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의 뚜벅이 생활을 청산하고 자동차를 한 대 구입하기 위해 다양한 브랜드의 차를 비교하다보니 점점 머리가 아파왔다. 처음엔 중고차나 한 대 사야지 했다가 연비와 안전성을 따지다보니 새차를 생각하게 되었고, 새차의 옵션을 따라 올라가다보니 사양이 점점 높아진 것이다. 지금은 잠시 머리를 비웠다. 인간의 욕망이 끝이 없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자동차를 판 후 아무 근심없이 잘 지냈던 내가 이렇게 욕심을 부리다니….

 

한없이 높아져만 가는 내 욕망을 잠재운 건 한 권의 책이었다. <생각 버리기 연습>의 저자 코이케 류노스케의 신간 <화내지 않는 연습>(21세기북스, 2011년)이다. ‘욕망’은 스트레스의 근원이라는 1장의 제목이 꼭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막상 자동차를 구입하겠다고 마음 먹은 순간 욕망은 점점 높아져갔고, 내 욕망을 낮춰야 했을 때 스트레스를 받았다.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다양한 브랜드를 비교하다보니 혼란 또한 가중되었다. 참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내가 한참 헤매고 있을 때 이 책을 읽을 수 있어 참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인간의 세 가지 근본적인 번뇌로 꼽은 것은 욕망, 분노, 방황이다. 욕망이 생길 때 몸과 마음은 고통을 느끼게 되고, 분노는 사용하면 할수록 커진다. 방황은 능력을 흐리게 한다. 욕망은 끝이 없다. 욕망이 높아질수록 스트레스는 쌓여만 간다. 욕망을 채웠다고 해서 만족감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 공허해진다. “불가에서는 ‘먹고 싶다고 생각할 필요 없이 그냥 먹으면 된다’, ‘걷고 싶다고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걸으면 된다.’는 표현을 쓴다. 일도 마찬가지이다. 일하고 싶다거나 일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저 행동하는 편이 훨씬 더 충실하게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이다.” (24쪽)

 

분노는 또 어떤가. 분노의 번뇌란, 어떤 일로 불쾌감을 느껴서 그로 인해 지우고 싶다거나, 짓눌러버리고 싶다거나, 없애버리고 싶어하는 반발의 에너지이다. 거칠게 화를 낼 때 가슴은 두근두근 떨리고, 통제하기 어려운 신체반응이 일어난다. 몸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지사. 그리고 화를 낸다고 해서 안 좋은 감정이 유쾌해지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사람들이 화를 냄으로써 좋아진 기분은 일시적인 착각일 뿐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좋아진 기분은 어디까지나 뇌의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마음에 스트레스가 늘어 신체에 손상을 입히고 있는 것이다. 또한 분노로 인해 고통이 늘어나고 있는데도 마음은 기분이 좋다고 착각을 하기 때문에 분노가 멈추지 않는다.” (67쪽)

 

방황 역시 마음을 흐리게 하고 집중력과 결단력을 떨어뜨리게 하는 원인이 된다. 지나치게 생각에 잠겼을 때 다른 생각은 잘 떠오르지 않고, 의욕이 많이 떨어지는 것을 인생을 살면서 여러 번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방황의 번뇌로 심란할 때는 무언가에 몰입하려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해야 한다. 무언가에 몰입하라 때 의식의 흔들림은 사라진다.

 

결국 화내지 않는 연습은 욕망을 줄여 스트레스의 싹을 자르고, 분노하지 않도록 다른 방향에서 생각하며, 방황하여 의욕이 떨어지지 않도록 무언가에 몰입하는 것이다. 저자는 욕망과 분노, 방황에 대해 자세히 언급한 후 이를 줄이기 위한,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다양하게 제시한다. 한 번에 고칠 수는 없겠지만, 아주 사소해 보이는 이 레슨을 실천하는 것이 앞으로의 남은 과제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자~ 한번 시작해 보자.

 

by 꽃다지, 2011.04.14

 

 

처음 기대와는 달리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지 한참을 생각했다. 책을 읽은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그러나 여전히 답은 찾을 수 없다. 사실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자체가 순진한 것이었다.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들녘, 2011년)을 받아든 순간, 참 기뻤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러한 책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참 행운이었다.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에 적절한 해답을 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생각은 점점 더 많아져만 갔다.

 

먼저 이 책이 이야기하는 바를 살펴보자. 저자는 이야기에 앞서 전체주의자와 개인주의자에 대한 정의를 서문에 밝힌다. “전체주의자는 ‘사회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개인주의자는 ‘인간은 세상과 영원한 긴장 관계에 놓은 존재다’라고 믿는 사람이다. 전체주의자는 인간을 구원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을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는다. 개인주의자는 훌륭한 자아, 훌륭한 개인이 되는 것을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는다.” (6쪽) 충분히 공감할 만한 정의다. 저자는 그로부터 역사적인 고찰을 진행하고 그동안 공동체(여기서는 ‘떼’라고 통칭한다)가 범해온 오류를 지적한다. 그렇다고 개인주의가 무조건 옳았던 것 또한 아니다. 그는 가짜 개인주의 역시 경계한다.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요즘 한국사회에 만연해 있는 풍조이기도 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자유, 권리, 웰빙에 대한 욕구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착각이 힘을 얻어 사회 전체의 풍조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를 가짜 개인주의라고 부른다. ‘나’의 권리와 자유를 최대한 키워서 ‘내’ 방식대로, ‘내’ 맘대로, ‘내’ 욕망대로 사는 것이 최고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풍조이다.” (20쪽)

 

결론적으로 저자는 이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해온 떼, 독재로 쉽게 변질되어버릴 수 있는 떼를 벗어나 참된 개인으로 비상할 것을 주장한다. 그가 제시하는 개인주의는 ‘자유와 권리’가 아닌 ‘진실과 자아’를 궁극적 목표로 한다. 그의 주장만 놓고 보면 참으로 괜찮은 제안이다. 어느 누구도 이를 쉽게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그러나 문제는 그 목표에 있지 않다. 개인의 진실과 자아를 극대화하기까지의 과정, 혹은 방법이 문제다. 사회주의를 추구했던 소련이 무너졌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승리한 것이 아닌 것처럼, 전체주의가 개인을 옭아맸던 역사적 경험들이 실패로 귀결되었다고 해서 개인주의의 추구가 답이 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문제를 양자택일로 몰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다. 이는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고 해서 풀릴 문제가 아니다. 결국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내게는 전체주의적 성향이 좀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체주의적 방식을 무조건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저자의 지적처럼 전체주의적 발상은 많은 문제를 드러내었다. 아직도 전체주의 체제로 인해 고통을 받는 많은 개인들이 있다. 시스템적으로든 문화에 의해서든 개인에 대한 고통과 억압은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할 폐단들이다. 단지 바람은 공동체가 그 목적성을 올바로 회복하고, 그 안에서 개인의 자아와 진실이 더 많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약간의 희생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희생은 개인의 욕망에 대한 절제에 한해서다. 저자가 지적하는 가짜 개인주의 말이다.

 

이러한 생각 역시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확률이 많다. 그동안 유토피아에 대한 수많은 환상들이 존재했고,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지만 인간의 혹은 개인의 욕망을 통제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참된 개인주의의 실현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겠는가. 저자의 말처럼 참된 개인주의가 되자는 말에는 이견이 없다. 나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개인의 진실과 자아를 찾아갈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세속적 가치가 횡횡하는 속에서 제기되는 이러한 주장 또한 실효성을 가질지 의문이다. 결과적으로 가짜 개인주의가 더 극성을 부릴 것 같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아쉽게도 이론적인 면에서 더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는 처지는 아니기에 글은 여기에서 마치련다. 참 좋은 책을 만났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과 고민이 많았다. 저자의 의견에 대한 반박이라기보다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에 대한 방법적 고민정도로 여겨주면 좋겠다. 어떠한 방법으로든 참된 개인으로 비상할 수 있는 세상이 와야 하지 않겠는가.

 

by 꽃다지, 2011.4.12

좀처럼 찾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 봄을 재촉하듯 가랑비가 대지를 촉촉이 적신다. 비를 한껏 머금었다 따스한 봄햇살을 맞으며 기지개를 펴겠지. 스멀스멀 찾아오는 봄처럼 어느 순간 사랑을 속삭이게 된 남녀의 이야기가 담긴 일본소설을 한 권 읽었다. ‘남녀가 정겹게 속삭이는 모습’이라는 의미가 담긴 <초초난난>(2011, 21세기북스)이란 책이다.

앤티크 기모노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시오리는 어느 날 아버지와 닮은 목소리를 지닌 기노시타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시오리는 여느 손님을 대하듯 친절하게 대하는데 약간은 쑥스러워하면서도 편하게 해주는 그에게 점점 끌리게 된다. 다만 문제는 그가 유부남이라는 것. 여느 소설이라면 둘의 사랑이 결국 갈등을 일으키고 파국을 맞게 되었을 터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제목처럼 약간의 출렁임만 있을 뿐 내내 잔잔하고 정겹다. 시나브로 사랑에 빠지고 어제 만난 사람처럼 편안한 두 사람의 관계를 그려낸다.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사실을 잘 확인해야 한다. 먼저 시오리의 가족관계다. 복잡하게 얽힌 가족관계가 시오리에게 미친 영향은 그리 간단치 않다.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유부남을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이 부모와 대비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또 하나는 첫사랑 유키미치의 마지막 모습이다. 헤어진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누구에게나 남다르다. 시오리 또한 기노시타와의 관계 속에서 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첫사랑이 세상을 떠났다. 시오리만을 사랑했던 그 사람이…, 그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전하며….

오랜만에 읽은 일본소설이다. 잔잔한 물결이 일듯 조곤조곤한 사랑이야기가 간만에 마음을 풋풋하게 했다.

by 꽃다지, 2011.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