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조용히 좀 해요_레이먼드 카버
-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가슴이 뛰었다.
그건 내 팔 길이만 했다.
"세상에, 와, 저놈 좀 봐!"
그애가 말했다.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그것은 물 위로 드리워진 커다란 나뭇가지 아래 그늘 속에서 쉬고 있는 중이었다.
"세상에나."
나는 물고기한테 말을 걸었다.
"넌 어디서 온 거냐?"
- 알레스카에 뭐가 있지?
팝시클 - 미국의 아이스캔디 상표명
- 수집가들
릴케는 성인이 된 후 줄곧 이 성에서 저 성으로 옮겨다니며 살았어요. 후원자들 덕분이죠. 그가 청소기 소음 위로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그는 자동차를 거의 타지 않았어요. 기차를 더 좋아했지요. 그리고 마담 샤틀레*와 함께 시레이에 있었던 볼테르의 경우를 보세요. 그의 데드마스크도요. 그렇게 평온할 수가 없어요.
*에밀리 드 샤틀레. 볼테르의 연인이자 친구였던 후작부인으로, 그와 함께 철학과 과학을 논했다.
** 볼테르와 마담 샤틀레가 15년간 기거했던 섬. 파리에서 250KM떨어진 곳에 있다.
- 이건 어때?
그녀는 그를 지나쳐 햇빛 속으로 나가 무성한 풀을 헤치고 천천히 집으로 걷기 시작했다.
"에밀리, 우리 어떻게 할까?"
그녀의 뒤에 대고 그가 소리쳤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었고, 그는 그녀 옆으로 다가갔다.
"살아 있어야지."
그녀가 말했다. 그러고는 머리를 흔들고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었다.
"해리, 우린 서로 사랑해야 해."
그녀가 말했다.
"우린 정말로 서로 사랑해야만 할 거야."
- 자전거, 근육, 담배
"잘 자라는 인사를 해야겠구나."
그는 아들에게 뽀뽀를 해주려고 했으나 소년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 할아버지도 아빠처럼 힘이 셌어요? 할아버지가 아버지 나이였을 때, 그러니까, 있잖아요, 아빠가-"
"내가 아홉 살이었을 때 말이지? 그 얘기 아니냐? 그래, 힘이 셌지."
헤밀턴이 말했다.
"가끔씩은 할아버지를 기억해낼 수가 없어요."
소년이 말했다.
"난 할아버지도, 그 어떤 것도 잊고 싶지 않아요. 무슨 말인지 알죠, 아빠?"
해밀턴이 금방 대답을 하지 않자 소년은 계속 말했다.
"아빠가 어렸을 때도 아빠랑 나처럼 그랬어요? 아빤 저보다 할아버지를 더 사랑했어요? 아니면 똑같이 사랑했어요?"
소년은 옆으로 돌아누워서 아버지가 문으로 걸어가 손을 스위치 위로 올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더니 말했다.
"아빠? 내가 아주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난 아빠가 어렸을 때 아빠를 알았더라면 좋았을걸, 싶어요. 그러니까, 바로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 때 말이에요.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 생각을 하면 쓸쓸해져요. 마치 - 마치 지금 그 생각을 하면 벌써 아빠가 보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정말 이상하죠? 그건 그렇고 문 좀 열어두세요."
해밀턴은 문을 열었다가 다시 생각해보고 반쯤 닫았다.
- 레이먼드 카버의 생애와 작품
레이먼드 카버의 삶과 예술, 그리고 죽음의 순간까지도 영향을 미쳤던 그의 분신이자 스승, 그리고 영혼의 동반자는 러시아 작가 체호프이다. 할아버지는 농노였고 아버지의 가게가 파산하 뒤 가족의 생계를 위해 힘겹게 일해야 했던 체호프처럼 카버 역시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체호프는 1880년대에, 부분적으로는 신문 기고의 형식적 필요 때문에 사실적인 디테일과 낭만적 서정이 뒤섞인 근대적 단편소설들을 쓰기 시작했다. '불행' '아뉴타' '키스' 같은 초기 단편들에는 아직 짧고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체호프적인 순간, 즉 영혼의 포착이 있다. 체호프 식의 이러한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울림이 풍부한 스타일은 20세기의 미국 소설가들, 즉 카버의 스승인 셔우드 앤더슨, 어니스트 헤밍웨이, 존 치버 등의 작가들에게 표준이 된다.
"치고, 빠지고, 머무르지 말고 계속 나아갈 것"이 그의 생활 신조였고, 이는 필연적으로 그의 작품 형태를 결정하였다.
체호프는 2886년에 쓴 한 편지에서 일부 비평가들이 백년 뒤에 '미니멀 픽션'이라고 부르게 될 소설 형식의 요건을 열거하고 있다. 1. 정치-경제- 사회적 요소를 언어로 토로하지 말 것. 2. 철저히 객관적일 것. 3. 인물과 사물에 대한 묘사를 진실하게 할 것. 4. 철저히 간결할 것. 5. 따뜻한 마음을 지닐 것.
1981년 마이클 코프가 지적했듯이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에는 체호프적인 명료함이 존재하지만, 또한 이면의 무엇인가가 끔찍하게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카프카적 의식도 존재한다."
1970년 경부터 카버는 소설이라는 매체애 대한 장악력을 얻고 자신의 '집착' (그는 테마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을 더욱더 다듬어나갔다. 그는 영웅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자기 고장의 삶들을 소재로 취했는데, 이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평범하기 때문에 가장 끔찍한 것들이었다. 체호프와 카프카에 주목하면서 그는 사회 안에서 개인이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게 될 때 생기는 최면적 순간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1970년 9월 과학 리서치 협회의 일자리를 잃은 것은 결국 그에게 득이 되었다. 실업수당과 몇몇 상금 덕분에 생애 최초로 글쓰기에만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그후 9개월 동안 그는 소설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에 수록될 단편의 절반 이상을 집필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그는 작가로서의 자신을 인식하게 되었다. "매일 책상 앞에 앉는 버릇만 들이면 내가 꽤 꾸준히, 그리고 맹렬하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라고 술회한 바 있다. 또한 이 시기에 그의 글은 커다란 내적 변화를 겪게 된다. "글을 쓰는 동안, 글쓰기 자체에 뭔가가 일얼났다. 그것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고, 나에게 새롭고 찬연한 빛을 던져주었다. 나는 그것을 머릿속 이미지에 가깝게 조금씩 깎아나가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에스콰이어지에 실렸던 여러 소설가들의 단편을 모은 소설집 '우리 시대의 은밀한 삶'이나 '우리의 비밀은 다 똑같다'를 살펴보면 카버 중기의 라이트모티프를 짐작할 수 있다. (Leitmotif)
카버는 사망하기 한달 전에 가졌던 인터뷰에서 "내가 작가 말고 다른 것으로 불리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게 아니라면 시인 정도"라는 묘비명에 가까운 말을 남겼다.
그는 죽기 전 마지막 소설집 '내가 전화하는 곳'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작품들이 미국 단편문학의 거장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해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졌으면서도 자신이 앞으로 써야 할 글들은 이와 다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내가 최근 6,7개월 간 써온 단편들은,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진짜로 쓰려고 했던 것든은 아니다...... 내게는 아직도 낚아야 할 고기가 있고 써야 할 소설과 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