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민음사, 2010년)을 읽었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책은 <모든 것이 밝혀졌다>에 이어 두 번째다.

소설은 911 테러로 인해 아버지를 잃은 아홉 살 소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아홉 살인 오스카의 방황은 드레스덴 폭격에서 겨우 살아남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과거와 얽혀 전개된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과 고독, 소통의 부재 속에서 고통받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희망을 찾아나간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파격적인 형식으로 소설을 쓴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소설은 정말 다양한 실험으로 독자를 흥분시킨다. 내용은 시간과 화자를 넘나들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종종 놓치곤 했다. 파격적인 형식도 눈에 띈다. 사진을 많이 넣어 구성했고, 띄어쓰기와 자간/행간의 줄임, 교정부호 등을 넣어 변화를 주고자 했다. 사진은 마지막 부분의 연속 컷이 기억에 남는다. 빌딩에서 떨어지는 사람을 담은 사진인데 작가는 사진을 거꾸로 배치했다. 그래서 뒤로 넘기다 보면 사람이 빌딩 위로 올라간다. 이는 오스카의 심정과도 같은 것이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그날 밤, 그 무대 위, 해골 밑에서, 우주의 모든 것과 믿을 수 없을 만큼 가까운 동시에 엄청나게 혼자인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난생처음으로, 살기 위해 요구되는 그 많은 일을 다 해야 할 만큼 삶이 가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정확히 무엇 때문에 삶이 그만한 가치를 갖는다는 것일까? 영원히 죽은 상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꿈조차 꾸지 않는 그런 상태가 뭐 그리 끔찍하다는 걸까? 느끼고 꿈꾸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할까?" (199쪽)

by 꽃다지, 2010.07.21 

유럽 미술 산책 두 번째 책은 다카시나 슈지의 <명화를 보는 눈>(눌와, 2002년)이다. 첫 번째로 읽은 이주헌의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학고재, 1995년)이 유럽의 대표 미술관을 나라별로 순례하며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라면, 이 책은 르네상스에서부터 순수추상미술까지의 흐름을 훑으며 대표 작가와 작품을 소개한다.

어떤 이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로 문화예술을 감상할 것을 이야기했는데 이런 책을 읽다보면 정말 그렇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아무런 사전 지식없이 단지 작품에서 풍기는 느낌을 감상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작품이 그려진 배경과 상황, 작품 속 인물과 사물에 대한 상징들, 구도와 기법에 대해 안다면 훨씬 더 풍부하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다카시나 슈지이다. 사실 미술책을 보기 전에는 '아! 이런 그림이 있구나!' 하는 정도로만 감상을 하고 휙휙 넘기기 일쑤였다. 오늘날과 너무 먼 그림들에 얼마나 관심을 갖겠는가. 그러나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그 오묘한 사실들에 글과 그림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림 한 번 보고, 글 한 번 읽고... 이런 식이다. 그림이 있는 페이지에서 글이 다음 장으로 넘어 가면 정말 귀찮아진다. 이 책은 적어도 나를 너무나 귀찮게 했다. 꼭 지금까지 정글 속에서 살다가 문명 세계로 나온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책을 열면 맨 처음 등장하는 그림이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다. 중세풍의 남자와 여자가 손을 맞대고 있다. 저자는 그림 속에 들어 있는 사물들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해 나간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사물들은 모두 작가의 철저한 의도에 따라 그려진 것이다. 벽에 새겨진 글씨 하나, 창가에 놓여 있는 과일 하나, 침대, 거울, 촛대 하나에까지 의미가 담겨 있다. 사물들에 대한 의미가 모아지면 이제 그림의 주제에 다가간다. 특히 놀란 것 중 하나는 벽에 걸린 거울이다. 처음 그림을 보았을 때 거울이 있는줄도 몰랐는데 저자는 거울 안의 풍경 하나만 가지고도 한참을 설명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거울 안에는 방의 반대편 풍경이 담겨 있다.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한참을 서서 본다는 말이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간다. 미술관에 몇 번 갔어도 휙휙 지나가기에 바빴지 제자리에 서서 그림을 감상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앞으로는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 조금 더 주의깊게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에서 르네상스에서 사실주의까지를 한 파트로 하고, 인상파에서 순수추상까지를 한 파트로 하여 대표 작가와 작품을 소개한다. 덕분에 르네상스에서 순수추상까지의 미술 작품들을 감상하여 변모의 과정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나 인상 깊었던 건 인상파의 그림들이다. 빛의 사실감을 중요시하던 시기를 지나 밖으로 뛰어나간 인상파들의 파격과 새로운 흐름들이 이전 시대와 대비가 되어 쉽게 이해가 되었다. 역시 그림들을 감상하며 설명을 들으니 한결 나은 듯하다. 유럽 미술은 너무도 방대하다. 작가와 작품을 헤아리기에 끝이 없다. 적어도 르네상스에서부터 순수추상까지를 개괄하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by 꽃다지, 2010.07.21

 

평등사회를 위한 진보 경제학자의 진단과 대안

 

과거에는 미국이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고 일한 만큼 대가를 얻을 수 있는 나라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잘나가는 기업의 CEO는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지만, 사회보장의 혜택을 받으며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많다. 심지어 우리나라도 보장되어 있는 전국민의료보험의 혜택도 누리지 못한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라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미국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을 것이다.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이 도대체 어떠한 연유로 전국민의료보험조차 실시하지 않는 것일까? 그렇게 잘 살면서 왜 중산층이 몰락하고 빈부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것을 방관만 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그 원인을 경제학이 아닌 정치 사회로부터 찾는다. 그는 <미래를 말하다>(현대경제연구원, 2008년)에서 미국의 정치환경을 돌아봄으로써 궁극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그 대안을 찾고자 한다.

 

역사로 살펴본 정치·경제의 상관관계

폴 크루그먼은 경제학자이지만 정치적 환경이 경제적 불평등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경제논리로도 해결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분석은 20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빈부의 격차가 심했던 도금시대로부터 1930년 대공황 이후 실시된 뉴딜정책의 영향, 그리고 경제 호황과 소득 불균형이 가장 적었던 1950~70년대, 다시 빈부의 격차가 심화된 현재까지를 아우르며 정치적 환경과 경제의 상관관계를 비교 분석한다.

그의 문제제기는 아주 적확했다. 경제는 정치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뉴딜정책이 실시된 이후 경제는 다시 안정을 되찾았고, 경제는 호황을 맞았다. 이는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이 되었던 시기다.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은 크게 대립하지 않았고 노조의 입김이 강했으며 빈부의 격차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립각은 점점 심해지고 보수주의가 강하게 퍼져나갔다. 역사에 가정은 없겠지만 만약 뉴딜정책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1950~70년대의 경제상황은 크게 달랐을 것이다. 양 당이 그나마 협력할 수 있었던 것은 뉴딜정책의 성과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보수주의운동의 강화와 집권

그러나 보수주의운동이 강하게 전개되면서 상황은 점점 바뀌기 시작한다. 보수주의자들은 부자를 위한 감세를 노골적으로 전개하고 작은 정부를 추구했으며, 사회보장제도를 대폭 축소하거나 없애려했다. 보수주의운동의 결과 보수주의자들은 점점 하나로 결집되기 시작했다. 정치계를 비롯하여 기업, 언론, 연구소 등이 연합하여 서로 지원하며 보수주의운동을 더욱 강화해 나갔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보수주의운동이 강해지는 데에만 있지 않았다. 부자들은 많지 않기 때문에 부자들의 세금을 감면하는 정책을 펼친다면 선거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시민이 공화당을 뽑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결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보수주의자들은 선거에서 승리했고, 오랜 기간 미국을 지배해 오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일까? 원인을 찾아야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폴 크루그먼은 가장 큰 이유로 인종문제를 거론한다. 보수주의자들이 인종문제를 부추겨 표를 가져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갈등 유발, 노조에 대한 탄압, 이념갈등, 국가안보에 대한 공포감 조성, 투표 방해 등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보수주의자들이 오랜 기간 집권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진보 진영이 추구해야 할 길

지금까지의 분석을 통해 폴 크루그먼은 “미국이 평등한 기회가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서방국가에 비해 기회 자체도 평등하지 않았다.”(314쪽)며 미국사회의 본질을 가차 없이 비판한다. 그리고 현 상태에서 미국의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해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뉴딜정책을 다시 복구하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다른 선진국 시민들은 모두 이미 가지고 있는 제도이자 미국의 뉴딜정책을 완성시킬 수 있는 놀랄 만한 대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전국민에게 의료보험을 보장하는 것이다.”(270쪽)

또한 진보 진영에 속하는 민주당이 막연히 과거의 상태로 돌아가고자 할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며 주도권을 잡아나갈 것을 촉구한다.

“진보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수주의자가 되는 것으로, 중산층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주된 목표다. 그러나 진보주의 운동가가 된다는 것은 분명 거기서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이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진보주의자들의 전통적인 목표를 달성하려면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 (339쪽)

 

우리에게도 유익한 폴 크루그먼의 교훈

폴 크루그먼의 미국 사회 진단은 여러 가지 의미를 띤다. 이는 미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고, 투표권을 지닌 시민들이 문제의 본질을 올바로 깨닫고 권리를 당당히 행사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목표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 보수집단인 공화당이 각성할 기회를 제공한다. 역으로 민주당에게는 진보운동은 어떠해야 하는지 방향성을 제시한다.

이는 우리에게도 유익한 교훈이 된다. 국내 보수주의 진영 역시 미국의 보수주의를 좇는 형국이다. 성장위주의 정책과 미국식 모델의 답습으로 양극화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그런데다 미국처럼 정부를 축소하고,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부자들의 감세를 추진하며, 의료보험을 민영화하고자 한다. 미국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갈등과 부작용이 커지는 정책 추진은 장기적으로 국내 경제를 말살시키고 국민의 삶의 질을 형편없이 떨어뜨릴 수 있다. 성장 제일주의에서 벗어나 성장과 분배의 적절한 지점을 잘 찾아야 한다. 그럴 때 경제와 삶의 질이 함께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by 꽃다지, 2010.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