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아이들을 보면 변화·발전해 가는 세상에 참으로 빨리도 적응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이제 갓 초등학교에 다니는 조카의 경우 다섯 살 무렵인가부터 혼자서 컴퓨터를 했다. 정보를 어디에서 어떻게 얻었는지 궁금증이 일 정도로 익숙하게 어린이 사이트에 접속해 게임을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았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한창 주가를 올리며 보급이 될 때 정보화 사업의 일환으로 어르신들이 컴퓨터를 배우던 모습과 너무도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하기야 어려서부터 컴퓨터, 휴대전화, 게임기 등 디지털 기기들을 보고 듣고 사용해왔으니 어찌 익숙해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게다가 모든 걸 보는 대로 흡수하는 나이에….

<위키노믹스>의 저자 돈 탭스콧은 <디지털 네이티브>(비즈니스북스, 2009년)에서 디지털 환경 속에서 나고 자란 세대의 특징을 분석한다. 디지털 환경은 단순히 삶의 풍요로움만을 증가시킨 것이 아니었다. 디지털을 어려서부터 이용해온 디지털 세대의 생활방식과 가치를 송두리째 바꿔 나갔다. 그 결과 디지털 세대는 그들만의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 저자는 이를 여덟 가지 기준과 특징으로 정리한다. 미래를 내다보는 탁월한 혜안을 지닌 비즈니스 전략 분야의 세계 최고 권위자라는 수식어처럼 저자는 이미 오랜 시간 통찰해 왔다. 그리고 ‘넷세대:전략적 조사’라는 조사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과 캐나다에 거주하는 13세~20세까지의 젊은이 1,750명을 1차로 인터뷰하고, 2007년 5월부터 12개 국가에서 16세~29세까지의 넷세대 5,935명을 인터뷰하여 그 결과를 정리했다. 이 책은 실로 방대한 인터뷰와 조사·분석의 결과다. 조사 과정에서의 아쉬움은 IT 강국이라 불리는 우리나라가 조사 대상국에서 빠진 점이다. 중국과 일본까지 포함되었는데도 말이다.

저자는 먼저 디지털 네이티브의 속성을 ‘역사상 가장 똑똑한 세대’라 규정한다. 그리고 앞으로 이들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 예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디지털 네이티브가 몰고 올 변화와 파장에 미리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제시하는 디지털 네이티브의 여덟 가지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최고의 가치는 선택의 자유다. 둘째, 내 개성에 맞게 맞춤 제작한다. 셋째, 철저하게 조사, 분석한다. 넷째, 약속을 지키고 성실함을 중시한다. 다섯째, 협업에 익숙하다. 여섯째, 일도 놀이처럼 즐거워야 한다. 일곱째, 매사에 스피드를 추구한다. 여덟째, 혁신을 사랑한다. 언뜻 보면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저자도 이를 의식한 듯 디지털 네이티브에 대한 부정적 시선 또한 함께 소개한다. 그러면서도 미래를 매우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의 특징들을 살펴보니 ‘지식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지금 회사에서 행하고 있는 일들을 돌아보면 나 또한 그 변화의 한가운데서 혼란을 겪을 때가 종종 있다. 내가 처음 사회에 발을 디딜 때의 환경과는 너무도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저자의 견해를 반박하자면, 저자는 디지털 네이티브의 특징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해소할 명확한 근거가 없다.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특징이 더 명확해질지 모르겠지만, 디지털 네이티브의 변화가 아무리 빠르고 혁신적이라 하더라도 사회의 질서를 송두리째 변화시킬 만큼 강력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네이티브세대라고 규정한 1977년~1997년의 세대의 현재 모습과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저자가 제시하는 디지털 네이티브의 발생과 특징들은 분명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모습이다. 이제 학습자로서, 근로자로서, 소비자로서, 그리고 가족의 일원으로서 많은 것을 변화시켜 나갈 것이다. 그 변화의 모습이 긍정적이고, 우리 삶을 풍부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바람직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by 꽃다지, 2009년 11월 8일

갑작스런 한파에 몸을 바짝 옴츠렸던 날, 출근길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었다. 에세이집이니 첫 장을 넘기는 마음은 가벼웠고, 상쾌한 아침에 읽는 글이니 즐거웠다. 그러나 한 자 한 자 읽어갈수록 마음은 더 심란해졌다. 그리곤 가슴 언저리에서부터 뜨거운 무엇이 치밀어 올랐다. 문장의 힘을 새삼 되새겼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다음(Daum)에서 두어 번 그의 에세이를 읽었을 땐 이 정도의 느낌을 받지 못했었다. 눈대중으로만 읽어서였을까. 아니면 화면으로 보는 글과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읽는 글의 차이였을까. 강화도 시인 함민복의 에세이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현대문학, 2009년)는 이렇게 나의 첫마음을 사로잡았다.

 

한동안 자연 속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강하게 품은 적이 있었다. 결국 말뿐인 이 생각의 사치는 강화도 시인, 함민복의 글 앞에서 한껏 부풀다 터진 풍선처럼 스르르 수그러들었다. 누군들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몸 속 깊은 곳에 배인 감춰진 욕망을 배설하지 않는 한 이상적인 삶에 대한 기대는 한갓 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어설픈 몸짓으로 뻘 한가운데에서 낙지를 잡아보겠다고 허우적거리는 시인의 모습은 그래서 감동적이다. 촌에서 자란 어린 시절의 추억은 현재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마흔이 넘은 노총각을 걱정하시는 어머니를 대하는 애틋한 마음은 부족함이 없는 물질의 풍요 속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삶의 근본이다.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면서도 끝내 자동차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라고 생각하는 모순을, 하루에 몇 번밖에 오지 않는 버스를 타고 다니며 세상과 만나는 시인의 발품을 조금이라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욕심 없이 사는 삶의 모습은 어느 한 순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걸어왔던 삶의 발자취 속에서 소리 없이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라 여기는 삶의 여유가 그걸 말해준다. 나의 삶은 과연 어떠했을까. 내 삶의 발자취 속에서 나는 어떠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까. 조용히 뒤돌아본다.

 

by 꽃다지, 2009년 11월 6일

작년 이맘때쯤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 카림 라시드를 알게 되어 그의 매력에 흠뻑 빠진 적이 있다. 디자이너가 아니기에 그동안 몰랐던 놀라운 세계를 조금 맛보게 된 것이다. 카림 라시드는 디자인도 뛰어났지만, 철학 또한 훌륭했다. 사실 내가 반한 건 그의 디자인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자인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강한 의지는 그의 디자인 곳곳에 배어 있었다. 그럼 국내에는 카림 라시드만한 디자이너가 있을까? 우리 눈으로 디자인을 자주 접하기는 하지만 그 디자인을 누가 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잘 갖지 않기에 이름을 모를 뿐, 카림 라시드를 능가하는 훌륭한 디자이너는 많다고 생각한다. 그 중 대표되는 이가 바로 김영세가 아닐까 싶다. 내게는 아이리버의 김영세로 각인되어 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라 할 수 있는 그가 이번에 <이매지너>(랜덤하우스, 2009년)라는 책을 펴내었다. 카림 라시드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듯 그의 디자인 철학을 들어봄으로써 디자인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그는 이번에 ‘이매지너’라는 새로운 용어를 소개하고 있다. 다음 세대를 지배할 수 있는 창의적인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결국 관건은 ‘창의’다. 그렇다면 이매지너는 어떻게 되는가? 또 무엇을 추구하는가?

 

“이매지너(Imaginer)란 감성적 능력이 발달한 우뇌형 인간으로서, 강력한 상상의 힘으로 미래의 가치를 현실의 성공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정보화 시대를 넘어 지금의 디자인 시대를 주도하며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세계적인 크리에이터들이 바로 이 이매지너에 속한다.” (프롤로그 中)

 

그는 책에 들어가기 전 한 문장으로 그의 디자인 키워드를 정리하여 보여주고 있다. “나의 디자인의 세 가지 키워드는 생활(lifestyle), 문화(culture), 공간(space)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으며, 그들 모두를 연결하는 고리는 사랑이다.” 이 세 가지 키워드는 최고의 이매지너가 되기 위한 필수요건일 것이다. 그는 이 세 가지 키워드와 그 중심이 되는 사람과 사랑에 대해 논한다. 그런데 잠깐. 사람과 사랑이라니. 그다지 평범할 것도 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라. 디자인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디자인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던가. 어떤 디자이너들은 자신이 디자인을 한다는 자만에 빠져 디자인 자체만을 아주 빼어나게 만들려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다. 그러한 디자인은 곧 한계에 봉착하고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

 

김영세의 이러한 디자인관은 카림 라시드와도 일맥상통한다. 카림 라시드가 4달러짜리 쓰레기통을 만들어 많은 대중에게 저렴하면서도 빼어난 디자인을 선물했듯, 김영세 또한 사람이 중심이 되는 생활 속의 디자인을 위해 홈플러스와 연계해 저가이면서도 디자인이 뛰어난 PB상품을 만들어 선물했다. 만약 최고의 디자인, 유명세에만 맹목적으로 매달렸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터이다. 아이리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매출억 80억에 불과한 중소기업의 제품이었지만, 그만의 철학이 있었기에 아이리버에 맞는, 아이리버의 소비자에게 필요한 디자인, 그것도 최고의 디자인이 탄생한 것이다.

 

아이리버의 일화를 읽어보면 그의 디자인 철학과 방식을 상세히 읽을 수 있다. 바비(Barbie)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미국의 장난감 회사 마텔(Mattel) 사를 방문했을 때이다. 회의를 마친 후 점심을 먹으며, 김영세는 마텔 사의 바비 브랜드를 접목하여 예쁜 MP3 플레이어를 만들면 딸 수진이가 참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노의 여성만을 위한 MP3 플레이어 시리즈 ‘바리 라인’은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다. 그가 디자이너들에게 사랑을 강조하는 부분은 바로 이러한 것이다. 제품을 사랑하고, 그것을 사용할 누군가를 위해 디자인 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상상력은 무한히 증가한다. 그는 전 세계 60억 인구를 사랑한다고까지 이야기하니 누가 말릴 수 있으랴.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든 제품들이기에 진심이 통한 소비자들에게는 그가 디자인한 제품이 더 애정이 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매지너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상상력이다. 창조하는 능력이다. 혹시 이매지너의 창의성을 고민하는 분이라면 김영세의 디자인 키워드 세 가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리고 그 중심에 놓여있는 사람과 사랑이 이야기하는 본질이 무엇인지 느껴보시길. 사람에 대한 애정을?면 무엇을 하든 훌륭한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다음 세상을 지배하기 위한 이매지너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

 

by 꽃다지, 2009년 10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