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을 소설처럼 편하게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책을 많이 읽으면서도 소설이나 에세이 분야에 치중해 읽는 독자라면 더더욱 그러한 생각이 간절할 것이다. 인문학은 어렵다는 편견이나 인문학이 애써 독자와 거리를 둔-지나치게 전문적이고 딱딱했던- 까닭으로 인해 인문학은 점점 고립되고 있었다. 인문학이 위기라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언론을 들썩였다. 그로 인해 인문학에 대한 성찰과 다양한 대안이 모색되기 시작했다. 대중에게 다가가기 쉬운 언어로 재해석되었고,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영상으로 기획되었다.

 

<인문학 콘서트>(이숲, 2010년)는 한국정책방송(KTV)에서 방영된 ‘인문학 열전’의 내용을 간추려 정리한 책이다. 나도 일전에 방송에서 우연히 본 적이 있는데 편안하게 특정 주제들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콘서트가 무언가. 인기 가수의 콘서트라면 가수의 노래를 듣고, 함께 교감을 나누며 즐길 수 있는 자리가 아닌가. ‘인문학 열전’이 콘서트에 비유될 수 있다면, 또 그렇게 진행되어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교감을 이루어낼 수 있다면 대단한 성공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이자 각종 매체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기도 한 김갑수가 사회를 맡아 예리하고 적확한 질문으로 콘서트를 이끌어왔다. 등장하는 인문학 가수들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내로라하는 인문학자들이다. 김갑수의 말에 의하면, 지금까지 텔레비전에서 인문교양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말 잘하는 사람들 위주로 출연자들이 구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나오는 사람들만 나왔던 것. 그래서 이번 콘서트에서는 그런 부담을 없애 말은 잘 못해도 인문학에 조예가 깊은 분들을 많이 모셨다. 김경동, 김기현, 최재천, 김광웅, 문용린, 정진홍, 황경식, 고미숙, 김효은, 장회익, 차윤정, 도정일, 박정자, 김영한 등이 이 책에 소개된 주인공들이다.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인문학에 대한 벽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이다. 책 혹은 프로그램을 직접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야기하듯 편하게 인문학을 논하기 때문에 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인문학과 독자의 거리 좁히기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한다. 두 번째 장점은 인문학의 세부 분야를 거시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점이다. 출연자들은 철학자, 신학자, 물리학자, 생태학자, 사학자, 문학가, 교육가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다. 이들은 특정 분야에 대해 깊이 있게 파고들기보다는 그 분야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들의 연구성과와 주요 쟁점들, 저자의 책 등을 소개받다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친숙해졌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얼마 전 신문에서 ‘희망의 인문학’ 과정을 수강한 노숙자가 다시 새 삶을 찾았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제는 CEO 인문학 과정도 생겨났고, 인문학으로 광고한다는 한 광고기획자의 책도 출간되었다. 이제야 인문학이 제 자리를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문학이 무언가. 사람 인자가 들어간 우리 삶을 이해하는 학문이 아닌가. 인문학이 우리 삶에 더 가까이 들어와 함께 하길 기대한다.

 

by 꽃다지, 2010년 1월 31일

 

최근 발간되는 여행기들을 보면 입에 군침이 돈다. 맛깔스런 음식을 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떠나고 싶은 마음을 동(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에세이에서부터 사진 위주의 화보집, 상세한 여행 팁을 단 여행 정보지,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화려하게 무장한 개성적인 안내서까지 그 내용과 형식도 다양하다. 전작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의 성공에 이어 더 알차게 꾸며진 <달콤함이 번지는 곳, 벨기에>(가치창조, 2010년)는 달콤한 초콜릿 향기를 물씬 풍기며 독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유럽만 생각하면 후회가 밀려드는 일이 하나 있다. 2004년 유럽여행을 거창하게 계획했다가 그만 아쉽게 포기한 일이다. 4년 정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나는 휴가를 이용해 유럽을 다녀올 작정이었다. 인터넷을 여기저기 뒤지며 정보를 수집하고 유럽 여행자들의 조언을 들어 가이드 북과 유럽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책을 여러 권 구입해 읽었다. 여행 루트를 정하고 날짜만 정하는 일만 남았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입사 제의가 들어왔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나름 업계 1위를 질주하고 있는 기업이었다. 유럽 여행을 다녀온 후로 입사시기를 늦추고 싶었는데 여의치 않았고, 결국 여행 대신 직장을 선택해야 했다.

 

당시 계획했던 주요 루트는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서유럽이었다. 그 중 벨기에도 포함되어 있었다. 만약 여행이 계획대로 실행되었더라면 이 책을 읽으며 여행의 추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랑 플라스에서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고, 성 유베흐 갤러리를 쇼핑하다 노이하우스에 들러 최고급 초콜릿의 맛을 음미한다. 직접 보면 별거 아닐 오줌싸개 소년을 한번 쑥 훑어보고 벨기에 와플의 달콤함을 즐기며 출출한 배를 채운다. 사진으로만 보고 있자니 자꾸 입맛이 다셔진다. 속은 자꾸만 씁쓸해진다. 벨기에가 이렇게 달콤한 나라였던가.

 

우리의 눈에는 대게 비슷비슷하게 느껴지는 유럽의 풍광들은 어느 곳에서 보아도 참 멋지다. 고딕양식과 바로크, 르네상스 양식의 중세 건축물로 둘러싸인 그랑 플라스 광장에 들어서면 그 황홀함에 발길을 차마 떼지 못할 것만 같다. 여전히 시청사나 박물관 같은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흥미롭다. 우리나라처럼 오래된 건물이 많지 않고, 건축에 대한 철학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 풍토와 대비된다. 하긴 짓는 데에만 200년, 400년이 소요된 건물들이 있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노트르담 대성당을 지은 그 예술적 열정이 루벤스의 걸작을 또한 탄생시켰다. 다비드, 마그리트와 같은 훌륭한 예술가들을 배출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러한 문화적 풍토가 있었기 때문이다.

 

보여지는 자체만으로도 멋스러움을 드러내는 다양한 사진들과 수채화로 표현된 멋진 풍광들이 벨기에의 멋을 기대 이상으로 높여 주었다. 초콜릿과 와플의 나라고,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산다는 것도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다. 언제 유럽을 한번 가볼 수 있을지 당분간은 기약하기 힘들지만, 유럽을 가게 된다면 벨기에도 꼭 한번 들러보고 싶다. 가거든 꼭 노이하우스에 들러 초콜릿을 먹어봐야지.

 

by 꽃다지, 2010년 1월 25일

 

 

정확히 이맘때였으리라. 1636년 병자년의 겨울, 임금은 남한산성으로 거처를 옮겼고,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병사들은 신흥 대군과 대적을 해야 했다. 명분과 실리의 싸움 속에서 명분을 지키고자 했으나 명분은 현실 앞에 무기력하기만 했다. 임금은 끝내 항복해야 했고, 굴욕적인 수모를 피할 수 없었다.

 

<남한산성의 눈물>(알마, 2010년)은 병자호란의 소중한 교훈을 담은 기록물이다. 병자호란 당시 임금과 함께 남한산성에 들어갔던 나만갑이 쓴, 57일간의 항전일지 <병자록>을 유타루가 다시 옮겼다. 어린이도 읽을 수 있을 만큼 쉽게 옮겨 적어 이해하기 쉽지만 원전에 대한 아쉬움이 때때로 느껴지기도 한다.

 

병자호란에 대한 내용은 익히 알고 있기에 새로울 것은 없다. 다만 당시의 급박한 상황들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왜 피란을 늦게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주화파와 척화파의 갈등은 어떠했는지, 남한산성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이 전하는 남한산성의 기록은 역사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가공이 가능한 소설이나 소문이 아닌 사실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특히 주화파와 척화파의 갈등은 전쟁의 원인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기에 대내 역학 구도까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대신들은 두 파로 나뉘어 전쟁을 끝내려 했지만, 사실 전쟁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항복! 남한산성에서의 고된 시간은 그 어쩔 수 없는 고통을 확인해야 하는 인내의 시간이었다. 김상헌의 자살 시도는 청과 싸워야 한다는 명분의 연장이다. 죽음으로써 싸워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싸움의 포기는 오히려 더 치욕적인 일이었다.

 

남한산성의 대내외적 상황은 또 어떠했는가. 기록으로 느껴지는 바로는 부끄러울 정도로 허약했고, 비겁했고, 무기력했다. 남한산성에 갇힌 임금을 적극적으로 돕고자 하는 이 없었고, 허영과 자만에 빠진 김경징은 강화도를 허무하게 내주었다. 남한산성 내에서도 잘못된 판단으로 많은 병사들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그런 상황에서 실적을 보고한다고 죽은 우리 병사의 머리를 취해온 장수도 있었으니….

 

<남한산성의 눈물>은 병자호란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기록물이다. 역사적 진실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고 역사의 과정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by 꽃다지, 2010년 1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