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책은 표지가 참 이쁜 책인데 제가 읽은 책에는 표지가 없네요. 제가 다니는 도서관에는 책들의 표지를 싹 다 벗겨 놓아야만 직성이 풀리나 봅니다. 스티커 라벨작업을 두번하기가 싫어서인지, 책을 좋아하는 1人으로써 책에 표지가 안싸여 있고 옷을 벗겨 놓으면 이 책인 뭔책인지 모르겠단 말이죠. 게다가 책 표지에는 주로 출판사들이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광고를 띡띡 해 놓고 작가 소개도 되어있고 등등- 은근히 볼게 많은데 책 표지 없으니까 뭔가 서운하네요.
이 책도 도서관 책장에 표지 없이 꽂혀져 있어서 이건 뭐지, 박범신의 은교인가 하며 꺼내봤더니 맞았다는 -
암튼 저는 이 책을 읽어본 적이 없고 마침 뭔가 읽고 싶던 저에게 딱 초이스 된 책이었는데요, 오우 책장을 넘기는데 이렇게 재미있을수가요. 팜므파탈이라고나 할까요. 내일 모레 70인 노인네 (노인네라고 표현해서 왠지 죄송...)의 내면심리가 너무 잘 서술 되어 있더라구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 책은 영화로도 나왔지요. 19금 영화이기도 하고, 저는 노인이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마치 변태적인 영화일꺼라고 생각하며 보지 않았었지요. 근데 제가 생각한것 만큼 그렇게 변태적인 내용도 아니었어요.
-우리 사이엔 오십이 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이 있다. 당신들은 이런 이유로 나의 사랑을 사랑이 아니라 변태적인 애욕이라고 말할는지 모른다. 부정하진 않겠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좀 다르다. 사랑의 발화와 그 성장, 소멸은 생물학적 나이와 관계가 없다. '사랑에는 나이가 없다'라는 설파한 것은 명저 '팡세'를 남긴 파스칼이고, 사랑을 가리켜 '분별력 없는 광기'라고 한 것은 셰익스피어다. 사랑은 사회적 그릇이나 시간의 눈금 안에 갇히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 그것은 본래 미친 감정이다. 당신들의 그것도 알고 보면 미친, 변태적인 운명을 타고났다고 말하고 싶지만, 뭐 상관없다. 당신들의 사랑은 당신들의 것일 뿐이니까. 12p
내일모레 칠순인 이적요 시인과, 그의 제자 서지우, 그리고 이적요 시인의 집에서 일을 했던 고등학생 한은교 - 이 세명의 삼각관계랄까요. 70 노인에게도 여고생을 사랑할 수 있는 감성이 있다는게.. 참 놀라웠고 그게 시인이라 가능한게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또한 그의 제자 서지우도 내일모레 마흔인데 감히 고등학생을 좋아하고 성관계까지 하는걸 보면서 욕이 나오더라구요. 이적요 시인은 그야말로 최고의 문학가인것 같아요. 대중에게 발표된 그의 작품은 시 밖에 없었지만 사실 그의 집에는 그가 쓴 단편소설, 장편소설, 산문, 에세이 등등이 많았고요, 그의 제자 서지우는 글쟁이 능력이 없지만 지독하게 글쟁이로 살아가고픈 남자 입니다. 그는 스승의 재능을 부러워하고 존경하지요. 어느 날 상금을 노린 이적요의 제안으로 서지우는 이적요의 소설을 자기가 쓴 소설인것 마냥 발표하게 되고요 그 소설은 대 히트를 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인터뷰 요청 쇄도,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찬 대중들에게 서지우는 자존심도 많이 상하지만 그 대가를 누리기도 합니다. 은교를 사이에 두고 두 남성이 대립하는 내면의 장면도 아주 대단합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 여고생을 두고 말이죠. 이적요와 서지우. 그 둘은 지독히 서로를 좋아했지만 결국은 지독하게 미워하게 되고, 두 사람 아니 세 사람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들과 사건이 그들의 노트를 통해 실타래처럼 풀리면서 이야기는 끝이 나네요. 한달 반만에 이 책을 썼다는 작가의 말을 읽고 정말 대단하다 생각했습니다. 작가가 '갈망'에 사로잡혀 있었듯이 이 소설은 그것을 표출해 낸 작품으로 차고 넘쳤던 것 같습니다.
-슬픔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눈물로 덜 수 있는 슬픔이고, 다른 하나는 눈물로도 덜 수 없는 슬픔이다. 내가 만난 그날 밤의 슬픔은 후자였다. 234p