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저편은 중고등학교 때 옆자리 짝꿍이 무척 재미있게 보던 만화책이었다. 그 때 나는 만화책보다는 소설-퇴마록이었나?-에 심취해있었던 터라, 재밌다는 말만 듣고 넘어갔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을 다시 보게 된 것은, 모 포털사이트의 만화 코너에서 전권 구매 시 20% 할인이라는 어마어마한 할인율을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아아~전권 구매 후에 ‘결제’라는 아이콘을 누른 후 펼쳐진 신세계란! 그 때 당시 짝꿍이 그토록 황홀한 표정으로 만화책을 들여다봤던 게 이해가 갔다. 히가와교쿄! 이 큰일날 작가 같으니! 이자크를 이렇게 매력적으로 그려놓으면 어쩌자는 건가효! 캐릭터도 너무 잘 잡았고..+_+
아마 해리포터처럼 현실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서 펼쳐지는 모험담에 열광하시는 분이라면 이 책에게도 어마어마한 열광을 보내실 듯하다. 하교길에 갑자기 다른 세계로 넘어간 ‘노리코’는 그곳에서 ‘천상귀’라 불리는 괴물을 ‘자각’ 시키는 ‘자각’이다. 이 ‘자각’인 노리코가 처음 만난 사람은 바로 ‘천상귀’인 이자크. 이자크는 원래 그녀를 죽이려고 그 자리에서 기다렸으나, 노리코를 만난 후에 어떤 이유-사실 첫 눈에 반했다고나 할까-에서 죽이지 못하고 결국 사랑에 빠지고 만다는 스토리다.
히가와 교쿄는 주인공의 섬세한 변화를 포착, 연출하는 데 능한 작가인 듯하다. 특히 웃을듯 말듯한 이자크의 미묘한 웃음은 정말...쵝오! 캔디형 인물인 노리코의 활약도 눈여겨 볼 만하다. 또 할인율 20%가 제공된다면, 다른 히가와 교쿄의 만화책들도 둘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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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편집부에서 일합니다.” “아하, 왠지 그럴 것 같았어요.”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헉, 왜요?” 하고 반문해 봤자 “아니, 그냥, 저…… 말씀하시는 거나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하고 얼버무릴 뿐. 짐작건대 “외모는 어딘지 촌스럽고, 말을 할 때 너무 분석적이고, 말꼬투리 붙들고 늘어지잖아요. 한마디로 멋도 없고 좀 피곤한 성격 같네요.” 하는 의미가 아닐까.
(본문 43쪽, ‘편집자를 둘러싼 근거 있는 오해들’ 중에서)
“근데 엄마는 왜 계속 낭떠러지랑 6자랑 9자만 그리는 거야?” 이게 뭔 소린가 싶어 교정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때 나는 옛이야기책 교정을 보고 있었는데, 행마다 일일이 줄바꾸기 부호를 표시하고, 따옴표가 깨져서 여기저기 따옴표를 그려 넣고 있었다. 아이 눈에 줄바꾸기 부호는 낭떠러지로, 따옴표는 6자와 9자로 보였던 거다. 아이를 기르면서 어린이책을 만든 그 시간들이 나에게는 더없는 축복이었다.
(본문 99쪽, ‘독자와 함께 성장하는 즐거움’ 중에서)
학습서 편집자는 중․고등학생 때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한다. 책이 시험에 적중할 만한 내용으로 구성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 책을 만드는 편집자 역시 시험을 앞둔 학생과,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심정으로 공부를 열심히 한다. 그래서 편집자들끼리 농담으로 “학창 시절에 이렇게 공부했으면 S대 갔겠다.”는 이야기도 한다.
(본문 106～107쪽, ‘수험생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다’ 중에서)
‘책’에만 묶여 있는 사람은 좋은 기획자가 될 수 없다고 한다. 그 책이 ‘일’이 되어서 제 눈을 멀게 하고 뛰는 가슴을 멈춰 서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이 멀지 않고 가슴이 계속 뛰게 하려면, 그래서 놀라운 시적 상상력을 샘솟게 하기 위해서는 역시 우리 삶의 중심에 ‘사람’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야말로 시적 상상력의 원천이자 대상이기 때문이다.
(본문 138쪽, ‘출판기획자로 살아가는 세 가지 삶’ 중에서)
원고가 도착한다. 편집자는 원고를 몇 개의 부분으로 나누기도 하고, 없던 제목을 달기도 한다. 그러면서 부와 장과 절이 생기고, 제목들 사이에 일정한 위계가 생긴다. 간혹 제목과 본문 사이에, 이후의 고리타분한 내용을 읽을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요약문을 뽑아 넣기도 한다. 이런 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일은 분명히 편집 행위인데, 문제는 그 편집 행위가 사실상 디자인적 형태까지 결정해 버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본문 156쪽, ‘편집이 곧 디자인, 디자인이 곧 편집’ 중에서)
책 만드는 일은 처음부터 잘해야 하고 그럴 수 있는 사람만 출판편집자로 살아남는다. 만일 경력이 쌓여 가면서 책 만드는 솜씨가 좋아진다면, 뒤집어 말해 예컨대 1년차 초보 편집자가 만든 책은 10년차 베테랑이 만든 책보다 완성도가 허술하다는 뜻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허술한 책을 읽어야 하는 독자는 어쩌란 말이며, 출판사를 믿고 원고를 맡긴 저자는 또 어쩌란 말인가.
(본문 237쪽, ‘에디터에서 에디팅 매니저로’ 중에서)
아날로그적 감성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추신’이라는 낱말에서 풍기는 따스함과 은은한 느낌이 그대로 배어나는 작품. 기본적으로 나는 아날로그적 감성시대와 디지털 감성 시대의 경계선상에서 청소년기를 보냈기 때문일까. 이 작품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림보다 글자가 많은 만화책. 그렇지만 그 글자와 그림이 잘 조화를 이루어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적당한 여백을 남겨놓아서 사색에 빠질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그림에서도 요즘의 디지털 느낌이 아니라, 손그림의 느낌이 배어나와서 기분이 좋았다. 약간 빈틈이 느껴지는 그림. 난 너무 꽉 차 보이는 그림은 좋아하지 않는다. 적당히, 관객에게 빈틈을 줘서 방심을 하게끔 하는 그림이 좋다. 완벽주의자보다는 털털한 사람에게 더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만화책 한 권에게 너무 찬사를 보내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은 다른 이의 평을 덧붙이자면, 신파조의 스토리텔링이라서 별로라는 의견도 있었다. 장거리 사랑이란 이뤄지기 힘든 법인데, 어떻게 한 번, 두 번 만나고 ‘결혼합시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거였다.
흠.. 낭만주의적 감성에 물들지 아니하고, 현실적인 감각으로 바라본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인 거다. 그렇지만, 난 ‘낭만적인 이야기’로 바라보고 싶다. 현실적으로는 그럴 지 몰라도, 그래도, 잠깐이나마 ‘비현실적인 감성’에 젖고픈 순간이 있지 않은가? 퍽퍽한 일상에 단비를 내려주는 감성이니까.^^ 만화책에까지 현실의 잣대를 들이대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특히 I love you.라는 이 말이 들어가는 만화책에는 더더욱.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