를 평가받아야 할지, 후배들을 평가할 때 주관적인 판단이 아닌 어떠한 객관적 기준으로 평가할지 되짚어보고 싶었다.

책을 읽어보니 나처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국내 기업들 대부분이 과정보다는 결과를, 성과 평가의 최종 결과물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추천의 글을 쓴 링키지코리아 문수모 대표는 “성과 평가는 한 번의 일회성 사건이 아닌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며,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기업의 핵심적인 프로세스”(6쪽)라고 강조하여 이야기한다.

책을 쓴 딕 그로테 역시 성과 평가를 ‘탁월한 기업 성과를 위한 핵심 도구’로 여긴다. 성과 평가 하나 가지고 무슨 내용을 이리도 많이 적었나 싶게 세세한 부분까지 독자들에게 소개하며 사소한 부분 하나라도 놓치지 않도록 주의를 준다. 성과 평가라는 것이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칫 주관적이고 체계적으로 흐르기 쉽기 때문이다. 저자는 성과 평가를 성과 계획, 성과 수행, 성과 측정, 성과 점검의 4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성과 평가의 절차와 중요한 의의에 대해 별도의 장을 두어 소개한다.

책을 읽으며 두 가지 사항은 발전적 방향을 별도로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구조조정이나 해고 결정에 대한 부분이다. 성과에 대한 평가가 구조조정이나 해고 결정에 용이한 근거를 대기 위한 수단은 분명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도 많은 부분 언급한 것은 아니다. 다만 성과 평가의 목적이 개인이 수행한 업무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통해 기업의 체질을 개선하고 기업의 성과를 높이는 데 기여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다른 하나는 성과 평가에 과연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이다. 저자는 전혀 그런 일이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학연과 혈연 등이 근절되지 않는 한 차별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말처럼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by 꽃다지, 2009년 7월 16일

<둥근 돌의 도시>라.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도시 시리즈가 생각이 났고, 주제 사라마구가 떠올랐다. 주제 사라마구는 인간 사회의 부조리함을 도시 시리즈를 통해 꼬집었기에 이 책도 그런 류에 속하지 않을까라는 추측을 했지만, 책 소개는 이와 달랐다. ‘요절복통 코미디’라는 책의 소개에 기대를 걸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49세기라는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둥근 돌의 도시>(살림, 2009년)는 평범한 공무원 카르멜로를 주인공으로 한다. 내리막길만 보면 달리기를 좋아하는 카르멜로는 어느 날 평소와 같이 내리막길을 달리던 중 대통령의 핸드백을 들고 달아나는 도둑과 함께 차에 치이게 되고, 이 일로 국민 영웅이 된다. 그는 급기야 대통령과 스캔들을 일으키고, 평소 대통령의 자리를 호시탐탐 엿보던 이들은 이를 빌미로 ‘둥근 돌’을 훔쳐 권력을 빼앗으려 한다. 그러나 스토리가 순탄히 흘러가면 긴장감이 떨어지는 법. 이들의 음모는 엇나가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이 사건에 연루된 카르멜로는 하루아침에 국민 영웅에서 희대의 악당이 된다.

대략의 스토리만 보면 한 편의 재미있는 코미디라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소설은 기대 이하였다. 전반적인 느낌은 여러 가지 요소들을 어설프게 짜깁기한 코미디라는 생각이다. 스페인 사람들의 정서와 우리의 정서가 이리도 다른 것일까. 과연 2008년 스페인을 발칵 뒤집은 화제의 베스트셀러였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디스토피아 소설을 어설프게 묘사한 미래사회. 책도, 음악도 금지되었다지만 우리는 그 디스토피아 같은 현실에서 무엇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인가. 스토리 구성은 인과 관계의 치밀함보다는 흥미 위주로 흘러갔다는 느낌이다. 마지막 결론 부분을 보라. 작가의 한두 줄에 의해 모두 연인관계로 정리된다는 사실. 좀 진부하다. 나름 독자에게 새로움을 선사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엿보이지만, 진정성은 잘 전달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둥근 돌의 도시>는 내용 구성에 있어서나, 재미 면에서나 아쉬움이 많은 소설이었다.

by 꽃다지, 2009년 7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