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이야기를 읽다보니 ‘과연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은 누구인가?’란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삶이 팍팍해질수록 영웅은 더욱 절실해진다. 그러나 영웅은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매스컴을 많이 타고 인기가 높다고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영웅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을 때 더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슈스케의 허각이 새삼 부각된 것도 딱히 내세울 것이 없지만 노래 실력만으로 정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현실 속에서 영웅을 찾아보면 좋겠지만, 고전 속의 영웅을 살펴보는 것이 더 많은 도움이 된다. 고전 속 영웅의 모험담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여러 차례 검증이 되었고, 재미가 있다. 생각 같아서는 <플루타르크 영웅전>이라도 들춰보고 싶은 생각이다. 그러나 마음만큼 쉽지는 않은 일. 방대한 분량에 도전했다가 헤매기 십상일 것 같다. 다행히도 우리 정서에 맞게 플루타르크의 영웅들을 소개한 책이 있으니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열전>(민음사, 2011년)이다. 두 권 속에 많은 영웅들을 담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리스 로마의 영웅들이 흥미진진하게 소개된다. 제일 큰 아쉬움이라면 두 권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며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그 양과 계통이 너무 방대하다는 사실이다. 얽히고설킨 부자관계와 다양한 이설(異說)들이 이야기의 흐름을 자꾸 방해한다. 진작부터 그리스 로마 이야기를 쉽게 풀어 독자들에게 이해시키고자 했던 이윤기 작가 또한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리라. 이 책의 기획 또한 오래되었다. 작가가 중앙 일간지에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연재한 후 곧바로 출간될 예정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책은 10년 이상작가의 컴퓨터 파일로만 존재했다. 다른 구상이 있었던 것일까. 결국 책은 작고 후에나 빛을 보게 되었다.

어떠한 의도였든 간에 이윤기의 손과 발로 쓰인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열전>은 쏠쏠한 재미를 준다. 작가 특유의 입담이 읽는 이를 편하게 한다. 영웅의 행적이 간결이 정리될뿐더러 곁들여지는 시대적 배경과 관계, 상황들이 이해를 돕는다. 독자들에게, 혹은 자신에게 툭툭 던지는 물음들은 단지 읽는 것으로만 끝날 일은 아님을 느끼게 해준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영웅들의 이야기 속에서 무얼 느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강한 신념과 의지’에 한 표를 주고 싶다. 왕으로 태어났든, 거지 철학자로 태어났든 그들은 자신만의 강한 주관을 지니고 있다. 그로인해 생기는 에피소드들은 때론 매우 극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다면 믿겠는가? 그동안 몰랐던 놀라운 면모 또한 새삼 알게 될 터인즉, 그리스 로마 영웅들의 극적인 삶을 들어보고 싶다면 언제든 펼쳐 읽어도 좋을 책이다.

by 꽃다지, 2011.4.10

 

 

여섯 날 난 큰아이는 한글 배우기가 한창이다. 글자를 익히기보다는 장난감만 가지고 놀기에 방법을 달리한 결과다. 우선 애플 앱스토어에서 한글루라는 한글공부 어플을 다운받아 사용하게 했다. 손으로 한 획 한 획 따라 쓸 수 있어 아이가 좋아한다. 그리고 목표 달성에 따른 보상을 제시했다. 요즘 아이가 가장 갖고 싶어하는 장난감은 파워레인저 정글포스 헌터. 내년 생일에 사주기로 약속을 했지만, 한글을 다 익혀 간단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면 사주기로 했다. 아이는 신이 났다. 그래서 열심이다. 벽에 붙여 놓은 가나다~를 열심히 읽는다. 파워레인저 정글포스의 힘이 이렇게 클 줄이야!

 

한글은 천천히 익히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갑자기 아이의 한글 공부에 열을 올리게 된 건 순전히 정의공주 때문이다. 세종의 딸 정의공주다. 이번에 해냄에서 출간된 한소진 작가의 <정의공주>(해냄, 2011)를 읽고 한글을 더 빨리 가르쳐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배워 더 많이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한글 창제의 어려움이야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단지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어려움에 대해서만 생각했었지 창제 자체가 문제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그런데 때는 바야흐로 조선조 아니던가. 성리학이 지배하던, 사대주의가 강했던 조선. 그 어려움 속에서 만들어진 한글이니 익히고 잘 사용해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새로운 글자를 만든다는 사실 자체가 중국에 대한 불충이었기에 대부분의 신하들이 꺼려했다. 사실 고대로부터 전해져온 가림토 문자도 있었지만, 이들에게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한자 대신 이두를 만들기도 했다. 배우기는 더 어려웠다. 많은 백성들은 말과 글이 달라 많은 불편을 겪었다. 그러나 이는 당연한 것이었다. 양반이 아닌 평민이 굳이 글을 배울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세종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학자들에게 의견을 묻기도 했으나 돌아오는 건 같은 대답뿐이었다. 그러나 이를 위로하고 함께 고민해주었던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자식들이다. 그 중에서도 정의공주는 스스로 공부하고, 백성들의 말과 글을 조사하여 아버지의 뜻을 좇았다.

 

세종의 한글 창제가 많은 어려움을 겪었음을 새삼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가림토 문자도 있었건만 우리 민족에게 절실했던 새로운 문자는 철저히 외면을 당했다. 작가는 이 점에 착안하여 정의공주를 등장시키고 한글 창제의 과정을 그려간다. 덕분에 독자들은 소설을 읽으며 왕의 평범한 일상과 가족의 일상사 또한 편하게 접하게 된다. 위엄 있는 왕이 아닌 자상한 아버지, 어여쁜 공주가 아닌 여염집에서 평범하게 살아야 하는 공주의 삶이다. 낯익지 않은 부마(사위)의 행패 또한 사실처럼 접할 수 있다. 한글 창제의 비화를 주로 다루고 있으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읽는 재미를 준다. 어느새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by 꽃다지, 2011.4.10

며칠 전, 2년 동안 함께 근무했던 후배의 송별회가 있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자리였다. 신입으로 입사해 항상 열심히 일했고 경력 이상의 능력을 발휘해 주었던 친구다.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목표만 아니었다면 정말 쉽게 놓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후배의 삶을 존중한다. 진학의 목표를 꼭 이룰 것이고,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는 더 높은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든다. 참 많은 후배들이 거쳐 갔다. 그런데 떠나보내는 마음은 왜 이리도 다른 것일까? 동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떠난 후배들은 매사 적극적이었고 인내할 줄 알았다. 그러나 서둘러 떠난 후배들은 회사에 대한 애정도 업무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그저 편하고 마음에 맞는 일만 고르다가 마땅치 않으니 떠나 버렸다. 

<1년만 버텨라>(2010년, 위즈덤하우스). 얼마 전 읽은 허병민의 책으로 지금의 생각과 고민이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 1년이란 시간을 잘 보내면 그 이후로는 자신의 커리어를 잘 만들어갈 수 있다는 말. 절대 허튼 소리가 아니다. 1년이란 시간은 직장인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기초적인 요건들을 갖추고 있는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간이다. 따라서 1년을 버텼다는 사실은 직장인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마음자세와 행동요건을 갖추었다는 뜻이다. 이직이 잦은 업무 특성상 이력서를 많이 받아보게 되는데, 관심을 갖게 되는 이력서는 뛰어난 학력, 스펙이 아닌 한 회사에서의 오랜 근무경험이 담긴 이력서이다. 회사를 꾸준히 다닌 친구들은 면접을 보아도 자세가 남다르다. 


그렇다면 남다른 자세는 무엇인가? 바로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회사는 뛰어난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길게 본다면 ‘능력자산’이 아닌 ‘신뢰자산’에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왜’라는 물음을 가지고 항상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성공을 위해서는 절실함 또한 수반되어야 한다. 절실함이란 무엇인가? ‘이것이 아니면 절대로 안 된다’는 자기와의 약속이다. 실수를 했을 때 자신이 틀렸음을 깨닫고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1년만 버티자’라는 목표로 회사생활의 기본을 다져간다면 1년이 지난 후 성숙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1년 후에는 또 다른 목표로 도전하면 된다. 설령 회사를 옮기게 된다 하더라도 다져진 근본 자세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현재 경영컨설턴트이자 리더십‧라이프 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자신의 뼈아픈 실패담과 성공담을 이야기 중간 중간 풀어놓는다.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이다. 다 아는 척 하지 않고 부끄러웠던 자신의 과거를 예로 듦으로써 편하게 선배의 이야기를 듣듯 인생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 다시 시작해보자. 새로운 1년을 버틸 준비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