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임꺽정> 전집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현재 중반부를 다 읽어 간다. 중반부는 의형제편으로 훗날 임꺽정과 함께 결의를 하게 되는 인물들이 하나씩 등장한다. 모두 다른 이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각각의 단편으로 보아도 무방할 만큼 각 인물들의 이야기들은 예사롭지가 않다. 거침없는 행적과 입담이 재미와 흥미를 한껏 선사한다. 아마도 화적편을 다루고 있는 후반부로 가면 절정에 이르지 않을까 싶다.

<임꺽정> 전집을 한 권씩 섭렵하던 중에 각 나라의 전설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는 <세계의 전설-동양편>(삼양미디어, 2009년)을 읽게 되었다. 동양의 전설들을 읽다보니 <임꺽정>의 구수한 입담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비슷한 시기에 읽게 된 이유만은 아니었다. 사실 <임꺽정>을 소설로 읽고 있지만, 책 안에는 설화와 같은 이야기들이 자주 등장한다. 각 주인공들의 힘쓴 이야기들과 장가든 이야기들은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에게 ‘전설(?)’이 되었다. 책을 쓴 홍명희도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모아서 소설화 한 것이라 하니 소설이 되지 않았다면 전설로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졌을 것이다.

<세계의 전설-동양편>에 소개되고 있는 전설들은 영웅을 둘러싼 탄생과 모험담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나라 전설여행에서는 최치원, 강감찬, 신립, 선덕여왕 등 영웅들과 귀신, 요괴, 기괴한 동물들이 등장했다. 이는 중국, 일본, 인도, 몽골, 동남아시아, 이집트·아프리카의 전설여행에서도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더 회자되고 반향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영웅담만한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동양의 각 나라는 지리와 풍토, 문화적 환경에 따른 고유의 전설들을 지니고 있었다. 일본과 중국의 전설은 그래도 우리나라와 멀지 않고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문화를 접하고 있기에 다른 나라의 전설보다는 친근하게 읽을 수 있었고, 그 외 인도나 이집트, 아프리카 등의 전설은 그 낯섦과 독특한 캐릭터들로 인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전설을 다른 나라의 전설에서도 종종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선녀와 나무꾼 같은 이야기가 몽골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그려지고 있다. 내용은 같다.

<세계의 전설-동양편>을 읽으며 각 나라의 재미있는 전설을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전설 중에서는 제주도와 관련 이야기들이 내 흥미를 끌었다. <세계의 전설-서양편>과 함께 읽는다면 전 세계의 전설을 두루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by 꽃다지, 2009년 10월 11일

 

 

나름 합리적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돌아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음을 알 수 있다. 판단을 그르칠 때도 있고, 남들보다 물건을 비싸게 사기도 한다. 당장 필요할 것처럼 물건을 사들이지만, 결국 먼지만 쌓여 가는 경우도 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걸까?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알고서는 후회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판단을 올바로 하기 위해 사전 정보도 많이 얻고, 비교도 꼼꼼히 하는데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이준구 교수의 <36.5℃ 인간의 경제학>(랜덤하우스코리아, 2009년)이 그 해답을 명쾌하게 제시해 주었다.

<36.5℃ 인간의 경제학>은 경제 행위 뒤에 숨겨진 인간의 심리를 탐구하고 있는 책이다. 이를 행태경제이론(behavioral economics,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존재’라는 경제학의 기본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인간의 형태를 직접 관찰한 결과에 기초해 경제현상을 분석하려는 경제이론)이라 하는데, 행태경제이론은 인간 본연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인간이 정말로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존재인지를 검증해 이를 토대로 경제이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행태경제이론은 아직 태동 단계에 있다고 한다. 그동안 주류 경제학은 행태경제이론을 무시해왔다. 행태경제이론은 심리학의 영역에 속하지 경제학의 영역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경제현상에 대해서는 어떠한 식으로든 해명이 필요할 것이다. 이준구 교수는 이러한 점에 주목했고, 행태경제이론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저자는 경제적 인간이라 자처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실상과 허상부터 따진다. 경제적 인간은 합리적인 판단에 근거해 경제행위를 해야 마땅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실생활을 돌아보면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경제이론을 보면 수요와 공급의 곡선에 따라 가격이 형성되고 판매량이 조절되지만, 실제로 시장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러한 판단을 전문용어로 ‘휴리스틱(heuristics, 현실의 상황을 판단하는 일이 무척 복잡하기 때문에 이를 단순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주먹구구구식의 원칙. 지적 능력과 정보의 부족함을 메워 주는 긍정적 측면과 더불어, 사물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방해하는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음)’이라 하는데 우리말과 가장 가까운 표현이 ‘주먹구구’이다. 저자는 ‘주먹구구’가 우리 삶의 현실이라고 단정 짓는다. ‘나는 아니겠지.’라고 잠시 생각하지만 주먹구구가 우리 삶의 현실인 게 맞다. 내가 자주 경험하는 바로는 대형 할인마트에 갈 때다. 필요한 물건의 목록을 적어놓고 가족과 함께 마트에 다녀오면 항상 물건이 목록보다 많다. 1+1, 특별할인 등 소비를 유혹하는 물건들을 지나치지 못하고 구입하고 마는 것이다.

인간의 주먹구구식 경제행위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위와 같은 경우처럼 마트의 대표적인 미끼상품을 보고 전체적으로 가격이 쌀 것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재산이 아무리 많더라도 손실이 큰 경우 상실감을 크게 느낀다. 어떠한 회사에서 물건을 미리 써보라고 권할 경우 예상 지출 비용이 높아지며,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떠한 틀에 의해 짜이느냐에 따라 소비의 행태가 달라진다. 이를 틀짜기효과(framing effect, 똑같은 상황이라도 여러 가지 다른 인식 틀이 있을 수 있는데, 이때 어떤 틀에 의해 상황을 인식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행태가 달라지는 것을 틀짜기효과라 부름)라 하는데, 이는 경제행위 외에도 우리가 사물을 판단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 또한 사람들은 저마다 심적회계를 지니고 있다. 어떻게 생긴 돈이고 어디에 쓸 것인지의 기준에 따라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기록한다고 본다. 이는 똑같은 지출이라도 월급에서보다 보너스에서 더 쉽게 사용하는 행위에서 엿볼 수 있다.

인간의 비합리적 경제행위는 이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선택과 실행의 어려움으로 인해 강제적인 것을 좇기도 하고, 선택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가능한 현상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성향이나, 미리 정해진 것을 따르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공정성에 민감하며 시간의 차이에 따라 전혀 다른 선택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만큼 인간의 경제행위는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준구 교수는 이러한 행태경제이론의 영향력이 이론보다 정책에서 더욱 빠르게 확대될 것이라 예상한다. 본인 스스로 행태경제이론 덕분에 더 현실성 있고 균형 잡힌 정책 평가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인간의 경제학이라 이름 붙인 것처럼 이론을 위한 이론이 아닌 사람들의 실생활 경제에 근거한 행태경제이론이 보다 인간을 위한 정책에 활용되길 기대해 본다.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알고 그것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틀을 짜야 좋은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 (7쪽)

by 꽃다지, 2009년 10월 5일

 

어제는 케이블 TV를 보다가 대림건설의 e-편한세상 CF <진심이 짓는다>편을 우연히 다시 보게 되었다. 처음 보았을 때도 느낀 바이지만, 최근 몇 년간 유행하고 있는 아파트 광고와는 소비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달랐다. 참 잘 만든 광고란 생각이 들었다. 그 광고를 박웅현 ECD(Executive Creative Director)가 만든 것이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그의 광고들은 친근했고, 그의 광고들을 들여다보니 역시 인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만든 광고라 그런지 차원이 달라 보였다. <인문학으로 광고하다>(알마, 2009년)를 통해 얻은 커다란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인문학으로 광고한다는 책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는 의심이 먼저 들었다. 자본주의의 꽃인 광고를 인문학으로 만든다고? 자본주의와 인문학이 만나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닌가? 그렇다면 인문학이 광고에 이용당하는 것이겠지. 요새 인문학을 응용한다는 문구들이 많이 나도는데, 그렇다면 이 책도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술수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뭐~ 이런 식이었다. 그러나 의심만 하자고 책을 펴든 건 아니므로 그 진의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책을 끝까지 읽어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진심이 짓는다>는 CF의 카피 문구처럼 진심으로 광고를 제작하고, 그 내용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는 박웅현 ECD 본인이 직접 쓴 글이 아니다. 인터뷰어 강창래가 박웅현을 밀착 취재하고 인터뷰하여 글로 옮겼다. 인터뷰집도 이전과는 다르게 많이 진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10년 전쯤 문답식의 딱딱한 인터뷰 기사들이 주를 이룰 때 월간 <말>의 인터뷰집 <그들에게 말걸기>를 참으로 신선하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인터뷰어 강창래의 글쓰기는 그 방식과 많이 닮아 있다. 아마도 박웅현 ECD가 직접 썼다면 자신의 실적과 생각을 위주로 썼을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는 강창래의 눈을 통해 객관적으로 바라본 그의 일상과 장점을 이렇게 마주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 또한 책을 통해서, 인문학적 사고를 통해서 삶을 더 풍요롭게, 사고의 폭을 더 넓게 가질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이기에 박웅현 ECD의 말이 그리 새롭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만 하는 것과 실제로 자신의 일과 생활 속에서 인문학을 적용시키는 문제는 차원이 다른 것이기에, 그가 어떠한 관점에서 인문학을 광고에 적용시켰는지 더욱 면밀히 들여다보았다. 우선 그가 만든 광고들을 살펴보았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사람을 향합니다>, <정말이지 놀라운 이야기>, <생각이 에너지다>, <엑스캔버스하다>, <진심이 짓는다>, <생활의 중심>, <잘 자, 내 꿈 꿔!>, <커피 앤 도넛>, <세상의 모든 지식>… 이름만 들어도 쉽게 떠오르는 주옥같은 광고들이 많았다. 물론 이 모든 광고들이 인문학적 관점으로 제작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본인 또한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그의 광고에는 ‘인문학’이라는 말의 의미처럼 ‘사람’이 중심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그의 광고들은 감동이 느껴지는 한 편의 드라마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끝내 집행되지 못했지만, 그가 애착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촛불>편 광고는 특히 그랬다. 마지막 결론을 빼놓으면 내가 보아도 광고의 성격보다는 사회 비판적인 성격이 물씬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시대를 담았고, 사람들의 마음을 담았던 것뿐이다. 단지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보수의 경향을 걷고 있기에 그러한 느낌이 강하게 풍기는 것이다. 박웅현은 이렇게 한 편의 광고를 만들 때 인간을 생각하고, 시대를 본다. 광고는 “잘 말해진 진실”(매캔에릭슨의 모토), “상품이나 기업의 장점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알려줄 뿐이다”(윌리엄 번박)라는 문구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는 “광고는 ‘언어’를 조금 배운다고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문화적인 맥락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95쪽)고 말한다. 광고라는 매체를 통해 사람과의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인문학으로 광고한다는 것은 결국 e-편한세상의 <진심이 짓는다> 아파트 광고 카피처럼 ‘진심이 만든다’는 의미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만 팔리면 어떻게 광고하든 상관없다는 식이 아니라, 시대의 맥락 속에서 사람들과 소통을 통해 진심이 담긴 광고를 제작하는 것. 바로 그의 인문학적 광고가 추구하는 방향이 아닐까. 그러한 진심이 소비자에게 잘 전달되었을 때 광고의 효과 또한 높아질 것이다.

 

by 꽃다지, 2009년 9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