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고 많이 접하다보니 가끔은 책에 관한 이상한 상상을 하곤 한다. 예를 들면, 높이 쌓아놓은 책 더미가 무너져 나를 덮치거나 방이 책으로 가득 차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아래층으로 쑤~욱 꺼지는 상상들이다. 물론 즐거운 상상도 있다. 내가 멋진 소설책의 주인공이 되거나 책 속의 멋진 캐릭터와 만나는 상상은 책을 읽는 재미를 두 배로 늘려준다. 아마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상상을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상을 뛰어넘어 책을 좋아하는 한 남자가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하루아침에 책으로 변한 사건이 발생했다. 말을 하고 싶어도 입이 없으니 말을 하지 못한다. 다만 눈과 귀는 있어 보고 들을 수는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갑자기 책으로 변해버린다면 어떠한 생각을 하게 될까? 그렇게 좋아하던 책이 되었으니 마냥 행복할까? 주인공을 보니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알폰소 슈바이거르트의 소설 <책이 되어버린 남자>(비채, 2009년)는 어느 독서광이 책으로 변한 기구한 사연을 담고 있다. 주인공 비블리 씨는 어려서부터 책에 탐독하기 시작한 대단한 책벌레이다. 얼마나 지독한 책벌인가 하면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고 친구도 잘 만나지 않는다. 책을 통해 광활한 여행을 할 수 있고, 책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명언과 격언을 외우는데, 그동안 모은 명언들이 2천 장이 넘는다. 결혼하고서도 제 버릇은 바꾸질 못했다. 아내와 별거하고 혼자 사는 집에는 가구가 달랑 의자 여섯 개 뿐이다. 집 안이 온통 책들로 가득하며 심지어 복도까지 책으로 도배를 했다.

그런데 어찌 하다 책이 되었는가. 발단은 어느 날 들린 헌책방에서 시작된다. 비블리 씨는 한 권의 책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바로 <그 책>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생애 처음 이 책을 도둑질해온 그는 이내 책을 미워하게 되었고, <그 책>만을 남겨 둔 채 모두 헌책방에 넘겨 버린다. <그 책>을 가져온 뒤로 이상한 일은 계속 되었고, 몸의 이상을 느끼던 그는 어느 날 <그 책>이 되어 버렸다. 그 뒤로 그는 서적수집광, 도서관장, 출판업자, 편집자, 비평가 등을 만나며 그들을 향한 증오심을 불태우고 복수를 감행한다.

비블리 씨는 왜 책이 되었을까? 그리고 그를 통해 돌아본 책의 세계는 어떠한가? 우리는 ‘책이 되어버린 남자’의 눈을 통해 책을 둘러싼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에는 책에 관한 단상과 명언, 다양한 이야기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 책에 관한 잡다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책을 좋아하되 빠지지 말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책에 지나치게 빠지기보다는 즐길 줄 아는 여유로움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비블리 씨처럼 책이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by 꽃다지, 2009년 11월 19일

 

아마도 이번처럼 책을 읽으며 긴장한 적은 없었을 게다. 오죽하면 책을 읽던 날, 점심 식사의 화젯거리로 운을 띄웠겠는가. 집에는 바로 우유를 줄이자고 이야기했다. 우유가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달리 안 좋은 점이 많다고 하자 동료들 역시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가족들이 집에서 우유를 하루에 1리터씩 마신다고 말씀하시던 이사님은 책을 다 읽거든 한번 읽어보게 달라고까지 하셨다.

당신이 몰랐던 우유에 관한 거짓말과 그리고 선전이라는 부제를 단 <우유의 역습>(알마, 2009년)은 우유에 관한 진실 보고서이다. 그동안 우유가 좋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우유를 즐기고 있는데 이 무슨 뚱딴지같은 이야기인가.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심상치가 않다. 아직 100% 확실하다고까지는 이야기하지 못해도 저자인 티에리 수카르가 지적하는 부분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제대로 규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저널리스트이자 과학 전문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티에리 수카르가 15년간 끈질기게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는 낙농업자들과 그 충실한 수하들로부터 거센 반박을 받으면서도 줄기차게 우유에 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왔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혼자서만 ‘아니오’라고 외치고 있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그의 주장은 객관적이고 신빙성이 있는가. 적어도 그가 제시하고 있는 통계나 조사자료에 의하면 충분히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가 밝히고 있는 우유에 관한 가장 커다란 거짓말은 칼슘을 섭취하기 위해서는 우유를 많이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칼슘은 그리 많이 섭취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평상시 먹는 음식만으로도 칼슘은 충분히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칼슘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믿게 되었을까. 이유는 칼슘 권장량이 조작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각종 기구들에서 발표하고 있는 칼슘 기준치는 필요 이상으로 높게 잡혀 있다. 왜? 우유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이다. 두 번째 커다란 거짓말은 골다공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유제품을 많이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유제품은 골다공증을 예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골다공증을 조장하고 있다. 가장 놀라운 자료는 우유를 많이 먹는 나라(지역)가 골다공증이 더 많다는 통계수치다. 왜 이런 결과가 도출되는 것일까. 저자의 설명이 흥미롭다. 우유는 뼈의 기능을 더 활성화시킨다. 그래서 아이들이 우유를 먹으면 더 빠르게 자라는 것은 맞다. 그러나 뼈의 재생 능력을 일찍 단축시켜 뼈의 기능을 더 빠르게 정지시킨다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들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우유의 단백질이 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한다. 특히 남성의 경우 우유를 오랫동안 마셔온 사람은 전립선암에 걸릴 확률이 2~3배 더 높았다. 그리고 우유는 소아질환인 제1형 당뇨병의 원인으로도 의심받고 있다. 우유 소비량과 국가별 제1형 당뇨병 발병률 통계에서도 서로 비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지금껏 이러한 연구결과는 모두 묵살됐다. 그들에게 유리한 정보나 통계들만 인용이 되었다. 심지어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심을 받기까지 한다. 유제품이 다이어트를 돕는다는 실험에서 회사측의 실험은 확실히 성공적이었다. 실험 참가자들 대부분이 체중을 감량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이 실험은 회사의 요구르트 판매에 이용되었다. 요구르트 광고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통계수치로 이용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이후 어느 누구도 똑같은 조건의 실험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요구르트를 먹든 먹지 않든 별 차이가 없었다.

저자는 우유를 아예 먹지 말라고까지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포유동물도 젖을 뗀 후에는 먹지 않는 우유를, 게다가 각종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이는 우유를 인간이 굳이 먹을 필요는 없음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거론하고 있는 대표사례를 한번 천천히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장수마을인 오키나와 사람들은 우유를 거의 먹지 않음에도 아주 오래도록 건강한 삶을 누린다고 한다. 단지 장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죽기 전까지 건강한 삶을 유지한다. 반면 우유를 많이 먹는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은 죽기 전 각종 질병에 시달린다.

이 책을 읽으며 씁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우리는 무얼 먹어야 할까? 그리고 무엇을 믿어야 할까.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큼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인스턴트식품을 멀리하고 동물성 영양소보다는 식물성을 영양소를 더 많이 섭취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와 가족의 건강을 위해 먹는 것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by 꽃다지, 2009년 11월 18일

 

삶의 쓸쓸한 단상들

 

오랜만에 단편 소설을 읽었다. 2009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들이다. 10편의 단편이 최종 후보로 올랐고, 영예의 수상은 박민규가 차지했다. 「근처」라는 작품이다.

 

<2009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중앙북스, 2009년).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처음이다. 그동안 수상작품집은 잘 읽어오지 않았던 탓에 낯설게 느껴졌다. 내게는 생소한 작가들의 이름도 보였다. 너무 무식한 거 아니냐라고 잠시 자책할 뻔 했지만, 마음을 다독였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이름을 잘 기억해 두자고 애써 위안을 삼았다.

 

작품을 읽기 전 가장 궁금했던 사실은 황순원 문학상이 선정하는 단편소설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냥 궁금했다. 심사위원의 변을 보니 고심했음이 엿보였다. 단편들을 다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훑어 봤다. ‘뚜렷한 편향성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라는 문제제기가 역시 정당했음을 생각했다. 심사위원들이 고뇌했던 것처럼 바람직한 현상만은 분명 아닌 듯하다.

 

내가 느낀 그 편향성의 방향은 ‘삶의 쓸쓸함’이다. 뒤를 돌아볼 틈도 없이 달려온 앞길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 그리고 소중한 추억을 짓밟는 속된 세상(박민규의 근처), 속된 삶의 지향성들이 역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가는 세계(강영숙의 그린란드),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가진 자들과 자존심을 짓밟히지 않기 위해 가지지 못한 자가 선택한 불합리한 해결의 방식(김경욱의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헤어날 수없는 도시를 탈출하고픈 슬픈 노동자(정오의 산책), 쓸쓸한 노년의 죽음과 어린 시절이 추억(김숨의 간과 쓸개), 보기 좋게 이용당한 사랑의 추억(김애란의 너의 여름은 어떠니),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문제(전성태의 이미테이션)….

 

이 ‘삶의 쓸쓸함’은 무엇으로부터 발생하는가. 심사위원들이 문제제기한 ‘오늘날 한국 소설의 객관적 현실의 반영인 것인가’라는 물음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비인간적인 인간의 모습이 회자되는 이 사회에서 오히려 소설은 그나마 낫다.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by 꽃다지, 2009년 11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