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포라는 말은 평소에 많이 쓰는 말은 아니다. 평소엔 저 쪽에 노포가 있어 ~ 라고 말하기 보단 저기에 오래된 집, 오래된 맛집, 수십년 된 유명한 집이 있어 ~ 라는 말을 쓰곤 하니까.
그런데 저자는 잘 쓰지 않는 '노포' 라는 말이 특별히 정감이 간다고 말한다. 단순히 오래되었다는 뜻의 말인 고(古) 가 아니라 사람이 늙어서 '노인'이 되듯이 가게도 살아있는 생명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하나 고유의 삶을 가지고 나이를 먹듯 가게도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의 삶처럼 가게의 삶을 산다. 얼마나 오래되었으면 그런 느낌이 드는 걸까?
이 책에는 대를 이어서 한국의 맛을 지켜나가고 있는 노포들이 많이 나온다. 걔중에는 저자가 취재를 하려고 할 때 손사래를 치면서 막으려고 한 곳도 많다고 한다. 자신을 뜻을 지키면서 사는 사람들의 배짱,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자신감과 여유가 변하지 않는 노포의 맛을 나타낸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 자신도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대한민국에서 내놓으라 하는 유명 셰프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노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자존심을 이해하고, 그 자존심을 존중해주고, 그들이 마음을 열 때까지 그 곳에 가서 음식을 먹으며 취재를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실제로 이 책을 엮으면서 노포를 지키던 나이들으신 분들이 2분이나 유명을 달리 하셨다고 하니... 글쓴이는 일종의 의무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이 책을 썼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 사라질 것에 대한 것들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 그 가치가 얼마아 큰지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한 때 기자로서 살았던 박찬일의 마음, 현재 쉐프로서 활동하는 박찬일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책이었다.
이 책엔 내가 서울에서 가본, 혹은 들어본 노포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정말 정말 맛있는 집들을 어떻게 이렇게 잘 골라놓았을까 하는 마음이다. 내가 실제고 가보고 맛을 보고 나서 , 과연 이래서 유명하구나 하는 집들도 있었고, 가보고는 싶은데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지인들의 말에 포기했던 집들고 있었다. 하루에 500그릇만 판다 , 재료를 정해놓고 다 떨어지면 문 닫는다 라는 식으로 소문을 들은 집들도 있었는데 보통 그런 집들은 주말에 영업을 안 하는 경우도 있고, 오후 3시면 영업을 종료하기도 한다기에 먹지 못할까봐 먼 걸음을 가지 못한 곳도 있었다. 가게가 오래된 만큼 점원들도 오래됐고, 함께 늙어간다. 단골 손님들은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메뉴판에 없는 음식을 주문하고,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어떻게 다양한 방법의 조리법으로 주문하는지 안다. 그래서인가.... 노포들엔 처음 오는 사람이 알 수 없는 고고함이 느껴진다. 세월을 함께 보내지 않으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울고 웃으며 지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음식의 맛.. 그 분위기.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과 함께 늙어가는 그 가게를 잊지 못하는 것일게다.
오랜 장사의 비결은 기본에 충실함에 있다. 재료의 신선함. 다시 한 번 재료이다.
또한 쉐프가 가지는 기세도 한 몫을 한다. 어떤 나라 쉐프이든지 (영화에서도 쉐프가 얼마나 까칠한지 보여주는 부분이 많고.. 리얼리티 쇼에서도 그렇지요) 이런 까칠함은 기본 옵션 ? 처럼 느껴지는데, 이 책에서도 우리 나라에 얼마나 까칠하게 자신의 음식을 지켜나가는 쉐프가 많은지 알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겐-어쩔 수 없이- 까칠할 지언정 자신이 만든 그 음식에 거는 자부심과 사랑에 대해선 누구도 반박하지 못하리라..
종로에서 일하는 직장인이기에 이름만 들어도 반가운 종로의 노포들이 많아서 좋았다. 시간이 되면, 또 한 번 방문해서 노포의 음식을 맛보고 싶다. 이번에는 전과 다르게 수십년은 다닌 사람만 아는 방법으로 음식을 주문해 보고 싶다. 지방에서 유명한 노포들에 대해서도 나오는데, 기록해 두었다가 그 지역에 놀러갈 때는 꼭 한 번 찾아가보고 싶다. 어떤 맛집 소개책보다 신뢰감이 들었던 박찬일 쉐프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