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들의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깊은 영감을 준다. 미국의 가장 훌륭한 대통령 중의 한 명인 링컨의 삶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오랜 시간 동안 뚜렷한 영감을 주었다. 링컨의 업적은 셀 수도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 한 가지만 고르라고 한다면 단연 노예해방일 것이다.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오바마가 있는 것이 아닐까.

 카워딘이 쓴 이 책은 일반적인 전기와는 다르게 링컨의 업적을 약간의 학술적 방식으로 풀어 놓은 듯하다. 전기는 보통 일대기적 구성이 많은데 비해 이 책은 각 챕터마다 각각의 주제를 항목별로 나누어 링컨의 업적이나 정책을 논리적으로 분석한다. 어쩌면 링컨의 업적보다 대통령으로서 링컨의 리더십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대통령의 업적을 보다 중요시하던 과거와 달리 그의 리더십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요즘은 링컨과 같은 리더십을 갖춘 사람이 절실한 때이다.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등장한 우리 나라에서 혹자는 낯선 여성지도자의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기도 한다. 우리 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전통적으로 철저한 남성 중심의 사회였고, 게다가 공직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는 남성들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곳에 국한되어 왔다. 여성이 남성을 지휘하는 모습은 아직도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이러한 봉건적 사고의 뿌리가 그만큼 깊기 때문이다. 링컨이 추구했던 바, 국민과 언론 그리고 민주적 제도를 신앙과 같이 존경하고 숭앙하는 지도자라면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무슨 문제가 될 것인가. 이것이 바로 이 시대의 대통령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하나의 조직을 이끌어 나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 조직이 한 국가에 이른다면 더 말해 무엇하랴. 링컨이 가장 민주적인 방법으로 수 많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지금의 미국의 토대를 세운 것처럼 지도자는 그의 뜻, 국민의 뜻을 이루기 위해 최대한의 민주적 방법에 골몰해야 할 것이다. 그를 위해서 언론의 활동 또한 최대한 보장해야 할 것이며 뛰어난 인재를 중용하여 보좌하게끔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링컨에게서 배울 수 있을 것이며 그의 역사를 통해 또 다른 발전적 미래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 다루는 일이 무엇보다 힘든 일이라는 사실은, 거꾸로 말하면 사람을 잘 다루는 사람은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이는 링컨의 삶과 리더십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올 해 링컨에 대한 영화가 또 개봉한다고 한다. 물론 수도 없는 링컨이 영화에 등장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링컨의 모습은 새삼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다.

프란시스 스콧 피츠제럴드(Francis Scott Key Fitzgerald)

 <위대한 개츠비>로 잘 알려진 피츠제럴드는 100년 전의 사람이지만 수많은 소설을 통해서 현대 사회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준 작가로 꼽힌다. 영미소설에 흥미도 없고 무지한 나에게도 <위대한 개츠비>는 읽어보게 만든 베스트셀러 작가이면서, 출판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고 알콜중독과 병고에 시달리며 불우한 말년을 보낸 프린스턴 대학 중퇴생이다. 어쩌면 그는 개츠비처럼 살다가 간 인물인지도 모른다. 밀주를 통해 거부가 된 개츠비나 개츠비를 통해 부자가 된 피츠제럴드는 그 결말이 비극적이라는 것까지사실 상당히 닮았다고 생각한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푸른책들의 클래식 보물창고의 시리즈로 나온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피츠제럴드가 발표한 중, 단편 소설을 모아 완역한 작품집이다. 첫번째 작품집 『말괄량이와 철학자들』에 실린 <젤리빈>을 비롯한 4편의 작품과 두번째 작품집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작품들이 빠짐없이 실려있다. 누구나 그랬을거라고 생각하는데, 제일 먼저 펼친 작품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였다.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는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져 적지 않은 인기를 누렸던 이야기다. 한 귀족 집안에서 벤자민 버튼이 노인으로 태어나 아기로 생을 마감한다는 내용인데, 이를 두고 피츠제럴드가 직접 남긴 집필후기는 상당히 흥미롭다. 마크 트웨인의 말에서 영감을 얻어 집필한 작품인데, 작품의 취지는 인생 최고의 시기가 가장 먼저 오고 최악의 시기가 가장 나중에 온다는 사실이 너무도 슬프다는 말이었다. 피츠제럴드의 생을 생각해본다면 그도 그럴 듯하다. 이 작품을 두고 익명의 팬이 보낸 편지의 내용이 상당히 재밌는데,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생님께, <콜리어스>에 실린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를 읽었는데, 단편소설 작가로서 선생님이 제대로 미친 것 같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 평생 난다 긴다 하는 인물들을 수없이 보았지만 선생님이야말로 물건 중의 물건입니다. 선생님의 이야기로 편지지를 낭비하기는 싫지만 그래도 해야겠습니다." - 본문 p.434 피츠제럴드의 상상력이 얼마나 기발한지 잘 보여주는 일화라고 생각한다. 다소 비관적인 인생관처럼 보일 수 있는 이 작품의 주제는 꽤 흥미롭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대부분 젊은 시절에 겪는다고 생각한다. 늙으면 외양부터 초라해지고, 병에 들어 괴로워하며 외로움에 고통스러워하기 마련이다. 벤자민 버튼의 삶은 10분만에 읽어낼 수 있는 짧은 이야기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피츠제럴드의 매력은 이런 데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 외에도 하루만에 집필을 끝낸 <낙타의 뒷부분>이나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혹은 <행복이 지나간 자리> 등은 스콧의 유머와 위트를 쉽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다소 감상주의적인 면과 염세적 작가관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끔 하는 힘이 있다. 베르베르와 쥐스킨트를 빼고는 번역투가 싫어서 번역소설을 잘 읽지 않지만, 피츠제럴드의 소설은 번역투가 그리 신경쓰이지 않았다. 번역투가 주는 찝찝함을 쉽게 잊게 만드는 그의 스토리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가 되는 시인의 이야기

 한 생명의 증거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내가 하나의 생명체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나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경험이나 지식이 없다. 특히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해 본 적도 없을 정도로 임신과 출산은 내게 먼 나라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한 생명의 탄생에 대한 호기심과 경외심으로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시인 김경주가 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집이 아닌 <밀어>라는 그의 책을 본 적이 있엇지만, 그 책 또한 시에 관한, 시어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버지가 되는 순간, 즉 출산의 순간을 겪은 아버지의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들어봤지만, 시인이 아버지가 되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김경주라면 탄생에 대해 무엇인가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선택했던 것이다. 태아가 아닌 배아의 아기를 대하면서 시작한 이야기가 출산으로 이어지는 속에서 아내에 아이에게 건네는 그의 말들은 참으로 아름답다. 하지만 그는 아내와 아이를 대하며 할 수 있는 말이 너무나 부족하고, 그의 수사가 너무나도 보잘 것 없다고 말한다.

 

탄생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과 세상을 버리는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 두 가지의 일에 대해서 만큼은 다른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수 밖에 없다. 김경주의 책처럼 내가 세상에 나오는 과정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남아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뒤로 하고 가장 먼저 느낀 점은, 김경주의 시와는 너무도 다른,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김경주라는 시인의 냄새와는 확연히 다른 대상에 대한 절대적 정서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대상은 그의 아내와 아이다. 막힘 없고 세련된 언어로 마치 세상 전체를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것 같던 그가 그의 아내와 아이 앞에서는 한없이 순한 양처럼 보인다. 한 생명의 탄생을 지켜보는 일은 이런 것인가 보다. 아버지, 어머니가 된다는 것을 '아버지로 태어나다, 어머니로 태어나다.' 라고 일컫는 데는 아마 이제까지와는 다른 전혀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과 같은 느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생명의 탄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신비롭고 경이롭지만, 그 탄생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킨다는 것에 또 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시인 김경주

 김경주가 아버지가 된 이후에 과연 어떤 작품들이 나올 것인지 참 궁금하다. 새로운 존재인 아버지로 다시 태어난 시인의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예전과 같은 작품들과는 색다른 새로운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