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한 학기 남겨 놓고 간 군대에서 IMF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때였다. 제대하면 학교에 한 학기만 더 다니고 취업을 해야 했던 나는 기업들이 쓰러지고, 취업문이 닫히는 상황들에 바싹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확히 그때부터였다.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해고가 정당화되었고, 비정규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나는 규모가 작은 기획사에 취직할 수 있었지만, 많은 동기들과 후배들이 어학연수를 떠나거나 대학원 진학을 다음 목표로 삼기 시작했다.

 

불과 10년. 이제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는 것 같다. ‘88만원세대’란 말이 지금의 20세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듯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비정규직의 삶을 운명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하기에 취업문을 뚫기 위한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다. 스펙을 쌓기 위한 취업준비는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곧바로 시작된다. 도서관은 제 구실을 잃고 영어책과 고시 문제집에 제 자리를 내주었다.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은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지 오래며 교수들은 졸업 시즌만 되면 제자를 하나라도 더 취업시키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돌린다.

 

이러한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이 처참한 시스템을 바꿀 획기적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정말 우석훈의 지적대로 20대들이 영어책을 집어 던지고 짱돌이라도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에 대해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이 펜을 들었다. 그는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다산초당, 2009년)에서 20대가 자기 생존을 위해 ‘컨셉력’을 기를 것을 주장하고 있다. 평소에도 그의 글과 주장들에 공감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바들은 특히나 마음에 와 닿았다. 지금의 20대들을 포함하여 젊은 세대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들이다. 가끔 직원 채용을 위해 면접을 보면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만점에 가까운 학점과 토익 점수…, 화려한 스펙에도 불구하고 정작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서 특히 그러한 마음을 느끼게 된다. 면접을 보면 항상 하는 질문이 ‘꿈이 뭐냐?’는 것인데, 자신의 꿈을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럴 때면 이 사람이 우리 회사에 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한기호 소장이 말하는 컨셉력을 가진 꿈 많은 인재들이 절실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컨셉력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 ‘편집을 잘하는 힘’이다. 그는 편집을 소재의 수집, 소재의 조합, 새로운 가치의 창조의 세 단계로 구분한다. 요리의 경우, 이용할 수 있는 식재료를 음미하고 선택하고 조달하는(소재의 수집), 그 조리 방법과 순서를 생각해서(소재의 조합), 먹는 사람을 만족시키는 요리, 식단으로 제공하는(가치의 창조) 것이다. 얼마나 적절한 비유이고, 필요한 지적인가. 지식의 많고 적음보다 정보의 검색이 더 중요해져버린 세상에 가장 필요한 키워드가 아닐까 생각한다. 똑같은 스펙과 점수로 경쟁하지 말고, 널린 지식과 정보를 내 것으로 가공해 나만의 아이디어와 경쟁력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이는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는 무기가 될 뿐만 아니라 쓸데없이 낭비되는 인생을 재미있고 살 맛 나는 인생으로 바꿀 중요한 기회이기도 하다. 저자가 예로 들고 있는 마쓰오카 세이고의 <지식의 편집>은 나 또한 감명 깊게 읽었고, 따르고 싶은 삶의 비결이기도 하다. 적어도 우리네 삶은 놀이하듯 재미있고 가치 있는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많은 책을 읽어 왔고, 치열하게 사는 그답게 20대를 위한 컨셉력은 수많은 책을 통한 분석과 인용, 세상을 보는 넓은 통찰력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저자 본인의 견해로는 강상중의 <고민하는 힘>으로부터 변화의 조짐을 봤다는 자기계발서의 변화는 이 책으로 인해 더욱 공고해질 것 같다. 가상의 사례나 몇 개 갖다 붙이고 ‘~하라’고 이야기하는 수많은 자기계별서들이 한 번 반짝하고 사라지는 모습들은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기계발서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좀 더 내용이 충실한 자기계발서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기호 소장의 <20대, 컨셉력에 목숨을 걸어라>는 자기계발서라기보다는 20대를 위한 삶의 지침서와도 같다.

 

어려운 시대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한 곳만을 바라보고 달려가서는 안 될 것이다. 자포자기는 더더욱 안 될 말이다. 찾아보면 할 일도 참 많고, 재미있는 일도 많다. 나도 방황을 많이 했지만, 이제는 더 많은 꿈을 꿀 생각이다. 내 아이들에게도 남들과 똑같은 삶을 좇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돕고 싶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이 많은 20대들이 이 책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컨셉력을 키워 인생을 좀 더 살맛나게 살았으면 좋겠다.

 

by 꽃다지, 2009년 11월 23일

 

직장 다니기 힘드시죠?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해도 힘들 텐데 꾸역꾸역 들어간 직장에서 업무하랴, 주변 사람들 눈치 보랴, 고객 접대하랴,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한 일주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발리라도 가서 선탠이나 하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그랬다간 책상과 컴퓨터가 소문 없이 사라져버릴 겁니다. 그래서 직장인들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몸이 아프거나 사적인 일이 있거나 출근 도장을 찍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우나맨 또한 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꾸역꾸역 살아가는 대한민국 직장인 중 한 명입니다. 맨날 사우나만 다니는 사람이냐고요? 그것 참 행복한 소리입니다. 마음으로만 늘 그렇다고 하네요. 사우나에서 푹 쉬고 싶은 마음은 1년 365일 떠나질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늘 바쁘게 전투중이죠. 지금도 어딘가에서 출동대기를 하고 있을 겁니다.

 

“Sauna Man은 싸운다(Fight)와 목욕의 중의성을 띄고 있다. ‘몸은 항상 적과 싸우지만, 마음은 항상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채 쉬고 싶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8쪽)

 

<사우나맨>(세미콜론, 2009년)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사우나맨의 치열한 생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슈퍼맨처럼 강력한 에너지 하나 갖지 못한 우리의 사우나맨은 날마다 직장에서 치열한 생존의 몸부림을 펼치며 활약하는 우리 시대 직장인들의 자화상입니다. 한때 무대리가 암약을 펼쳤었죠. 무대리는 어설픈 말과 갖은 실수로 우리들에게 웃음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사우나맨은 애써 웃음을 주려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만의 독백을 즐깁니다.뭔가 진지한 듯 보이는데 꼬이는 일은 역시나 많네요.

 

그리고 이러한 구도에서는 악당 이야기가 빠질 수 없겠죠. 우리의 사우나맨이 상대할 악당은 알렉스입니다.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세상과 싸우기 위해 독기를 품은 인물입니다. 악당이긴 한데, 악당이 되기로 결심한 과정을 보니 그리 유쾌하지는 않네요. 작은 안타까움이 마음속에서 일렁거렸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사우나맨이 살아야 직장인에게 평화가 오는 것을요. 사우나맨을 응원할 수밖에요. 일하다 지칠 때 가볍게 읽으며 사우나맨의 어설픈 활약상을 지켜보세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쉬는 여유로운 상상 한번 해보면서 말이죠.

 

by 꽃다지, 2009년 11월 23일

그래 어느 날 갑자기 불쑥 튀어 오른 건 분명 아니었다. 제대로 한 번 튀어 오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흘러갔는가. 엄밀히 말하면 튀어 오르기 위해 산 것도 아니다. 단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노력하다보면 세상이 인정하는 날이 올 것이라 믿었을 뿐이다. 이런 마음으로 노래를 만들어 불렀고, 그들의 음악을 기쁜 마음으로 들어줄 이들을 찾아 다녔다. 이제 그 결실이 조금 드러났다. 장기하와 얼굴들이란 존재를 세상에 알리며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붕가붕가레코드의 진정한 실험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계속하기 위해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처음부터 출발하고자 한다.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푸른숲, 2009년)을 읽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이란 그룹을 알게 되었고, 노래가 좋아 오랜만에 음반까지 구입해 듣고 있던 중이었다. 이들이 음반을 낸 곳이 붕가붕가레코드였는데, ‘붕가붕가’란 명칭이 독특했고 도대체 뭐하는 집단인지 궁금했다. 아니나 다를까 장기하와 얼굴들이란 별난 캐릭터 못지않게 붕가붕가레코드 또한 별난 집단이었다. 별다른 수익도 없이 좋아하는 일만을 가지고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 하기가 얼마나 힘든가. 젊기에 가능했다고? 천만에 만만에 말씀. 머리 좋고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 마음먹은들 무엇을 못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장엘 다니고 결혼을 하고 그렇게 살면서 꿈을 잊어가는 거다. 그게 싫어 그들은 꿈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젊기 때문이 아니라 꿈을 꾸며 살고 싶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거다.

 

‘음악’이란 공통의 관심사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뭉치기도 힘들었을 사람들이다. 지금은 규모가 조금 커져버린 붕가붕가 식구들의 캐릭터 또한 유별나다. 대학 시절부터 함께 해온 이들에서부터 나중에 합류한 이들까지 모두 끼를 주체하지 못하고 산다. 붕가붕가레코드의 혓바닥으로 불리는 곰사장은 음치라는 사실을 깨닫고 회사를 만들었다. 사람을 꼬드기는 재주가 일품이다. 한글을 일일이 만져 독특한 글자를 만들어내는 수석 디자이너 김 기조의 실험정신은 대단하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반이나 책의 표지를 보면 그만의 독특한 세계를 느낄 수 있다. 이들은 녹음도 직접 한다. 장비도 제대로 없었던 초창기 시절부터 나잠 수가 녹음을 도맡았다. 명진. 매니지먼트를 담당한다. 놀랄만한 건망증에도 불구하고 붕가붕가레코드를 움직이고 있다. 자동차를 잃어버린 경험까지 있다고 하니 두 말해 무엇 하나.

 

붕가붕가레코드의 운영방식을 살펴보면 왜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원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최근 들어 상근하는 사람이 생겼지만 그 이전에는 사무실도 없이 이곳저곳을 배회하며 모여서 작업했다. 가수를 발굴하고, 공연이 잡히면 빠듯한 예산을 몸으로 때워 충당했다. 녹음은 물론 음반까지 직접 만들었는데, ‘수공업 소형 음반’제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성공으로 한껏 들떠 있을 법하지만, 그들은 이내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 책에는 자세히 언급되지 않지만 고민과 이견 갈등도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모았다. 제2, 제3의 장기하와 얼굴들을 위한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위해 지금껏 해왔던 대로 좋은 음악을 발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붕가붕가레코드의 진정한 실험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꾸는 꿈들이 노력 이상의 빛을 발했으면 좋겠다.

 

by 꽃다지, 2009년 11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